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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르스가 바꾼 한국사회
[헤럴드경제=서경원ㆍ이지웅ㆍ서지혜ㆍ이세진 기자]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메르스 공포가 한국사회에 깊이 침투되면서 생활의 모습들을 다각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외출, 약속, 회식 등의 자제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저녁이 있는 삶’을 찾게 됐고, 이로써 새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됐다는 사람들이 많다.

뜻하지 않게 밖에 나가지 않는 ‘방콕족(族)’이 늘고 마스크 착용자가 많아지면서 출퇴근길의 풍경도 달라졌으며 항상 대형병원에 밀려 찬밥신세였던 동네병원들도 예상 밖 성황을 이루고 있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외부 활동이 뜸해지면서 112 사건ㆍ사고 신고 건수까지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손님이 줄어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고, 광장공포증 등 갖가지 불안증세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어두운 변화도 동반되고 있다.

▶저녁과 가족의 재발견=메르스 확산 여파로 직장인들은 저녁시간을 되찾게 됐다는 사람들이 많다.

당분간 회식을 금지하겠다는 회사들이 늘고 있고, 단체 행사나 야근도 자제하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되도록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 사람이 늘면서 평일에도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자리잡고 있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이 때문에 메르스 사태로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되새기게 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출산을 두 달여 앞둔 아내와 단 둘이 사는 김모(36·서울 동대문구·금융업)씨는 이달 초 메르스 사태가 확산되자 업무 약속을 제외한 회식 등 일정은 일체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씨는 “만삭의 아내가 너무 걱정되기도 하고, 정부의 헛발질을 계속 보다 보니 위험이 발생하면 누구를 믿기보다 아내를 포함한 양가 부모님까지 내가 살펴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작은 건설회사 간부인 정모(42·경기 성남) 씨는 지난달 말부터 회사 회식을 줄이고 이달 워크숍 일정도 취소했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방콕족(族)’ 등장=되도록 밖에 나가지 않고 모든 걸 집 안에서 해결하려는 방콕족도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인터넷 쇼핑과 배달음식 판매량도 증가했다. 대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이용객들은 확연히 줄어든 모습이다.

특히 감염 예방차원에서 외출을 삼가고 어린이집이나 학교의 휴원·휴교로 불가피하게 집에만 있는 ‘방콕 엄마’들도 많다. 이런 엄마들은 24시간을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경기도 화성에서 두살짜리 아기를 키우는 주부 강모(32) 씨는 “평소 때 같으면 문화센터나 키즈카페도 다니고 친구 엄마들과 수다도 떨고 그럴 텐데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서 뉴스만 보고 있으려니 힘들다”고 말했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새로운 패션코드 ‘마스크’=출퇴근길의 ‘마스크 패션’은 이제 익숙한 모습이 됐다. 버스나 지하철에선 마스크 낀 사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또 대중교통 이용시 지켜야 할 ‘기침 에티켓’도 생겼다. 기침 증상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급작스럽게 기침할 때는 침이 튀지 않도록 입과 코를 휴지, 팔꿈치 안쪽 등으로 가리고 하는 것이다.

집이나 공공장소에서 세정제를 사용하는 일도 보편화됐다. 곳곳에 세정제가 비치되다보니 급기야 한 커피전문점에서 수거대 위에 올려진 시럽을 세정제로 착각하고 펌프를 눌러 손을 비볐다 낭패를 본 웃지 못할 일화가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동네병원, 때아닌 성황=서울·경기 등지 대형병원이 메르스 확산의 진원지로 지목되자 대형병원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거두고 동네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전반적으로 병원 방문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 속에서도, 꼭 가야할 일이 생겼을 때라면 대형병원보다는 동네병원을 찾는 것이다.

삼성의료원에 따르면 하루 평균 8000여명이 내원하던 외래진료 환자 수가 메르스 병원 공개 후 30% 정도 급감했다. 보건 당국도 메르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가벼운 질병은 가급적 대형병원이 아닌 거주지 인근 의료기관을 이용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의 한 내과 원장 이모(55) 씨는 “환자들이 대학병원에 가겠다며 간단히 진찰만 받고 의뢰서를 써 달라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새는 오히려 대형병원을 기피하고 동네의원에서 해결해 보려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112 건수도 줄게 만들어=메르스는 범죄·치안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달 첫째주에 접수된 112 신고건수는 38만6659건으로, 전주(39만9515건) 보다 3.2%(1만2856) 줄었다.

112 신고는 날씨가 따뜻해질수록 늘어나는 특성을 보이는데 메르스 확산 조짐이 시작된 6월 첫주에 오히려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외부 활동이 줄었기 때문이다.

범인의 체포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일선 경찰서에선 범인 체포시 메르스 증상 여부부터 확인하고 있다.

경찰이 감염이 우려되는 기존 검문 방식의 음주단속을 중단하자 이를 틈타 취중 운전을 시도하는 ‘얌체족’도 늘었다. 심지어 메르스에 걸렸다며 사기 피의자가 경찰 출석을 거부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미묘한 한숨’=메르스 여파가 이어지는 가운데, 자영업자들 사이에 미묘한 한숨이 늘어나고 있다. 손님이 줄어 매출이 반토막이 나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손님이 많으면 혹시 감염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무턱대고 호황을 바랄 수도 없는 상황이다.

가장 직격탄을 맞은 업계는 소형상가에서 의류업, 제약업 등 사람을 상대로 하는 사업을 하는 이들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서비스업 중심의 자영업자나 창업자들의 관련 커뮤니티에는 이같은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약국을 하는 한 자영업자는 “열 나고 감기 기운이 있는 손님이 와서 약을 달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된다”며 “얼마간 문을 닫고 장사를 쉬어야 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장 매출이 떨어진 게 가장 큰 우려 중 하나다. 서울 은평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34) 씨는 “평소에는 아파트 주민들이 평일에도 끊임없이 왔는데, 아이가 있는 집은 최근 일주일간 한 번도 방문을 하지 않는 것 같다”며 “공간이 협소하다보니 방문을 꺼려 매출이 절반 이하로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갖가지 ‘사회공포증’ 호소자들 늘어=메르스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인 동시에 사회적 공포증을 유발시키는 심리적 병인(病因)이 돼 가고 있다.

메르스로 인한 공공장소 기피증에 더해 사람 많은 곳에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는 광장공포증(agoraphobia)이 확산되고 있다.

광장공포증이란 극장, 시장 등 같은 공간에서 군중 속에 있는 것이나 집 밖에 홀로 있는 것에 대해 극심한 심적 충격을 받는 것을 가리킨다. 넓게 개방된 공간뿐 아니라 버스, 지하철 등과 같은 대중교통수단 안에서도 나타난다.

대부분의 메르스 감염이 병원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흰색에 대한 백색공포증(whitephobia)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병원 건물과 의사 가운이 하얗기 때문에 백색만 보면 비이상적 두려움을 갖게되는 현상이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착용하고 다니는 마스크나 위압감을 줄 수 있는 메르스 방호복도 흰색이 대부분이란 사실도 백색 공포를 더해주고 있다.

접촉공포증(haphephobia)에 떠는 사람들도 있다. 접촉공포증이란 경미한 신체적 접촉에도 혐오증세를 동반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메르스가 악수 등 가벼운 신체접촉을 통해서도 전이될 수 있다는 생각에 누군가 자신의 몸을 건드리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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