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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수 기자의 상수동이야기19>홍대에서 상수동 그리고 연남동, 이젠 어디로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최근 시간이 날 때마다 서촌을 자주 찾게 된다. 작은 골목길에 들어서면 동네 슈퍼가 있고, 그 옆엔 낡은이발관이 보인다. 굳이 하늘 높이 바라볼 필요가 없다. 나즈막한 집들은 나긋나긋 말한다. 잠시 목에 힘을 빼도 된다고. 

내 눈 위에 또 다른 세상이 있지 않은 동네는, 이젠 흔치 않다. 아파트과 빌딩 위 세상은 땅 위에 있는 우리들보다 더 화려하고 비싸다. 내려다보는 소수와 올려다봐야 하는 다수. 변모한 동네는 그렇게 우리의 목을, 마음을 피곤하고 무겁게 한다.

골목길의 문화는 낮지만 다양하다. 높고 크지 않지만 오밀조밀한 맛이 있다. 똑같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이 세상에 어찌 똑같은 집에 똑같은 가게에 살고 먹을 수 있을까. 지금은 이런 변화를 보며 추억에 잠기지만, 이제 자랄 내 아이들은 놀이동산에서나 접할지 모르겠다. 골목길 문화.

홍대는 압축적으로 이를 보여준다. 홍대에서 상수동으로, 그리고 연남동으로 점점 밀려나는 골목길 문화가 말이다. 홍대의 변화를 오랜 기간 함께 한 김남균 그문화다방 대표를 통해 그 역사를 엿봤다.

홍대엔 문화가 있었다. 극수소의 사람만이 해외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시절, 그 시절을 벗어나 점차 많은 이들이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이를 퍼뜨린 곳이 홍대다. “그냥 전파된 게 아니라 ‘우리화’된 때”가 홍대문화라고 김 대표는 말했다. 작은 작업실을 갖게 되고, 나만의 기타를 구매하며 그렇게 오밀조밀 홍대 문화를 만들어갔다. 연극, 무용, 실험 미술이 모였고 또 그들을 위한 인프라가 생겼다. 여기저기 잠재돼 있는 문화가 한곳에 모여 작지만 각각 의미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홍대가 변하기 시작했다. 철길이 사라지면서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퍼지고 사람이 몰리면서 임대료도 폭등한다. 작은 가게는 하나둘씩 부서지고 합쳐져 거대한 클럽으로 변모했다. 버틸 수 없었다. 작지만 다양한 맛을 멋을 만들어낸 가게, 사람들은 홍대를 하나둘씩 떠났다.

그들이 새롭게 자리 잡은 곳이 상수동이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상수동은 폐품 집이 몰려 있던 곳이었다. 지금도 당인리 발전소 인근엔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당인리발전소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던 시절, 상수동은 홍대를 떠난 이들이 안착할 수 있는 새 보금자리였다.

상수동도 조금씩 변했다. 당인리발전소 굴뚝에 검은 연기가 사라지고 수증기가 대신했다. 신축건물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또다시 임대료는 폭등한다. 상수역과 합정역을 잇는 큰 도로를 두고도 임대료 차가 벌어졌다. 최근 이곳에 미용실을 낸 한 주인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임대료를 피해 홍대에서 상수동으로, 이젠 당인리발전소 인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인리발전소는 현재 공원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당인리발전소가 공원으로 변하면, 이 주인은 또다시 새 자리를 찾아봐야 할까 걱정이다.

최근엔 연남동으로 하나둘씩 가게가 옮겨가고 있다. 상수동이 변한 이후다. 상수동에도 하나둘씩 대형 가게가 들어서고 있다. 화려하고 큰 건물들이다. 홍대에서 자취를 감춘 골목길 문화는 상수동에서 미처 꽃을 다 피우기도 전에 또다시 사라질 조짐이다.

사라져갈 골목길 문화를 지키려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가 이어진다. 어느덧 목 아프게 생긴 상수동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로 말이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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