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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김필수]리더의 빈 자리
#1. 얼마 전 아들이 물었다. “지휘자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 딱히 하는 일이 없다는 뉘앙스다. 연주자들이 알아서 연주하면 되지 지휘자는 왜 앞에 서 있느냐는.

#2. 국내 최고기업에 근무하는 필자의 친구. 다수의 직원을 거느린 보직임원이다. 하지만 그 역시 상사가 출장 등으로 자리를 비우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인지상정이다.

#3. 장기(將棋)의 승리원칙은 상대방 왕(王) 죽이기다. 전차부대(車)가, 기마병(馬)이, 포병(包)이, 일반병사(卒)가 아무리 많이 살아 있어도 왕이 잡히면 게임 끝이다.

리더는 중요하다.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는 불협화음을 낸다. 지휘자 주도로 화음을 낼 때도 그 색깔의 결정권자는 지휘자다. 누군가는 “지휘자는 작곡가의 영혼을 무대 위로 불러내는 주술사”라고 했다.

CEO가 자리를 비운 기업, 임원이 출장중인 사업부, 부장이 휴가중인 부서는 아무래도 아랫사람들이 느슨해진다. 게임으로 치면 파워의 60~70% 가량만 가동중이라고 보면 된다.

장기에서 왕의 가중치는 100이다. 왕이 다른 모든 것들의 존립 기반이다. 왕을 잃은 군대는 오합지졸이다. 적에게 곧 백기투항해야 할 서글픈 운명이다.

문화계와 관광기관의 리더 공백에 대해 안팎에서 걱정이 많다. 공백이라고 하기엔 그 기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국립오페라단 단장 자리가 사실상 1년2개월,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자리가 7개월, 그리고 한국관광공사 사장 자리가 2개월째 공석이다. 서울시 산하의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 자리도 5개월째 비어 있다. 이 가운데 공모 진행 소식이 들린 곳도 있는데, 함흥차사다.

수장(首長)이 없어도 돌아가니,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조직이라고 좋게 봐줘야 할까. 아니면 앞서 지적한 대로 60~70% 정도만 가동하며 그럭저럭 운영되는 실정이니 신속한 대처를 촉구해야 할까.

모든 조직에는 비전이 있다. 비전은 나침반이다. 요즘으로 치면 내비게이션이다. 조직이 나아갈 곳을 가리킨다. 비전은 리더와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지만, 큰 틀과 방향 설정은 리더의 몫이다. 리더가 조직에 색깔을 입힌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재임기간 1955~1989)의 베를린필과 사이먼 래틀(2002~2018)의 베를린필이 다르고, 마크 제이콥스(1997~2013)의 루이비통과 니콜라 게스키에르(2013~)의 루이비통이 같을 수 없다. 

리더가 없다는 건 조직의 내비게이션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며 애둘러 돌아가도 된다. 와중에 기름을 더 쓰고(재무 비효율), 운전자와 승객들이 더 피곤해 하는 걸(인사 비효율) 기꺼이 무릅쓴다면 말이다.

조직운용의 두 기둥은 인사와 재무다. 리더의 공백 속에 앞서 언급한 조직들은 몸살을 앓고 있다. 시설건립, 기획전시, 기획공연, 국제행사 등 곳곳에서 유무형의 비효율이 불거지고 있다.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것인가. 이럼에도 불구하고 상급기관이 인사와 재무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라면 직무유기이고,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능력미달이다.

수장(首長) 잃은 조직은 오늘도 물어 물어, 또 돌고 돌아 힘겹게 서울로 가고 있다.

pils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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