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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71세 이탈리아ㆍ53세 중국…‘억만장자 평균연령’으로 본 나라별 경제속살
[헤럴드경제 슈퍼리치섹션=홍승완ㆍ김현일 기자]마리아 프란카 피솔로(Maria Franca Fissolo). 지난 2월 별세한 미켈레 페레로(Michele Ferrero) 이탈리아 페레로(Ferrero)사 회장의 미망인이다. 올해 97세인 그녀는 243억 달러, 우리 돈으로 26조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한 이탈리아 최고 부자다. 거동도 쉽지 않을 만한 나이에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으면서 최고 부자가 됐다.

천수와 부를 함께 누리고 있는 피솔로 여사 본인은 행복할지 모르겠지만, 최고 부자가 백수(白壽ㆍ99세)를 코앞에 뒀다는 것은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그만큼 그 나라의 경제가 ‘연로’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50~60대 사업가들의 정열이나, 30~40대 사업가들의 아이디어와 패기가 수십년 전 만들어진 ‘오래된 자본’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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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슈퍼리치들의 연령대를 들여다보면 그 나라의 경제 상황이 ‘일부나마’ 읽힌다. 고령의 부자들이 많은 나라는 경제가 성장보다는 ‘현상유지’의 단계로 접어든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가 대표적이다. 자산 10억 달러를 초과하는 이탈리아 빌리어네어들의 평균 연령은 71.2세다. 세계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이탈리아 경제는 지난해 0.4%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당초 0.6~0.8% 정도 성장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기대에 크게 못미쳤다. 해외의 전문 기관들은 “경직적 노동시장,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구조 등과 함께 경쟁력 있는 새로운 산업의 부재 등이 이탈리아의 경제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며 정부의 개혁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헤럴드경제 슈퍼리치섹션이 자산 10억달러를 초과하는 전세계 빌리어네어 1712명의 연령을 살펴봤더니, 60대가 464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들이 쥐고 있는 총 자산은 1조7644억 달러였다. 다음으로는 50대가 418명이었다. 전세계 빌리어네어의 절반 정도가 50~60대라는 의미다. 70대도 349명으로 적지 않았다. 1ㆍ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이어진 세계경제의 고도 산업화 흐름에 선두에 서서 일가를 이뤄낸 세대들로 풀이된다.

하지만 국가별로 동향은 크게 달랐다.

부자가 가장 많은 미국의 경우 빌리어네어 519명의 평균 나이는 65.8세였다. 조사대상 20개국의 딱 평균정도 되는 수치였다. ‘70대 미국인’ 빌리어네어는 136명으로 단일 구간 가운데에 가장 많았다. 미국의 가장 큰 특징은 부자들이 연령대별로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80대의 워런 버핏(금융)부터 70대 코크 형제(자원), 60대 크리스티 월튼(유통), 50대 빌 게이츠(컴퓨터), 40대 세르게이 브린(인터넷서비스), 30대 마크 저커버그(모바일 서비스)까지 각기 다른 산업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자신의 세대를 대표했다. ‘스냅챗’의 공동 창립자인 에반 스피겔과 바비 머피 등 유일한 20대 빌리어네어를 보유한 나라이기도 했다. 전통적인 산업과 혁신산업이 적절하게 공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은 빌리어네어 220명의 평균 연령이 53.1세로 가장 낮았다. 연령대별 구조도 다른 서구국가들과는 차이를 보였다. 220명 가운데 50대 부자의 숫자가 96명으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66명으로 뒤를 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의 경제강국들이 대부분 50~70대 비중이 높았지만 중국만큼은 상대적으로 40대 부호들의 비중이 높았다. 개혁ㆍ개방과 함께 이뤄진 1990년대 이후의 고도 경제성장 시기에 창업한 인물들이 20년이 지나 본격적으로 큰 부를 일군 것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 역시 중국과 연령구조는 비슷했다. 50대 부호가 39명이었고, 40대가 30명으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각론에선 중국과 차이를 보였다. 중국은 40~50대 부자들이 부동산ㆍ금융ㆍ제조ㆍ인터넷 등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던 반면, 러시아의 젊은 부호들은 상대적으로 자원과 금융분야에 집중돼 있었다. 이른바 국가와의 유착을 통해 성장한 ‘올리가르히(신흥재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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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노쇠한 부자들이 많았다. 71.2세의 이탈리아에 이어 프랑스(69.5세), 스페인(67.9세), 독일(65.7세), 영국(65.2세) 등의 분포를 보였다. 이탈리아의 경우 혁신산업의 부자를 한 명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상위권 부호들의 대부분은 초콜릿, 선글라스, 약국 체인, 육가공, 보석, 명품패션 등과 같은 ‘오래된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프랑스는 부자 몇명이 자동차 기술시스템, 이동통신 등의 산업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주요 부호들은 명품, 보석, 치즈와 같은 분야에 종사하고 있었다. UBS는 최근 내놓은 ‘2015 억만장자 보고서’에서 이 같은 유럽의 상황을 지적하기도 했다. 

UBS는 “미국이 금융과 기술혁명으로 자산을 형성한 새로운 부자들을 꾸준히 배출했다면, 유럽은 1900년대 초 산업화의 흐름을 타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후의 2차 흐름에는 편승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경우는 40대 빌리어네어가 한 사람도 없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90대와 80대 부호들이 여전히 현역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한창 일해야 할 40대 부호가 없다는 점은 의외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의 장기 불황이 남긴 흔적으로 풀이된다. 다만 일본은 미국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4명의 30대 빌리어네어를 보유하고 있어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이번 조사결과 한국은 예상외로 젊었다. 29명 빌리어네어의 평균연령은 56.9세로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번째로 나이가 적었다. 29명 가운데 40대 부호 구간이 9명으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젊고 활력있다고 단언하긴 힘들다. 

40대 중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남매를 비롯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 상속부호(5명)들의 비율이 높다. 이들을 제외한 ‘자수성가형 40대 부호’ 4명 가운데서도 김택진 NC소프트 대표, 김정주 NXC 회장, 권혁빈 스마일게이트그룹 회장 등 3명이 게임산업에 종사하고 있어 ‘쏠림현상’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sw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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