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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릴러 소설, 이른 더위 타고 한국 공습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이른 더위 탓에 서늘한 스릴러 소설이 예년보다 일찍 나왔다. 그동안 좋은 반향을 얻은 유럽과 미국 소설, 그리고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의 인기 작가까지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리며 한국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벚꽃, 다시 벚꽃’(비채)은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걸작 미스터리. 이야기는 인자한 성품을 가진 사무라이 후루하시 소자에몬이 뇌물을 받았다는 누명에서 할복을 강요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유약한 성격의 소자에몬은 자신의 글씨체와 같은 수취증 앞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의 아들 쇼노스케는 에도의 쪽방촌에 머물며 결백의 단서를 찾던 중 뜻밖에도 낯익은 자객의 칼과 맞닥뜨린다. 흡입력 있는 스토리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이 작품은 미야베 특유의 섬세함으로 인간군상을 그려나간다. 권선징악이라는 단순한 결말과는 다른 미야베만의 차별화된 소설구성도 읽는 재미를 준다. 무사의 이야기지만 현대의 사회상과 잘 드러나지 않게 마련인 가족의 이면과 상처를 면밀히 파고들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유머와 페이소스를 잘 버무려내는 스토리텔러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나오미와 가나코’(예담)는 서늘한 복수이야기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남편의 폭력에 대항해 ‘클리언스 플랜(clearance plan, 남편 실종 계획)’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한 단계씩 실행에 옮긴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상습적인 폭력을 가하는 아버지로 인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백화점 외판부 여직원 나오미. 현재 남편이 휘두르는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가정주부 가나코. 나오미는 친구 가나코가 남편의 무자비한 폭력을 벗어날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공포에 짓눌린 채 살고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자 가나코를 대신해 ‘클리언스 플랜’을 세운다. 남편을 살해하고 암매장해 단순 실종으로 처리하기까지, 모든 경우의 수를 치밀하게 계산한 완전범죄라고 믿었던 플랜은 허점이 하나 둘 드러나면서 나오미와 가나코는 궁지에 몰린다. 오쿠다식의 속도감있는 문체와 탄탄한 구성력, 치밀한 복선이 서스펜스의 정석을 보여준다. 
             
넘치는 위트와 속도감으로 호평을 받는 미국 현직 의사 출신인 조시 베이젤의 ‘와일드 싱’(황금가지)은 네스호 미스터리에서 영감을 받은 블랙코미디 서스펜스. 과거 ‘베어클로’라는 별명으로 악명 높은 킬러였지만 ‘연방 증인보호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과거와 결별하고 뉴욕 맨해튼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는 피터 브라운은 모종의 사건으로 다시 쫒기는 신세가 된다. 그는 라이어넬 아지무스라는 새 신분을 얻고 유람선 의사로 지루한 나날을 보내던 중 한 괴짜 재벌로부터 특이한 제안을 받는다. 고생물학자 바이올렛 허스트와 함께 백색호수에 산다는 괴물의 진위를 확인해 달라는 것. 두 사람은 마을사람들을 탐문하고 다니다 백색호수의 미스터리에 미심쩍은 구석이 있음을 감지한다. 이 때 백색호수 탐험가들이 차례차례 등장하면서 예측불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액션과 희극, 정치 풍자까지 능수능란하게 짜내는 솜씨가 매력이다.

독일 스릴러의 대명사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몽유병자’(단숨)는 정신의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 심리와 무의식 속에 깔린 극적 요소를 예리하게 포착해 보여준다. 몽유병을 앓고 있는 레온은 밤만 되면 폭력적으로 변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지속적인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그의 병은 치유가 된듯 했지만 어느날 레온의 아내가 갑자기 사라진다. 이어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상황이 펼쳐진다. 레온은 자신이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궁금해하며 머리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다. 다음 날 아침 카메라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본 레온은 폭력적인 악마의 모습을 발견한다. 

몽유병자라는 기이한 소재를 통해 작가는 “당신은 잠들었을 때 어떤 사람인가, 그 사람은 당신이 알고 있는 자신인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프랑스 톱클래스 스릴러 작가 프랑크 틸리에의 ’신드롬 E’(은행나무출판사)는 프랑스 내 200만부 판매기록을 세운 화제작. ‘사르코 앤 앤벨 시리즈’ 3부작 중 첫번째 작품으로 시각적 영상미와 속도감 있는 전개로 시선을 모은다. 뤼시 앤벨 형사는 여름 휴가 중 기이한 사건에 맞닥뜨린다, 옛 남자친구가 영화필름 수집가에게서 구입한 1950년대 단편 무성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실명한 것이다. 불길하고 수수께끼 같은 시나리오에 영화감독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영화를 분석한 복원사는 또 다른 영상이 숨겨져 있으며 더 끔찍한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밝힌다. 같은 시각, 신원을 알 수 없는 다섯 구의 시신이 발견된다. 양손이 잘리고 눈과 치아가 뽑히고 두개골이 잘려 뇌가 사라진 채로 지하에 파묻힌 것. 행동분석가 프랑크 샤르코 형사가 이 기묘한 사건의 프로파일링을 위해 호출된다. 눈부시게 발전한 뇌 신경과학과 폭력, 악의 근원을 접목한 의학 스릴러로 프랑스와 이집트, 미국과 캐나다 등을 오가는 확장된 공간과 빠른 리듬으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몸의 긴장을 불러일으키며 오싹함을 주는 범죄 스릴러 소설은 더위사냥에 제격이다. 유난히 일찍 선보인 각 국의 스릴러물들은 다양하고 독특한 소재로 독자들의 선택을 폭을 넓혀준다.

벚꽃, 다시 벚꽃/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나오미와 가나코/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예담

와일드 싱/조시 베이젤 지음, 이정아 옮김/황금가지

몽유병자/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염정용 옮김/단숨

신드롬 E/프랑크 틸리에 지음, 박민정 옮김//은행나무출판사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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