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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회 강타하는 ‘메르스 포비아(phobia)’…“택배도 안 받겠다”
메르스로 인한 첫 사망자 발생으로 공포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한 병원 응급실에 메르스 의심환자에 대한 안내 표지판이 붙어있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헤럴드경제=서경원ㆍ배두헌ㆍ이세진 기자]국내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로 인한 사망자와 3차 감염자까지 나오면서 메르스 확산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치사율이 높은 이 신종 바이러스에 언제든 나와 내 가족도 노출될 수 있다는 집단적 불안심리와 함께 인터넷상의 괴담성 유언비어, 정부 방역체계에 대한 불신까지 더해지면서 집, 학교, 병원, 회사, 대중교통 등 전방위적으로 ‘메르스 포비아(phobiaㆍ공포증)’가 엄습하고 있다.

자녀들에게 외출금지령을 내리는가 하면 학교, 유치원, 학원 등 교육기관에도 보내지 않는 부모들이 나오고 있다. 경기 화성 통탄지역 사립유치원들과 한 초등학교는 아예 이번주 임시 휴원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국내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로 인한 사망자뿐 아니라 3차 감염자까지 나오는 등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휴교령을 내린 유치원과 초등학교도 나오고 있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경기 지역서 두 초등학생 딸을 둔 임모(여ㆍ40) 씨는 2일 “아이들 선생님께 일단 이번주는 집에 있게 하겠다고 말씀드렸다”며 “인근 지역에서 확진 환자가 나왔다고 하는데 가만있을 순 없었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두고 있는 김모(여ㆍ45) 씨는 “딸이 친구들과 쇼핑몰에서 밥을 먹고 노래방에 가겠다는 걸 못 가게 했다”며 “되도록 사람 많은 곳은 못 가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메르스 의심환자가 숨진 병원이 소재한 경기지역 인근 사립유치원들은 이날부터 휴원에 들어갔다. 

경기도 화성의 한 초등학교도 2일 가정통지문을 통해 “메르스 확산에 따른 학부모님들의 불안이 높아짐에 따라 본교 운영위원회는 이번주 금요일까지 휴교하기로 결정했다”고 전달했다.

이어 “단 맞벌이 가정의 자녀 및 돌봄이 필요한 어린이는 학교에 등교할 수 있으면 등교 학생은 학교에서 보육 및 학습지도를 통해 안전히 있다가 귀가시간에 맞춰 귀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초등학교들도 메르스 관련 소식을 전하며 “외부인 접촉을 자제해달라”는 취지의 문자를 학부모에게 전송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경기도내 단체 행사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초등 돌봄교사 김종숙(여·51) 씨는 “메르스 혹자가 이 병원, 저 병원을 거쳐 갔다는 얘기에 되도록 병원을 안가고 약국서 약만 타는 식으로 조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약국은 때아닌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여의도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김민아(여ㆍ49) 씨는 “많은 사람들이 기침만 해도 메르스가 아니냐고 물어보러 온다”며 “약을 기다리는 환자들끼리도 메르스 얘기만 주고받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혹시나 있을 공기 전파 가능성이 걱정돼 마스크를 착용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늘고 있다.

부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유모(여ㆍ26)씨는 “지하철에서 근처 사람이 기침만 해도 자리를 피하게 된다”며 “나도 아침에 열도 나는 것 같고 불안해서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고 말했다.

2일 온라인 마켓 옥션에 따르면 메르스 공포가 급속도로 확산된 지난 주말(5월 30∼31일)의 마스크 판매량은 그 전 주말(23∼24일)에 비해 70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손 세정제는 147%, 칫솔살균기도 71% 판매가 늘었다.

중요한 시기를 앞둔 임산부들과 고3 수험생들 사이에서도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달말 출산 예정인 이모(여ㆍ35) 씨는 “지금까지 진통제도 안 먹고 버텨왔는데 마지막까지 걱정스럽다”며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부부들이 있다면 좀 미루는게 나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주부 신모(여ㆍ51) 씨는 “몇년 전 신종플루 때 수능을 제대로 못 본 수험생들이 있었는데 그때처럼 되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평택에 사는 김모(여ㆍ51) 씨는 “군대 간 아들에게 전화와서 집이 평택이라 휴가도 못 나간다고 했다”고 밝혔다.

회사도 예외 지역이 아니다. 여의도에 근무하는 회사원 최모(29) 씨는 “고열로 조퇴한 직원이 메르스 의심환자라는 소문이 전 사내에 퍼지면서 같은 층을 썼던 사람들뿐 아니라 회사 전체가 동요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사진=123RF

심지어 당분간 택배로 물건을 받지 않겠다거나 목욕탕 등 다중이용시설에 발을 끊겠다는 사람, 친한 지인의 결혼식이나 돌잔치도 축의금만 보내겠다는 이들까지 극도의 조심 반응을 보이는 시민들도 나오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 불신과 함께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는 인식이 높아져 사회적인 불안감의 크기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메르스는 공기중 전파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며 지나친 공포를 경계했다.

메르스 민관합동대책반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보건당국이 신뢰를 잃어 불안하시겠지만 시민 여러분들이 출퇴근길에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까진 없어 보인다”면서 “다만 메르스와 상관 없이도 공공장소에서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땐 입과 코를 가리고 하는 것이 에티켓”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시기엔 병원으로 병문안을 가는 것을 자제해야한다”고 덧붙였다.

대한의사협회 신종감염병대응 태스크포스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재갑 한림대 의대 교수 역시 “아주 가까이서 끌어 안거나 하는 긴밀한 접촉이 아니면 공기 중 전파 가능성은 없다”면서 “본인 스스로 메르스 감염이 의심된다면 병원을 갈 때 마스크를 꼭 쓰고 와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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