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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벙커재벌,이사회때만 귀국하는 회장…재해공포에 대처하는 日슈퍼리치들의 자세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일본의 고민은 재난이다(日本の悩みは災難である)”는 말이 있다. 화산활동과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 국민 누구든 재난을 예측하고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일본의 슈퍼리치들에게도 이 고민은 마찬가지다.
지난 2011년의 토호쿠 대지진 이후 일본의 거부들은 재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일부 슈퍼치리들은 생활의 거점을 아예 해외로 옮겼고, 일부는 일본내 거처에 상당한 규모의 대피소를 건설하기도 했다. 슈퍼리치들의 그러한 마음을 읽은 일부 사업가들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이동형 벙커 사업으로 뜬 사업가=늘 그렇듯 누군가의 위기는 다른 사람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 재난과 공포라는 힘겨운 상황 역시 사업가들에게는 기회가 된다. 바로 재난 대피용 ‘벙커’를 제작하는 건축가들이다. 

온다 히사요시(왼쪽) 키미도리건축 회장과 이동형 벙커 바리아(Baria).

일본 기후(岐阜)현 야마가타(山県) 시의 ‘키미도리 건축(キミドリ建築)’ 온다 히사요시(恩田久義) 회장은 동일본 지진이 발생한 2011년 이동형 벙커 ‘바리아(Baria)’를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벙커는 홍수와 해일 때는 물에 뜰 수 있는 구조다. 표면을 오각형의 다면구조로 구성해 외부로부터의 힘이 분산되기 때문에 내부의 사람이 충격을 느끼지 않는다. 강화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해 폭격이나 미사일의 충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온다 회장이 벙커 사업의 아이디어를 최초로 얻은 것은 지난 2002년 한ㆍ일 월드컵 때다. 굴러다니는 축구공을 보고 힌트를 얻어 2006년 오각형 축구공 모양의 컨테이너 하우스를 제작했다. 이후 2011년 쓰나미 사태를 목격한 뒤에는 사람들이 어떤 재난·재해에도 안전할 수 있는 벙커를 만들자고 결심했다. 

온다 회장의 ‘바리아’는 중형이 약 1050만 엔(약 9500만원), 대형은 약 1억5000만 엔(약 13억6000만원)을 육박한다. 재난 때 살 집을 사는 것이다보니 가격이 상당하다. 하지만 판매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구체적인 판매량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온다 회장은 2011년 제품 출시후 2014년까지 연 200억 엔 상당의 소득을 얻었다. 판매량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민간을 위한 대피소 건설작업에 참가해 이름값을 더 높인 건축가도 있다. 반 시게루(坂茂)는 종이를 소재로 해 보통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대피소를 제작했다. 1994년 처음 발상을 구체화한 이후, 올해 발생한 네팔 대지진까지 여러가지 재난 상황을 참조하면서 ‘종이 대피소’를 업그레이드해왔다. 덕분에 시게루는 건축계의 노벨상 격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후지산 세계 유산센터와 연 1억800만엔 규모에 프로젝트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 ‘이사회때만 귀국’ … 해외로 떠나는 회장님들 = 2011년의 동북부 대지진과 쓰나미 사태는 일본의 부호들 사이에도 큰 충격을 줬다. 1995년 고베에서 발생한 한신대지진에 비해 2011년의 지진은 슈퍼리치들이 많이 거주하던 도쿄와 인근의 지바(千葉), 가나가와(神奈川) 현에서도 체감할 수 있는 공포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이후 아예 거점을 옮기는 억만장자들이 눈에 띈다. 일본 열도가 아닌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일본 최대 광학 렌즈 기업 호야(Hoya)의 스즈키 히로시(鈴木洋) 회장이다. 스지키 회장은 아예 업무 거점을 싱가포르로 옮기고 이사회가 있는 날에만 일본에 귀국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시즈키 히로시 호야 회장(왼쪽)과 후쿠다케 소이치로 베네스홀딩스 회장.

일본 최대 교육기업인 베네스홀딩스의 회장인 후쿠다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郎)는 아예 뉴질랜드로 이주했다. 후쿠다케 회장의 자산은 11억달러(포브스 기준)로 현재 일본 21위의 부자다.
지유엠(GㆍUㆍM), 버틀러(Butler) 등의 생활용품 브랜드로 유명한 썬스타그룹의 카네다 쿠니오(金田邦夫) 회장 역시 스위스로 이사해 현지 법인의 대표로 취임했다. 

이들이 내세우는 해외 이전의 이유는 여러 가지다. 사업을 더 잘하거나, 나이들어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에 거처를 마련하기 위한차원도 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의 두려움’이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스즈키 히로시 회장은 “일본에는 지진과 원전의 위험도 있고, 정치가 고착화돼 있어서…”라고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지하 대피소 구축나서는 파워엘리트=국가 경제의 일부를 지탱하고 있는 부호들의 해외 이동을 여론이 달가워할 리는 없다. 그렇다보니 여론을 신경써야 하는 슈퍼리치들은 대안으로 지하 벙커를 선호한다. 자신의 집 지하공간에 상당한 규모의 사설 대피소를 마련하는 것이다.
일본의 주간 문춘은 동아시아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에이벡스(AVEX)의 마츠우라 마사토(松浦勝人) 사장이 집 지하에 상당한 수준의 재난 대피용 시설을 구축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평소에는 파티 및 여흥의 공간으로 쓰이지만 원래의 목적은 지진 등의 재난을 대비한 시설이라는 설명이다.
 
마츠우라 마사토 에이벡스 사장
 
일본 최고 거부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역시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관측이다. 그는 도쿄도 내에 무려 80억엔을 들여 지하 2층, 지상 4층짜리 대주택 건설에 나섰다. 이미 일본과 미국에 저택을 가진 손 회장이 새집 짓기에 나선 것은 지하에 대규모 대피시설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사설 대피시설을 구축하는 부호들은 많다. 일본 부자 전문 매체 유카시(Yucasee)에 따르면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사태 이후 자산 100억 엔이 넘는 부유층의 벙커 주문이 약 1000% 상승했다. 

복수의 부호들이 힘을 합쳐 규모의 대피시설을 구축하고 있기도 하다. 마이니치신문(每日)의 정치평론가 이타가키 에이켄(板垣英憲)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파워엘리트 중심의 지하 요새 건축이 연이어 진행되고 있다”면서 “신주쿠 역 반대편의 신주쿠 도청 옆 건물이 대표적인 사례다”고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지하 벙커는 폭탄 공격에도 버틸 수 있다. 그는 해당 건물과 인근 지하로의 굴착 공법도 자세하게 언급하기도 했다. 

슈퍼리치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오간다. 부호들이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한켠에서는 떠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평가도 많다. 그들이 거점을 옮기게 되면 지역 경제나 지역 세수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사태가 발생했던 직후인 2012년, 도쿄도의 동쪽에 위치한 지바 현에선 연수입 1000만엔 이상인 인구 가운데 1000명 정도가 현을 떠났다. 도쿄 남단에 위치한 가나가와 현도 1000만 엔 이상의 고소득자 500명 이상이 이탈했다. 일본내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고소득자들이 떠난다는 것은 그만큼 재해의 공포도 크다는 의미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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