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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지드래곤 아티스트 만들기’…서울시립미술관의 무리수?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크로스장르전. 탈장르 프로젝트의 연속선상에서 준비 중. 대중문화와 현대미술을 접목시킴으로써 현대미술의 저변을 확대하고 나아가 ‘한류’로 대변되는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기회를 마련’.

지난해 말 서울시립미술관(관장 김홍희)이 발표한 ‘2015년 주요 전시 개요’ 중 6월부터 8월까지 열게 될 전시에 대한 내용이다.

‘두루뭉수리’ 공지했던 내용대로 서울시립미술관은 대중문화와 현대미술을 접목시킨 전시를 오는 9일부터 서소문본관에서 개최한다. ‘한류로 대변되는 한국의 문화’는 바로 아이돌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본명 권지용ㆍ이하 GD)이다. 
피스마이너스원 전시 포스터.

서울시립미술관은 지난 5월 26일, 연예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대표 양민석ㆍ이하 YG)와 손잡고 오는 9일부터 ‘피스마이너스원: 무대를 넘어서’전을 개최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션 GD와 국내ㆍ외 예술가들이 협업해 현대미술과 대중문화의 수준 높은 접점을 만든다는 취지다.

마이클 스코긴스, 소피 클레멘츠, 유니버설 에브리띵, 제임스 클라, 콰욜라, 파비앙 베르쉐, 건축사사무소 SoA, 권오상, 방앤리, 박형근, 손동현, 진기종 등 국내ㆍ외 작가 12팀이 이 전시에 참여했다.

그러나 전시의 취지와는 다르게 미술계에서는 벌써부터 논란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YG의 ‘GD 아티스트 만들기’ 마케팅을 위한 상업적인 전시에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공공기관인 서울시립미술관이 대관(貸館)으로 ‘판’을 벌여줬다는 것이다.

▶GD를 위한, GD에 의한 전시…‘GD 아티스트 만들기’ =“피스마이너스원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피스마이너스원이라는 제목이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피스마이너스원은 제 앨범의 로고를 뜻합니다. 그렇지만 저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제 안의 또 다른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중략> 이 전시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면, 인간 권지용, 가수 지드래곤에 대해 매체에서 나타나는 단편적인 모습 이외에 내면의 모습이나 생각을 보다 다층적으로, 더 가까이에서 보고 조금 더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전시 공식 사이트(http://peaceminusone.modoo.at)에 게재된 GD의 인삿말이다. 전시 타이틀인 ‘피스마이너스원’은 GD의 앨범 로고에서 따 왔고, 전시는 ‘인간 권지용, 가수 지드래곤과 조금 더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로 마련됐다는 것.

전시의 골자는 GD와 미술가들의 ‘협업’이다. 아이돌 가수 GD의 미술작품을 공개하는 전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상은 지드래곤을 ‘소재’로 기존의 아티스트들이 커미션(Commissionㆍ제작 의뢰) 받은 작품들을 선보이는 전시다. 최근 현대자동차, 한진해운 등 대기업이 문화마케팅의 일환으로 국립현대미술관, DDP 등에서 개최했던 커미션 전시와 비슷한 포맷이다.

이번 전시에는 YG 측이 작가들에게 작품 제작에 필요한 일정의 보수(Artist fee)를 지급하고, 전시 이후 작품을 모두 구매해준다는 조건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시 큐레이팅에는 신은진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와 함께 YG 측에서는 독립 큐레이터인 박경린씨가 참여했다. 그러나 참여 작가를 구성하는 것은 물론, 작업의 결과물에는 GD의 의견이 전폭적으로 반영됐다. 실질적인 전시 큐레이팅이 GD에 의해서 이뤄진 것. ‘협업’의 내용은 각 아티스트들이 GD에게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만든 작품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파악됐다.

결과적으로는 YG 측이 “GD가 젊은 작가들을 해외에 알리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밝혔던 당초 내용과는 다르게 젊은 작가들이 가수 GD 홍보를 위해 동원된 모양새가 됐다. YG 측은 국내 전시 이후 해외 순회전도 계획 중이다.

한 참여 작가는 “작가들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GD 쪽으로 시선이 쏠릴 수 밖에 없는 전시이기 때문에 작가가 튀어야 한다는 생각은 굳이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 내용은 내부 기밀”…서울시립미술관의 ‘무리수’=지난해 말 2015년 전시 계획을 발표할 당시 서울시립미술관은 전시의 주체가 GD라는 사실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단지 ‘대중문화’라고만 언급한 것. 그리고 지난 5월말, 전시 오프닝을 열흘 정도 앞둔 상황에서 깜짝 이벤트를 하듯 GD 전시를 공식 발표했다.

국립미술관은 물론, 메이저 상업갤러리들조차 연간 전시 계획을 발표할 때 작가 이름을 함께 공개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이를 위해 철저한 ‘기밀 유지’가 이뤄졌다. 미술관 전시를 계획하기 전, 작가와 작품성에 대한 평가와 함께 전시 개최여부 등을 따지기 위해 치러지는 학예회의도 극비리에 추진됐다.

미술관 한 관계자는 “전시 관련 세부 내용은 과장급 등 임원들만 긴밀하게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큐레이터들도 개괄적인 내용만 알고 있었을 뿐, 세부 내용은 미술관 내에서도 “내부 기밀”이었던 것. 관행적인 외부 자문 역시 받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서울시립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YG 측으로부터 대관료를 받을 예정이다. 공식적으로는 ‘공동 기획, 공동 투자’를 표방했지만, 이 공동 투자에 대관료가 들어가는 셈이다. ‘상업 전시 대관전’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장치로 읽힌다.

미술관 관계자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꽤 큰 액수일 것”이라면서 “더 좋은 전시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외부 자본도 필요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이처럼 ‘무리수’를 감행한 데에는 ‘흥행’ 요인이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서소문 본관 관람객 수는 70만여명. 이는 전년도인 157만여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이 고가의 해외미술관 작품을 대관 전시하는 ‘블록버스터’전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한 이후, 관람객 수가 뚝 떨어졌다. 실험적인 전시만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이런 상황에서 폭넓은 한류 팬층을 지닌 GD는 ‘관객몰이’가 충분히 가능한 브랜드였다.

전시는 아직까지는 미술계의 공감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 미술계 인사는 “어떠한 철학과 명분으로 GD를 선정했는지 의문이다. 공립미술관이라면 최소한 워크숍 등을 통해 미술계 안팎으로 합리적인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시를 큐레이팅한 GD의 미적 수준과 취향은 어떻게 검증됐는지, 혹은 미술적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요인을 GD가 갖고 있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미술계 인사는 “너무 젊은 가수가 전면에 나서서 전시를 하는 게 안 좋아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전시 파급력으로만 본다면 효과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립미술관의 ‘흥행 무리수’는 지난해에도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지난해 6월 아트 서바이벌 방식으로 논란이 된 프로그램 ‘아트스타 코리아(아스코)’의 톱3 작가 전시를 개최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측은 “블럭버스터 전시를 하지 않겠다고 알려진 것은 잘못됐다”면서 “팀버튼전(2013), 노르딕패션전(2013) 등 새로운 문화를 환기시키는 의미있는 블럭버스터 전시는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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