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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밀하게 황홀하게’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나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빛은 어두울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시ㆍ공간을 더듬어 빛과 어둠을 공감각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전시ㆍ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옛 서울역사, 문화역284에서다.

연세대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신수진씨가 문화역284 예술감독으로 부임해 맡은 첫번째 전시다. 타이틀은 ‘은밀하게 황홀하게’. 톱스타가 출연했던 영화 제목이 연상되지만 별 관계는 없다. 전체적인 전시 내용과도 큰 연관성은 없어 보인다. 

이상진 ‘라이팅 토크’

어디서 본 듯한 작품들도 있다. 한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이탈리아, 대만, 벨기에, 헝가리 등 총 9개국에서 초청된 작가 31개 팀이 143점의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미 다른 전시에 나왔던 작품들이 꽤 있다. 빛과 어둠을 요리한 주요 작가들의 근작이 소환된 탓이다. 

함진 ‘도시 이야기’ 상세 컷

즐기기엔 좋다. 하나의 작품이 장소에 따라 어떻게 다른 감흥을 주는지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다. 애초에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이었던 것으로 보일 만큼, 1500평에 달하는 옛 서울역사 공간과 각 작품들이 잘 어우러졌다. 큐레이팅의 힘이다. 

주명덕 ‘한라산’

전시장 1층에는 국내 흑백사진의 대가 주명덕과 민병헌의 작품들이 오랜만에 걸렸다. 주명덕의 사진 속 온 세상 풍경이 깊은 어둠 속에 잠겨 있다면, 민병헌의 사진 속 세상은 형체를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밝다. 빛과 어둠, 흰색과 검은색이 두 작가의 작품을 통해 교차한다. 

민병헌 ‘FS012’

1층에서 지하로 통하는 계단에는 함진 작가의 설치작품이 있다. 먼지나 티끌같은 오브제를 뭉쳐 만든 키네틱 조각을 걸어놨다. 공기의 흐름에 따라 살랑살랑 흔들린다.

역장실은 독일작가 올리버 그림의 방이다. 3대의 프로젝터가 벽면에 360도 영상과 무빙라이트를 쏜다.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는 영상, 건물을 철거하는 영상 등이 교차되며 도시 서울을 조망한다. 

장태원 ‘스테인드 그라운드’

귀빈실에는 이상진 작가의 설치작품이 나와 있다. 큐브 형태의 구조물 속에서 LED 조명이 시시각각 ‘빛덩이’를 만들어낸다. 빛을 쫓느라 눈이 바빠진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천정에 뮌(Mioon)의 조명 작품 ‘그린룸(RGB)’이 걸려 있다. 장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작품 중 하나다. 볼 형태의 조명 안에 미니어처 사이즈의 인물 조각들이 들어가 있다. 빛과 어둠이 만들어낸 그림자의 향연이 벽면에 펼쳐진다.

전시의 큰 묘미는 만 레이, 앙드레 케르테츠, 라즐로 모홀리-나기, 브랏사이, 완다 율츠 등 20세기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흑백 사진 30여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빛을 이용해 왜곡된 세상 풍경을 통해, ‘사진은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같은 공간에서 프랑스 아티스트팀 ‘스테노프에스’는 파리의 역사적 건물들을 촬영한 영상을 옛 서울역 레스토랑이었던 대식당 그릴의 천정에 투영시켰다. 알렉시스 브노의 ‘베란다(Veranda)’라는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오며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에브레웨어 ‘Soak’

미디어아트 작가그룹 ‘에브리웨어(Everyware)’는 관객들이 직접 만져서 완성되는 인터랙티브 작품을 선보였다. 관객이 손전등을 벽에 비추면 뒤에 숨어있던 새로운 영상이 나타난다. 손으로 하얀 천을 누르면 영상이 나타나는, 촉각과 빛을 연결한 작품도 있다.

깜깜한 밤에 찍은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낮에 찍은 사진처럼 보이는 장태원의 작품 역시 빛과 어둠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여기에는 시간이 개입됐다. 해진 다음부터 해 뜨기 전까지 최대 8시간 동안 노출을 해 사진을 찍었다. 이른바 시간을 이용해 빛을 축적하는 방식이다.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의 ‘빛-장식품’과 하지훈의 의자 작업은 익숙한 작품들이다. 공간을 관조하며 감상해 볼 수 있다.

모든 전시와 공연, 체험 프로그램은 무료로 진행된다. 7월 4일까지. 애써 그러모은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간이 한 달이 채 안된다는 것은 아쉽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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