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G병원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당시 방문하셨던 귀하가 노출됐을 염려가 있어 관리대상자로 분류했으니 당황하지 말고 자택에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추후 보건소 관계자가 전화드리겠습니다.”
일요일인 지난 7일 저녁 7시30분께 본지 기자의 어머니는 G병원으로부터 이같은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뜻밖의 메시지에 온 가족이 당황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보건소의 전화를 기다렸지만 40분이 지나도록 휴대전화는 울릴 생각을 않았다. 결국 기자가 먼저 G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다시 G병원으로부터 관할구청의 연락처를 받은 뒤에야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구청 관계자는 “환자(기자 어머니)가 골절상으로 G병원 응급실을 찾기 12시간 전,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가 G병원을 찾았다”면서 “확진 환자의 분비물이 남아있을 수 있는 만큼, 환자도 간접적으로 확진자와 접촉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해당 메시지를 받은 기자의 어머니가 자가 격리 대상자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6일 오후 9시30분, 응급실을 찾았던 건 기자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기자와 기자의 아버지도 같은 시간, 보호자로 응급실에 있었다.
이에 기자가 “G병원 응급실엔 나와 아버지도 갔는데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구청 측은 그제서야 “두 사람도 자가격리 대상자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관리대상자 파악에 구멍이 있을 수 있단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었다.
실제 G병원 확인 결과, G병원 측이 구청에 넘기는 정보는 내원 기록이 남아있는 환자의 것 뿐이었다. 이를 토대로 구청 관계자가 환자에게 연락을 한 뒤 보호자 등 추가 관리대상자를 찾았다.
기자가 이같은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자, 구청 관계자는 “(그래서 환자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이어 그는 기자 가족의 2주간 격리를 당부하며, “다음 날 구청 직원이 필요한 물건을 챙겨 댁으로 찾아갈 것”이란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구청 직원과의 통화로 기자 가족은 ‘패닉’에 빠졌다. G병원은 불과 이날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메르스 환자 확진ㆍ경유 병원이 아니었다.
취재를 하다 메르스 환자와 접촉할 수 있단 생각은 해봤어도 이렇게 ‘뜻밖의 장소’에서 환자와 간접 접촉을 해 격리를 당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2주간 외출이 금지된 것이다.
구청 관계자도 이같은 상황에 혼란스러웠는지 자택 격리 외 어떤 식으로 2주간 집에서 생활을 해야 하는지 별도의 안내조차 해주지 않았다.
온 가족이 돌아가며 몇 번씩 전화를 걸었지만 “2주간 식사는 어떻게 하고, 쓰레기 처리는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어쩔 수 없다”였다.
사태가 사태니 수긍할 수밖에 없었지만 막막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갔다. 냉장고도 텅 빈 상태였다. 이런 상황은 꿈에라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던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 어머니가 골절상을 입은 직후 끓여둔 곰국과 카레로 이튿날 아침을 때웠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기자와 기자 아버지는 직장인이다. 월요일부터는 출근을 해야만 했다. 상대적으로 이런 상황에 유연한 언론사와 달리, 기자 아버지의 직장은 보수적인 회사였다.
쉴새 없이 전화로 직장 동료, 부하직원, 상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럼에도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단 우려는 가시지 않았다. 직장인 자가격리자들 상당수가 겪을 고충이었다.
기자 가족을 담당하게 됐다는 구청 직원은 이날 오후 3시가 돼서야 연락을 해왔다.
이 직원은 우선 기자 어머니와 휴대전화로 한 차례 통화를 한 뒤 집 전화번호를 묻더니 전화를 끊었다.
이어 유선 전화로 어머니에게 ▷이름 ▷생년월일 ▷직장 ▷발열여부 ▷자가격리 생활수칙 별도 안내 유무 ▷필요 물품 전달 유무 ▷메르스환자 접촉 이후부터 격리 전까지의 방문 장소ㆍ접촉자 등을 물었다.
그러더니 다시 전화를 끊었다. 격리대상자들이 집에 있는지 각각 확인하기 위해 시간 차를 두고 유선으로 전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기자 아버지는 같은 질의응답이 끝나자 기자에게 수화기를 건네줬다. 기자에게는 휴대전화 번호도 묻지 않았다.
이 직원은 마지막으로 기자 가족에게 “최대한 서로간 접촉을 피하라”고 당부했다. 그 전까진 온 가족이 격리됐기 때문에 ‘한 데 지내도 상관 없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터였다. 직원의 안내를 받은 뒤에야 비로소 기자 가족은 실내 마스크 착용을 시작했다.
약 3시간 뒤에는 직원이 집으로 방문했다. ▷마스크 ▷손 소독제 ▷가구용 살균 소독제 ▷자가격리 생활수칙 안내문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들 물품은 가족 수에 딱 맞게 3개 씩이었다. 기다렸던 생수나 휴지 등 생필품은 없었다.
이날 오전 신청했던 직장인을 위한 ‘격리대상자 확인서’도 요청자가 많아 내일 다시 가져다 주기로 했다.
“코 앞 슈퍼도 못 가는데 어떻게 생활하면 좋겠느냐”는 하소연이 절로 터졌다. 직원은 선뜻 답하지 못했다.
이에 기자가 “대형마트 홈페이지에서 주문해 문 앞에 놓아달라고 하는 건 안 되냐”고 물었고, 그는 “어쩔 수 없지만 필요하면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고 멋쩍게 웃었다.
결국 기자는 필요한 물품을 인터넷으로 주문해 다음날 받기로 했다.
6시 방문을 끝으로 직원에게선 다음날 오전까지 연락이 없었다. 하루 두 번 실시하겠단 유선 전화 확인은 방문 점검으로 대체된 듯 했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가족들의 피로감은 상당했다.
운동량이 없으니 뭘 먹어도 속이 더부룩했다. “이렇게 집에만 있다 없던 병도 생기겠다”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왜 자가격리자들이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무릅쓰고 밖으로 나가려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사실 직원의 유선전화 점검이 모두 끝난 뒤에는 밖으로 나가도 알 길이 없어 보였다.
보건당국에서는 경찰 및 통신사에 협조를 요청해 자가격리자 부재시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실시한다곤 했지만,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나간다면 이마저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기자가 직원에게 이같은 사실에 대해 묻자, 이 직원도 “그렇기 때문에 격리자들이 시민정신을 발휘해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줄 필요가 있다”면서 자발적 격리를 호소했다.
이제 겨우 자가격리 생활 하루가 지났다. 일주일같은 하루였지만, 앞으로 13일을 더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과 답답함이 엄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