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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층간소음, ‘윗집’도 피곤하다
[헤럴드경제=이지웅 기자] 경기 김포의 한 아파트 3층에 살고 있는 ‘윗집’ 권모(여) 씨는 층간소음 ‘죄인’ 취급을 받다 난생처음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아랫집 여자는 작은 소리만 나면 시도 때도 없이 인터폰을 하고 ‘저녁 11시 이후에는 세수도 하지 말 것, 변기물도 내리지 말 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밤에 막대기로 천장을 ‘쿵쿵’ 쳐서 권씨를 위협하기도 한다. 관리사무소, 경찰도 손을 놓았다. 권씨는 “아랫집 때문에 잠을 못 자는 날은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사진=123RF

다세대 주택 3층에 살고 있는 B씨도 예민한 아랫집 눈치를 보느라 바깥보다 집안에서 행동을 조심한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 물건이 떨어지면 ‘아랫집에서 난리나겠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하곤 한다. 바람이 불어 방문이 강하게 닫히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아랫집은 ‘항의’ 차원에서 더 크게 문을 쾅 닫는다.

B씨는 “사람이 사는데 절간처럼 아무 소리도 안 날 수가 없는 일 아니냐”며 울상을 지었다.

층간소음 갈등이 심해지는 가운데 윗집의 모든 소리를 층간소음이라고 규정하며 이를 항의하는 ‘무개념’ 아랫집 행태에 윗집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있다.

어쩔수 없이 발생하는 생활소음까지 층간소음이라고 몰아붙여 죄인 취급을 한다는 것이다.

오찬호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층간소음의 초점은 주로 윗집에만 맞춰져 있지만, 미약한 소리마저 허용하지 않는 아랫집이 문제인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층간소음 상담 건수는 2012년 7021건, 2013년 1만5455건, 2014년 1만6370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환경부 생활환경과 관계자는 “이 건수는 아랫집의 지나친 항의까지 모두 포함된 것”이라며 “어찌할 수 없는 생활소음까지 항의하는 것은 규정에도 맞지 않는 처사”라고 말했다.

실제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환경부ㆍ국토교통부 시행령)’을 보면 층간소음은 직접 충격 소음(뛰거나 걷는 동작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 공기 전달 소음(텔레비전, 음향기기 등의 사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 등 두 가지로 정의된다.

특히 시행령은 ‘욕실, 화장실 및 다용도실 등에서 급수ㆍ배수로 인하여 발생하는 소음은 제외한다’고 콕 짚어 명시하고 있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나 세면대 소리 등은 아예 층간소음 항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층간소음 규정이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편이다.야간 층간소음 기준은 38데시벨. 이는 측정기를 30㎝ 앞에 대고 사람의 숨소리를 내는 정도이다. 조용한 사무실이 45∼50데시벨, 도서관이 40데시벨임을 감안하면, 결코 여유로운 기준은 아니라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층간소음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일각에선 이 문제를 이웃 간 갈등으로 ‘개인화’하지 말고, 건축 차원의 문제로 확대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찬훈 충북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바닥에 차음재를 설치하는 업계나 집의 구조체격인 콘크리트 슬라브 두께를 두껍게 하는 정부 규정 강화 등 건축 차원에서 층간소음에 접근하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의 경우 4월까지 층간소음 상담 건수는 총 6195건이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가량 줄어든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1∼4월은 집 안에 사람이 머무는 시간이 길고 문을 닫고 생활하는 경우도 많아 층간소음 민원이 1년 중 가장 많은 시기”라며 “이제 이 ‘최악의 시기’가 지나면서 계절적으로 층간소음 갈등은 당분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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