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메르스로 물량 폭주하지만…” 4만 택배기사들의 그늘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전 국민이 평균 일주일에 한번 꼴로 만난다는 4만여 택배 기사들이 좀도둑, 성범죄자 취급에 이어 이제는 ‘바이러스 전파자’ 누명까지 뒤덮어쓰고 있다.

맞벌이,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택배산업은 최근에는 메르스 사태 여파로 명절 못지않은 특수를 누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 도사린 편견 또한 함께 커진 셈이다.

강력범죄가 발생하거나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이 번지는 등 사회가 뒤숭숭할때마다 그 불안함을 택배기사들이 뒤집어쓰며 사회의 ‘속죄양’ 노릇을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메르스 사태로 택배물량이 크게 늘면서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집중국 직원들이 물류작업에 한창이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8일 물류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활동 중인 택배기사 수는 4만명으로 추산된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택배 물량은 16억2325만개에 달했고 경제활동인구 1인당 연간 61.8회 꼴로 택배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주 한번 가량은 택배를 통해 물건을 배달받는 셈이다. 그만큼 택배는 한국인들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여기에 메르스 사태가 점화된 이후부터는 물류량이 전월 대비 20~30% 가량 급증해 택배계는 추석이나 설 명절 때나 누릴 수 있는 ‘때 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메르스 사태로 택배물량이 크게 늘면서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집중국 직원들이 물류작업에 한창이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하지만 택배 이용량이 늘어나는 만큼 택배기사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초리에는 경계심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택배기사들이 ‘메르스를 옮길 수 있다’며 이들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마치 잠재적 메르스 운반자처럼 대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 인터넷 육아 커뮤니티에서는 “택배기사가 그 누구보다 이동량이 많으니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메르스를 퍼뜨리면 어떡하냐”라고 걱정하는 글이 올라왔다.

택배기사 뿐만 아니라 이곳 저곳 손을 거쳐 배달되는 택배 자체도 안심할 수 없다며, 비닐장갑 사용ㆍ소독제 분사 등 ‘메르스 택배 예방법’을 공유하기까지 한다.

고양ㆍ파주지역 배달을 담당하는 택배기사 A씨는 “걱정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매번 ‘문 앞에 놓고 가라’며 문전박대를 당하니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택배기사들에 대한 따가운 시선은 이번 뿐이 아니다. 성범죄나 강력 사건이 터져 사회가 불안할 때마다 애먼 택배기사들은 도매금 취급을 당하곤 한다.

한 택배업계 종사자는 “택배기사를 사칭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택배기사는 아니지 않느냐”라며 “여성들이 밤늦게 택배 받기 무서우면 ‘여성안심무인택배서비스’를 사용하라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오히려 택배기사를 더욱 위축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누명을 쓰고 좀도둑 취급을 받는 경우는 비일비재할 지경이다. 고객이 집에 없어 통화 후 고객이 원하는 곳에 물품을 놔둔 뒤에도 “택배를 못 받았다. 배달사고가 난 거 아니냐”며 항의 전화를 받기 일쑤다.

서비스업종의 특성상 이같은 경우에도 택배기사들은 연신 사과하며 무마시켜야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에 범죄위험이나 전염병 등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들의 불안을 타인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성향이 택배기사들을 불신하고 탓하도록 한다고 설명한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메르스 사태로 좁혀서 본다면 방역시스템 등 사회 제도에서 문제를 찾기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취약계층이나 직업군의 사람을 의심하는 극단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며, “일종의 ‘속죄양’을 찾는 심리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jin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