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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36. 그들만의 ‘새(鳥)상’ 바예스타…바다사자ㆍ펭귄의 땅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리태양이 사막을 달구기 전, 오아시스의 아침은 상쾌하기만 하다. 오늘 밤에 버스로 쿠스코(Cuzco)로 갈 예정이라 남은 시간은 바예스타(Ballesta)섬으로 가기로 한다. 바예스타는 “가난한 자들의 갈라파고스”라고 불리는 페루의 섬이다. 실제 갈라파고스(Galapagos)는 에콰도르도의 섬이라 오가는 데 비용과 시간이 적지 않게 든다. 갈라파고스에 비할 바야 못되겠지만 이곳에만 서식하는 각종 생물들을 만나러 바다로 간다. 바예스타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일단 파라카스(Paracas)의 선착장으로 향한다.


관광객이 많아 표를 구입한 후에도 한참 줄을 서야 쾌속선에 탈 수 있다. 쾌속선은 태평양 위를 30여분 신나게 달린다. 주황색 구명조끼를 입고 신기한 바다생물들을 보러 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린 아이들 마냥 환하다. 날씨도 좋고 배에 부딪힌 바닷물이 튕겨 올라와 살갗을 적셔도 즐겁기만 하다. 메마른 사막을 헤매다 오아시스 마을에서 하루를 묵었다. 지척에 태평양이 넘실거린다는 것이 머리로는 연상되지 않았는데, 몸은 이미 사막을 헤쳐 나와 태평양 위에 떠 있다. 이 좋은 날씨와 눈앞에 펼쳐진 이색적인 풍광들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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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스카의 지상화처럼 모래를 파서 그려놓은 음각화가 있는 섬을 지난다. 나스카는 가지도 않았는데 그 흔적을 여기서도 만난다. 배에는 가이드가 한 사람씩 있어 스피디한 배의 모터소리와 몰아치는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가이드를 듣는다.

독도와 비슷한 느낌의 섬들이 스쳐지나간다. 바다위의 외로운 섬들에는 새들이 찾아간다. 백만 마리의 새들이 살고 있다더니 진짜 새똥이 섬 위에 쌓여 조분석이 되어있다. 그 위에는 역시 새들이 옹기종기 앉아 쉬는 중이다.


배 여러 척들이 바다위에 떠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드디어 내가 탄 배도 섬에 근접한다. 섬의 작은 해변에는 바다사자들이 웡웡 소리를 내며 일광욕 중이시다. 이렇게 많은 바다사자를 본 적이 없다. 어미와 새끼들도 보이고 커다란 몸집에 카리스마 작렬하는 리더도 보인다. 사람들은 배를 가까이 들이댔다가 조금 멀리 돌아 나오다 하면서 평화로운 그들의 휴식을 지켜보기만 한다. 바다사자들은 사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기 볼 일만 본다.


바다사자가 뒹구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울어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서도 이 광경이 비현실적이게 느껴진다. 살면서 언제 이렇게 많은 무리의 바다사자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까? 무리지어 쉬는 놈들이 대부분이지만 대체 어떻게 올라간 건지 어떤 바다사자는 바위섬 위에서 홀로 휴식을 취하고 있어서 웃음이 난다. 사람과 개, 고양이 정도만 살아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세상은 넓고 생물도 많다. 희한한 구조의 섬과 희귀한 생물들이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대체 내가 인지하고 있는 세상이라는 것은 얼마나 작은 우물이었던 것일까?


머리 위로는 새 떼가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바다사자만큼이나 새소리도 시끄럽다. 고요한 바다 위의 섬일 것만 같았는데 무척이나 요란한 섬이다. 여기는 그들만의 세상이다. 수많은 새들이 날아다니기도 하고 어떤 새들은 바위에 모여 앉아 시끄럽게 수다를 떨기도 한다. 만화 속에서 보던 펠리컨도 실제로는 처음 본다. 그 자태가 하도 특이해서 눈길이 간다.


어느 바위섬에는, 세상에, 남극도 아닌데 펭귄들이 아장아장 걷고 있다. 자주 접할 수 없는 펭귄까지 보고 나니 바예스타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을 좋아하는 조카에게 이 사진들을 보여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싶어서 조카 몫까지 더 열심히 지켜본다.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라는 로맹 가리의소설이 생각나는 장면이지만 그 단편소설에서처럼 새들은 페루의 해변을 찾아와 죽지 않는다. 오히려 새들은 페루의 바닷가에서 힘차게 비상하고 있다.


한 바탕 유람이 끝난다. 바예스타의 생물들은 사람이란 존재를 인식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몰라도 시끌벅적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그들의 삶을 훔쳐보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살아갈 뿐이다. 배가 육지에 근접할수록, 사람이 점령한 바다와 해양생물들이 어울려 사는 바예스타 섬의 그것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돌아오는 배안에서 뜬금없이 ‘U.F.O’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만일 외계인이 존재하고 그래서 가끔 U.F.O가 사람의 눈에 띄는 거라면, 그들은 지구에 여행을 오는 것이 아닐까? 오늘 내가 바예스타섬에 근접해서 바다사자와 펭귄, 펠리컨과 새들이 사는 모습을 바라보며 신기했듯, 외계인들도 그렇게 구경만 하고 가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예스타의 해양생물들에게 인간이 이상하긴해도 해를 끼치지 않는 그저 신기한 방문자인 것처럼 외계의 여행자들도 지구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렇게 귀여워하며 보고 가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바예스타섬을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처럼,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연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지구가 더 살기 좋은 별이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오후, 배에서 내려 선착장으로 돌아온다. 사막을 달군 태양은 어김없이 해변에도 쏟아져 그 진가를 발휘한다. 땡볕에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기념품가게를 기웃거리다 해변으로 시선을 돌리니, 무심하게 날아온 펠리컨이 더위에 지친 날개를 쉬고 있다.

항구를 돌아다니는 것도 시들해져 그늘에 자리를 잡는다.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에는 새장에 갇힌 예쁜 새 두 마리가 구슬피 울고 있다. 지척의 푸른 바다와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바닷새들을 바라보는 새장 안의 새들은 정말 괜찮은 걸까? 주인 몰래 새장 문을 열어주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낸다. 소금기 가득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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