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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로 본 감염병] 고의 전염은 상해죄…의사 ‘보고 의무’ 엄격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사태에 대한 국민의 안타까움과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는 동안 법원도 이번 사태에 임하는 정부와 병원 국민의 모습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법원이 ▷메르스가 불가항력적이고도 돌발적인 성격의 감염병인지, ▷이번 사태를 다루는 국가와 병원 등의 행위 속에 과실에 해당하는 요소가 있는지, ▷감염자의 ‘억울하다’는 호소가 법적 보호를 받을 만한 수준인지 등을 살펴보는 것은 향후 예상되는 소송과 공판에 중요한 참조가 되기 때문이다.

아직 이번 사태와 유사한 감염병 관련 국가책임, 병원책임, 국민의 권리와 의무 등에 대한 판결이 없기 때문에, 법원은 사태 추이와 함께 유사 사건 판결의 전례, 법률의 입법취지 등을 훑어보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유사사건 판결은 대체로 국가의 책임, ‘재해’에 준하는 감염병의 범위에 대해 좁은 기준을 두고 있다.

▶국가 책임은 방역 실행 단계 의무 위반 따져봐야= 국가의 책임은 외래 전염병 차단 법규와 시스템 구비 여부, 실제 방역활동과정의 규정 준수 여부 등이 핵심 변수이다.

헌법재판소는 2008년 국가가 국민의 생명ㆍ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하였는가 하는, 이른바 ‘과소보호 금지원칙’의 위반 여부를 국가 책임을 가리는 기준으로 제시했다.

헌재는 특정 위험물질의 국내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정부 규정 여러 가지를 예시한 뒤, “보호조치가 완벽한 것은 아니라도 국가가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의 국민보호의무 위반 여부는 법규나 시스템의 구비 여부에서 찾기 보다는, 사태 발생 후 방역 실행단계에서의 구체적인 의무 위반 여부를 따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종플루 환자 치료 의사의 발병 “국가책임 아니다”= 서울고법은 최근 ‘보건소에서 신종플루 환자를 진료하다 사경을 헤맸고 영구적인 장애까지 입었다’며 전직 공중보건의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심대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최씨는 2009년 신종플루 의심환자들을 진료하다 자신도 고열에 시달렸고 동료 공중보건의가 처방해 주는 타미플루를 복용했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으며, 결국 혼자 보건소 2층 숙소에서 병마와 싸우다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재판부는 “해당 공중보건의가 신종플루에 감염됐다는 증거가 없으며, 의사로서 자신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면서 이 경우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해’급 감염병은 ‘급격하고, 우연히, 국외에서 온 병’= 법원의 전염병 판결은 보험사의 ‘재해’ 인정 여부를 가리는 잣대로 준용된다. 원칙적으로 바이러스 전염에 의한 사망은 재해나 상해로 보지 않는데, ▷급격한 발생과 전염 ▷일반적인 경로를 거치지 않는 우연한 전염 ▷토종 바이러스가 아닌 국외에서 온 신종 전염병 등일 경우 재해에 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예상치 못한 발병이고 일반적이지 않는 돌발 전염이라는 점에서 일반 전염병과는 다른 ‘특수한 경우’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특히 메르스는 법률과 고시, 약관 등 많은 전염병 규정에 일반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은데다, 감염자 조차도 단순 독감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재해’에 가까운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감염 알면서 정상적 일상 활동하며 전염시킨 행위는 ‘상해죄’= 형법은 자신이 감염병에 걸렸고, 타인과 접촉하면 전염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상적인 일상활동을 하면서 병을 옮길 경우, 상해죄로 처벌한다.

죄질에 따라 형법 257조1항의 보통상해죄를 적용할지, 258조의 중상해죄를 적용할지 결정된다. 일반상해죄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지만 중상해죄는 ‘(타인에게) 불구ㆍ난치의 질병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를 포함하는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무겁다.

감염행위가 상해죄가 되려면 고의성이 있어야 한다. 사례에 따라 감염자가 전염의 위험성을 아는 것만으로도 고의성이 성립될 수 있다.

▶의사가 감염병 진단을 보고하지 않아도 처벌= 의사가 ‘감염병 환자’를 진단한 뒤 이를 소속 의료기관장에게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도 있다. 경기도 한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사 한모씨는 2012년 7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권모씨등 20명에게 유행성이하선염으로 진단하고도 병원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혐의(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81조 1호, 11조 1항 1호 위반 등)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13년에는 유흥업소에 감염병 관련 건강진단을 받지 않은 사람을 고용한 업주가 감염병 예방관리법 81조 9호, 45조 2항 위반 혐의로 벌금 및 환형유치 유죄판결을 받았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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