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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 데레사의 도시‘아빌라’…곳곳 聖女의 흔적이…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수녀로 일생
세속화 돼가는 수도원 개혁에 앞장
수도원 17개 세워 가톨릭역사 큰족적
생가·가르멜수도원 등 발길마다 자취


[아빌라, 알바 데 트로메스=이윤미 기자] 로욜라에 이냐시오 성인이 있다면 아빌라에는 대(大) 대레사 수녀가 있다.

아빌라는 ‘대 데레사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 데레사 생가와 그가 창설한 가르멜 수도원이 이 곳에 있고 십자가의 성 요한의 자취도 남아있다. 올해 대 데레사 탄생 500주년을 맞은 아빌라는 데레사 수녀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와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려 각종 행사가 진행중임을 알려준다.

아빌라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북서족으로 약 85km 지점, 살라망카에서 동쪽으로 약 20km 지점에 위치한 로마시대에 건설된 작은 도시다. 돌산을 깨어 쌓아올린 독특한 구조로 거대한 로마식 성벽이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해발 1131m에 자리잡은 도시를 온전히 둘러싼 황톳빛 성벽은 압도적이어서 성 안과 밖은 전혀 다른 시공으로 나뉜 듯 보인다. 이 성벽은 11세기 후반 국왕 알폰소 6세의 사위 우르고위 백작의 작품이다.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1090년 9년에 걸쳐 2000명이 투입돼 완성한 성벽은 높이 12m, 둘레 2526m로 타원형 탑이 88개소, 성문 9개소가 있다. 특히 아빌라 대성당의 한 벽을 성벽으로 삼은 것도 이채롭다. 성벽 앞에는 대 데레사가 하느님을 만나는 황홀경에 빠진 모습을 형상화한 베르니니의 조각상이 놓여 있다. 
아빌라는 수도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약 85km지점에 위치한 로마시대 건설된 도시로 완벽히 보존된 성벽은 11세기 국왕 알폰소 6세의 사위 우르고위 백작의 작품이다.

이 작은 도시는 714년 이슬람에 점령된 뒤 11세기말 그리스도교에 의한 국토회복 운동이 일어나기까지 이슬람과 그리스도 대립의 최전선을 이룬다. 이후 대 대레사가 활동한 16세기엔 중세 수도원 개혁운동의 중심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자칫 마녀로 몰리기 십상인 중세사회에서 약자인 여성으로서 대 데레사의 두려움 없는 도전적 삶은 놀라울 정도다. 귀족 집안의 딸로 태어난 데레사는 9살 때 오빠랑 무어인들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겠다고 길을 떠났던 당돌하고 뜨거운 열망을 가진 아이였다. 방황과 병치레로 혼란스런 사춘기를 보낸 데레사는 1535년 20살에 아빌라에 있는 봉쇄 수도원인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간다. 그러던 어느날 기도 중에 예수께서 기둥에 묶인 채 매질을 당하는 환상을 본 후 데레사는 크게 각성한다.

데레사의 일념은 어린 시절부터 내내 오직 ‘하느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였다. 그는 인격적인 신을 감각적으로 느끼길 열망했다. 이런 뜨거움은 일 련의 신비체험을 통해 더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데레사가 33년 간 머문 가르멜 수도원 뜰에는 ’7궁방‘이란 표석이 땅에 깔려 있다. 이는 데레사가 하느님을 만나는 단계를 7개의 방으로 설명한 것이다. 
성벽 앞에는 대 데레사가 하느님을 만나 황홀경에 빠진 모습을 형상화 한 베르니니의 조각상이 있다

1-3단계는 개인의 노력으로 한 단계씩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지만 4-7단계는 선택받은 자만이 닿을 수 있는 단계다. 각 단계마다 부단히 노력해야만 다음 단계로 올라 설 수 있다. 데레사는 끊임없는 정진을 통해 자신이 경험한 신비로운 영적체험을 다른 이들도 함께 느끼길 원했다.

데레사가 머문 가르멜 수도원은 지금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운 장소는 수녀들의 당시 유품을 전시해 놓은 2층 방이다. 데레사는 수도자들이 기도만 하는 수도생활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바른 신앙생활도 가능하다고 봤다. 이를 증명하듯 2층 유품실에는 당시 수도자들의 손때 묻은 첼로와 기타, 북 등 각종 악기들이 전시돼 있다. 또 낮은 천정을 가로 지르는 굵은 버팀목들에는 각종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봉쇄 수도원인 이곳에서 수녀들은 심심할 때 그렇게 그림을 그렸다. 방 한쪽 벽에 쳐진 창살 너머로 수도원의 넓은 중앙 계단이 들여다보인다. 그 곳에는 ‘예수의 데레사’로 불리게 된 사연을 담은 영화같은 한 장면이 연출돼 있다.

전승에 따르면 수도원 원장으로 다시 가르멜 수도원으로 돌아온 데레사는 수도원 층계참에서 한 아이를 만난다. 아이가 먼저 “넌 누구냐?”고 묻는다. 데레사 수녀는 “나는 예수의 데레사인데 너는 누구니?”하고 되묻자, 아이는 “나는 데레사의 예수다”고 말한다. ‘예수의 데레사’란 별칭은 데레사의 회심과 관련이 있다. 데레사는 그의 자서전에서 “그 때까지 나의 생활은 나 자신의 것이었으나 그 후부터는 나의 생활은 내 안에 계시는 예수의 생활이었다”고 적었다.

당시 가르멜 수도원은 규율이 해이해지고 안에서도 귀족과 평민의 차이가 드러나면서 세속화돼 갔다. 데라사는 1560년 수도자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수도원 개혁에 나선다.

새로운 수도원 설립은 시대의 요구였다. 1560년 가르멜 창립 결의에 이어 1567년 8월 15일 메디나 델 깜포에 첫 수녀원의 문을 연다. 이 때 십자가의 성 요한 수사와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뤄진다. 다음해인 1568년 십자가의 성 요한에 의해 가르멜 남자수도원이 창립되고 데레사 수녀는 20년 동안 스페인 전역에 남녀 수도원 17개를 세우며 가톨릭 교회사에 큰 족적을 남긴다.

데레사 수녀의 사상은 신비신학으로 불린다. ‘하느님 없는 나는 무’라는 바탕 위에 데레사는 점점 더 영성적으로 깊은 신비체험을 하게 된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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