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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깝고 뜨겁게…쭉~ 갑니다”
추민주 연출, 뮤지컬 ‘빨래’ 10주년 내달 기념무대…여전히 삭막한 서울살이 서민에 위로
2003년 한예종 졸업작품에서 첫 출발
세월호 등 10년 동안 시대변화도 반영
2000회 공연 제것 넘어 관객들의 것



올해 10주년을 맞는 뮤지컬 ‘빨래’는 다음달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기념 공연을 연다. 블라인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10주년 기념공연 6회차는 티켓 오픈 1시간 만에 전부 매진됐다.

‘빨래’는 그동안 주로 200~300석 규모의 소극장 무대에 올랐다. 3000회 가까이 공연하며 50만명을 감동시켰다. 이달말에 종료되는 16차 공연까지 ‘빨래’를 거쳐간 배우만 해도 123명에 달한다. 창비출판사의 ‘고등국어1’ 등 3개 교과서에 ‘빨래’가 소개됐고, 지난 2012년에 이어 올해까지 9차례 일본 공연이 진행된다.

▶한예종판 ‘어벤저스’의 졸업작품에서 출발=‘빨래’에는 강릉에서 서울로 올라와 반지하방에 월세로 사는 나영, 몽골에서 온 이주 노동자 솔롱고, 장애인 딸을 둔 주인할매 등이 등장한다. 고단한 삶을 사는 서민들이지만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시종일관 빵빵 터지는 유머와 ‘참 예뻐요’와 같이 서정적인 노래들도 인기 요인이다.

‘빨래’는 200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작품에서 출발했다. 극본과 연출의 추민주를 비롯, 무대감독에 김태형, 솔롱고역의 민준호, 마이클역의 이재준 등은 현재 대학로에서 내로라하는 스타 연출가들이다.

지난 20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추민주<사진> 연출은 “졸업작품에 참여했던 멤버들도 10주년 공연에 친정집에 놀러오듯 모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주년 기념 공연에서 추 연출은 하모니카를 연주한다. 민찬홍 작곡가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배우들이 합창하는 순서도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일본 외에 추가 해외 진출 관련 계획도 발표한다.

‘빨래’는 2005년 ‘국립극장 이성공감 페스티벌’에 당선돼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초연했다. 그해 한국뮤지컬대상 작사ㆍ극본상을 받으며 주목받아 2006년 상명아트홀에서 재공연에 들어갔다. 하지만 당시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6개월 공연할 예정이었지만 3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추 연출은 1년간 대본을 고쳐썼고, 그 사이 군대에 다녀온 민찬홍 작곡가는 추가로 곡을 만들었다. 2005년 초연 당시 1시간 30분이었던 공연 길이는 현재 2시간 40분으로 늘었다. 삽입곡도 7곡에서 18곡으로 증가했다. 이야기에 살이 붙으면서 관객들의 공감대도 넓어졌고, 2008년 이후 한해도 빠지지 않고 공연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제가 ‘빨래’를 썼으니까 제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2000회까지 공연이 이어지자 제 것을 넘어 관객들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자식이 다 커서 자기가 가야할 길을 스스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빨래’는 대대적인 마케팅이나 홍보없이 입소문 덕에 저절로 관객이 밀려들었다. 우연히 ‘빨래’를 보러 온 일본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빨래’의 일본 진출까지 성사시켰다. ‘빨래’ 일본팬들은 초연극장인 별오름극장까지 성지순례를 다닌다.

영화 ‘아저씨’의 배우 김희원, 가수 겸 배우 임창정, 뮤지컬계의 톱스타 홍광호도 ‘빨래’의 열성팬이다. 김희원은 ‘빨래’의 예술감독이고, 임창정과 홍광호는 2009년 공연 당시 솔롱고로 출연했다.

“김희원 선배님은 전혀 모르는 사이였는데 어느날 차 한잔 마시자고 하는거예요. 제 앞에서 ‘빨래’ 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읊고 노래도 하셨죠. 임창정씨는 ‘시골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에 왔던 때가 생각난다’며 격하게 출연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홍광호씨처럼 좋은 배우가 부를 만한 노래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안녕’이라는 곡을 새로 만들기도 했죠”

▶삭막한 서울살이에 위로=‘빨래’의 주인공 나영은 비정규직 서점 직원이다. ‘서울살이 몇 핸가요’라는 노래 가사에 나왔던 최저임금은 2005년 2840원에서 올해는 5580원으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여전히 ‘빨래’는 삭막한 서울살이를 견디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다.

“‘빨래’는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노동’에 대한 이야기예요. 열심히 일했는데도 일자리를 박탈당했을 때의 절망감과 지방에서 올라와서 방을 구할 때 서러움 등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죠. 이주노동자, 이주여성의 경우 10년 전에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문제였다면 지금은 내 주변의 일이 됐죠.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직 없어요”

10년 동안 큰 틀의 이야기는 바뀌지 않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도 반영했다. 극중 버스운전사는 세월호 추모 리본을 달았고, 취객은 ‘땅콩회항 사건’을 풍자했다.

“세월호 사건이 난 이후 제주도, 광주 등을 다니면서 보니까 버스 운전기사들이 노란 리본을 많이 달고 계시더라고요. 취객이 등장하는 장면은 배우들에게 애드리브를 허락했어요. 요즘 사람들이 ‘세상이 이래서 되겠어’라며 술 먹고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죠. 관객들이 빵 터질만한 이야기를 찾느라 배우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요”

‘빨래’가 인기를 끌면서 대극장 무대로 옮기거나 영화ㆍ드라마로 제작하자는 제안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추 연출은 관객들과 “가깝고 뜨겁게” 만나기 위해 소극장 공연을 지속할 생각이다. 영화보다는 ‘빨래’를 소설로 옮기는 작업을 우선 진행 중이다.

‘빨래’에는 영남대 국문과 졸업 후 서점에서 일하다 서울에 올라와 반지하방에 살았던 추 연출의 경험이 녹아있다. ‘빨래’로 성공을 거둔 딸 덕에 추 연출의 어머니 이아름씨는 지난 8일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저에게 어머니는 건강한 여성상이예요. 어머니는 장을 보러 가면 늘 가장 연로하신 할머니의 나물을 사세요. 그냥 사는 것도 아니고 제가 창피해서 뒤돌아서서 있을 정도로 흥정을 해요. 단순히 연민이나 동정이 아니라 관계 맺는 것을 즐기시는 거죠. 그런 멋진 어머니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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