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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신 가득한 몸으로…자본주의 이중성을 고발하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이 그림에 19금 딱지를 붙여야 할까요?”

“글쎄요. 홍콩 개인전 때에는 19금 딱지가 붙었죠. 암스테르담에서 피자업체와 상업광고 콜라보레이션을 한 적이 있는데, 버스정류장 같은 공공장소에는 못 붙이게 하더라고요. 암스테르담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작품 이름은 ‘붉은 뱀(Red Snake)’.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이 영상 속에선 뱀의 붉은 표피가 온몸에 문신으로 뒤덮인 여성(신체)이 누워 있다. 적나라하게 벗은 몸은 정면을 향해 있고, 이를 어루만지는 손들이 등장한다. 관능적이다. 
Red Snake, 30sec loop 3D animation, 2015 [사진제공=박여숙화랑]

김준(49) 작가는 ‘문신 회화’라는 일관된 주제로 20년 넘게 작업해오고 있다. 과거에는 살덩어리와 똑같이 만든 오브제 위에 실제 문신을 새긴 전위적인 작업들로 주로 미술관 전시와 비엔날레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김준 작가의 개인전이 22일부터 6월 21일까지 박여숙화랑(강남구 청담동)에서 열린다. 그동안 뉴욕 선다람타고르갤러리를 통해 해외에서는 활발한 활동을 펼쳐 왔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위성 전시에도 참여해 현지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전시 소식이 뜸했다. 국내 메이저 상업화랑과 손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Somebody-018, c-print, 120×120㎝, 2015 [사진제공=박여숙화랑]

작가는 2000년대 이후부터 3D 프로그램으로 그래픽 작업을 해오고 있다. 붓 대신 픽셀로 형상화된 인체와 문신은 더욱 정교해졌다. 절단된 신체들이 뒤엉켜 있고, 온통 동물의 표피를 형상화한 문신으로 뒤덮여 있다. 악어, 타조, 뱀피, 송치 등 명품백과 같은 사치품에 주로 쓰이는 가죽 문양들이다. 다양한 ‘물질’의 유혹이 문신이라는 콘셉트와 맞물렸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패션업계의 지지를 받았다. 패션 디자이너 베라 왕의 2011 S/S 컬렉션은 그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국내에서는 디자이너 이상봉이 김준 작가와 콜라보레이션 전시를 선보이기도 했다.

사진 속 오브제는 진짜 몸인 것처럼 보이지만 다 가짜다. 일부는 가짜 티가 팍팍 난다. 애초에 진짜처럼 보이게 할 의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욕망하는 모든 것은 ‘가짜’임을 보여주듯 말이다. 작가는 “본질 자체가 다 유령”이라고 말했다. 
Somebody-023, c-print, 70×70㎝ 2015 [사진제공=박여숙화랑]

현재 우리나라에서 문신은 의료행위로 규정돼 있다. 따라서 전문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의 시술은 불법이다. 음지에 묻혀 있던 민감한 이슈를 작가는 양지로 끌어냈다. 문신 가득한 몸을 벗겨놓고, 사회의 통념을 향해 정면 도발했다.

“2003년 문신가게라는 전시를 한 적이 있었어요. 문신을 범죄로 몰아가는 상황이 짜증났어요. 그래서 그 인식을 바꿔보자는 생각에 타투이스트(Tatooistㆍ문신사)들을 불러모았죠.”

‘몸’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된 페인팅이 자연스럽게 문신으로 옮겨갔다. 그러면서 문신을 공부하게 됐고, 문신이 단지 장식적인 것만이 아닌, 상처를 가리기 위한 용도로도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스스로 원해서 문신을 새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타의에 의해 죄인의 낙인이 되기도 했다는 사실 역시 그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김준 작가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디지털 작업을 하면서부터 작품도 팔리고 “먹고 살만해졌다”지만 그에게도 청춘은 힘겨웠다. 자본주의가 둘러쳐 놓은 그물망에서 허우적대던 시절이 있었다.

“부모님이 미대 대학원까지 공부를 시켜주셨는데, 외아들이라고는 변변한 직업도 없었죠. 용돈은 드려야 되겠고…. 은행 대출이 안되니 카드 돌려막기를 하게 됐어요. 한 포털사이트에서 무심사 대출을 해준다는 광고를 보고는 믿을 만한 사이트니까 괜찮을 줄 알고 500만원을 끌어다 썼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자만 1000만원이 넘더라고요. 그게 바로 사채였죠.”

다행히 디지털 작업으로 작품이 팔려나가기 시작하면서 빚을 갚을 수 있었다. 당시의 쓰디쓴 경험들은 작품으로도 반영됐다. ‘돌려막기’ 하던 카드들을 문신 작업으로 선보였다. 초기작 ‘지옥도’ 역시 당시 작가의 삶을 반영한 작품이다.

씁쓸한 일화는 또 있었다. 지난 20년 간 해왔던 작품들 다수가 현재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돈 때문이다.

“작업실이 크지 않았어요. 월세가 비쌌으니까. 그런데 미술관 전시는 계속 했으니 작품은 차곡차곡 쌓여만 갔죠. 재고가 쌓이듯이 말이에요. 결국 돈 주고 팔았어요. 버린거죠. 쓰레기였으니까.”

돈 받고 작품을 판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내다 버렸다는 얘기다. 이것이 물리적 공간이 필요없는 디지털 작품으로 옮겨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때 자본주의 사회의 ‘루저’였던 그였기에, 자본주의의 이중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무의식마저 파고든 자본주의 욕망을 문신이라는 기호로 대변했다. 특히나 문신이라는 다층적인 의미의 소재는, 그 이중성을 고발하기에 가장 적절했다. 문신이란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예술작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기괴하고 징그러운, 저급한 하위문화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문신에 대해 또 다른 해석을 덧붙였다.

“문신을 할 때에는 마취를 하지 않아요. 고통의 과정 자체도 문신이라는 행위에 포함되는 거죠. 처음에는 아프지만 곧 그 고통에 적응되요.”

그래서 닮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끝없이 욕망하며 사는 우리네 삶이 어느새 고통에 둔감해져 있는 것과 말이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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