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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세기 유럽을 강타한 ‘공자열풍’수수께끼
‘공자가 18세기 유럽 계몽주의의 수호성인’, ‘로코코 문화는 동양 선비론의 복사판’,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사마천의 자연지험(自然之驗)의 표절’...

서양문물과 사상의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 이는 수상하게 들린다. 억지 혹은 꿰어맞추기 정도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동서양 철학교류사와 특히 공자사상에 정통한 석학 황태연 동국대 교수와 김종록 전주대 교수가 펴낸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김영사)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실증적 자료들이 넘쳐난다. 저자는 1688년 영국 명예혁명에서 1789년 프랑스 대혁명까지 약 100년 간 풍미한 유럽 계몽주의의 불씨를 제공한 것은 다름아닌 공자철학임을 입증하는 리스트를 줄세워 놓았다.

‘공자 잠든~’은 1721년 7월12일 프로이센제국의 할레 대학의 한 결정적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총장 크리스티안 볼프가 요하임 랑게에게 총장 직무대행을 물려주면서 매우 이례적인 이임사를 발표한다.

“공자는 덕과 학식이 뛰어났고 신의 섭리에 의해 중국에 선물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공허한 명예욕에 유혹당하지 않고 백성의 행복과 복리를 위해 노력함으로써 자기의 재능을 전적으로 발휘했습니다.(...) 중국의 옛 황제들과 제후들은 정치가인 동시에 철학자이기도 했는데 철학자들이 다스리고 제후들이 철학하는 곳에서 국민이 행복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볼프는 공자철학을 그리스철학과 비교하며 우월성을 강조했다. 이 연설의 파장은 상상 이상이었다. 무신론자로 몰린 볼프는 프로이센을 떠나야 했지만 그의 연설내용은 삽시간에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며 지성인들을 자극했다.

볼프의 발언은 종교의 힘 없이 인간 본성의 힘만으로 훌륭한 덕행이 가능하다는 이단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는 신앙의 윤리화를 추구했던 시대를 거스르는 것인 동시에 당시 물밑에서 부글거리고 있던 경건주의에 대한 반발에 불을 댕겼다. 볼프의 추방은 볼프를 일약 ‘계몽의 총아’로 만들었다. 문제의 연설문은 해적판으로 인쇄돼 퍼졌으며, 1726년 정식 출간됐다.

볼프의 덕성주의 중국철학과 공자주의적 양민ㆍ교민국가론은 18세기 양호국가를 거쳐 19세기 근현대적 복지국가로 발전한데 이어 20세기 유럽의 국가유형으로 완전히 탈바꿈해 다시 동아시아로 돌아오게 된다.

볼프 사건은 일종의 발화제였다. 저자들이 제시한 각종 근거들은 17세기 유럽에서 문화, 사상적으로 얼마나 중국풍과 중국배우기가 뜨거웠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유럽에서 공자를 최초로 언급한 고틀리프 슈피첼의 책 ‘중국문예물 해설’(1660년), 본격적인 공자 관련 서적이랄 프로스페로 인토르체타 신부의 ‘중국의 지혜’(1662년)에 이어, 본격적인 연구서들도 줄을 이었다.

첫 연구서 격인 ‘중국 제국의 언어가 원초적 언어일 개연성에 관한 역사적 논고’에서 존 웨브는 중국 군주정을 “바른 이성의 정치원리에 따라 구성된 이 세상 유일한 군주정”으로 평가하며, 영국 군주가 고대 중국 황제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국을 유럽인의 관심대상으로 만든 획기적인 유교 경전 번역서는 ‘중국 철학자 공자 또는 중국 학문’. 1687년 필립 쿠플레 등 4명의 예수회 선교사가 루이 14세 칙령에 따라 출간한 이 책은 당대 자연철학 논쟁 뿐만아니라 영국 명예혁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18세기 중반에 들어서면 중국 열풍은 절정에 달한다. 구체제의 권위가 무너지고 종교적 사상적 회의주의가 만연하면서 철학자들은 자신의 주장 앞에 공개적으로 공자의 이름을 내걸게 된다. 볼테르는 공자의 탈종교적 인간상, 곧 인의 도덕철학, 사해동포주의적 휴머니즘에 매료된다. 그리스 철학자들을 공자와 나란히 인용하지 않을 정도로 공자를 숭배했다.

미적분을 창시한 수학자이자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유럽의 윤리와 정치의 열등함을 지적하며, 중국 정부가 유럽으로 도덕을 가르칠 중국 선교사들을 파견해주길 기대할 정도였다.

공자 예찬론자 볼테르와 동양 비방의 대가 몽테스키외의 치열한 논쟁, 중국을 잘 알지 못했던 루소의 오락가락 행보도 흥미롭다.

저자는 또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중농주의 자유경제론의 창시자인 프랑수아 케네의 기념비적 저서 ‘경제표’의 사상적 모태가 바로 공맹의 무위이치, 민본주의, 농본주의, 자유상업론이었음을 그의 궤적을 통해 보여준다. 현대 영국의 사상가 레슬리 영은 애덤스미스의 자유주의 경제학을 ‘중국산’이라고 단언한다.

저자는 동아시아로 다시 눈길을 돌려 자발적으로 제국주의를 포기한 15세기초 명나라를 평화와 사해동포주의를 설파한 공자철학의 실천으로 본다. 또 힘의 논리가 아닌 작은 나라와 큰 나라가 서로 섬기는 사대와 사소의 동아시아 외교철학도 가치있게 평가한다. 동양우월론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는 저자의 긴 탐색은 서구 컴플렉스 극복에 닿는다. 공자사상과 ‘패치워크 문명론’에서 답을 찾은 것이다. 데이비드 흄과 애덤스미스 이래의 경험론적 서구문화와 감성중심적 동양문화가 상호 보완하고 연대하는 게 신문명, 대안철학이라는 얘기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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