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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태조 왕건이 漢族의 후예?
고려 500년사는 조선이나 삼국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해가 부족하고 덜 조명받는 게 사실이다. 그 중 하나가 고려왕실의 기원이다. 무엇보다 고려 왕실과 왕조의 역사를 담은 ‘편년통록’이 전하지 않는 것도 한 이유다. 박종기 국민대 교수는 ‘고려사의 재발견’(휴머니스트)을 통해 고려왕조의 기원설과 다민족 사회, 고려의 국교 등 잘못 알려진 것들을 수많은 사료를 바탕으로 조목조목 따져 바로잡기에 나선다.

무엇보다 고려왕조의 기원설과 관련, 저자는 ‘편년통록’의 주요 내용이 실린 ’고려사‘의 첫머리 ‘고려세계’를 통해 태조 왕건의 6대조를 훑어내린다. 여기에는 태조 왕건이 시호를 내린 3대조뿐 아니라 6대조까지 기록돼 있는데, 시호를 내릴 당시 3대조인 시조원덕대왕이 4대조가 되고, 대신 당나라 숙종이 3대조로 추가된다. 당나라 황실의 혈통을 가져다 고려 왕실을 미화하려 한 것이다. 최근 중국은 동북공정에 따라 중국 후당의 책봉조서를 다르게 해석, 왕건의 선조를 중국 회하유역의 명문거족으로, 회화유역 한족의 후예인 왕건이 바다 건너 제후국 고려를 건국했다는 식으로 달리 역시를 쓰고 있다.

박 교수는 고려의 뿌리와 관련, 송나라 황제에게 올린 보고서인 ‘고려도경’에서 서긍이 왕건의 조상을 ‘고구려 대족의 후예’라 한 점을 내세운다. 서긍이 사신으로 단기간 고려에 체류한 점을 볼 때 고려의 역사에 대한 이런 서술은 당시 고려인으로부터 얻은 역사지식에 근거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한민족이 단일 민족이라는 주장도 고려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고려는 외국인을 관직에 적극 등용하고 귀화인을 받아들여 당시 전체 인구의 10%가 이민족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고려의 국교를 불교로 보는 ‘불교 국교론’도 사실과 다르다. 당시 고려인들은 낭가사상과 풍수지리설도 받아들였으며 수신은 불교를 기반으로 했으나 통치는 유교의 바탕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또 고려 의종은 술과 연희에 빠져 지내다 끝내 보현원이라는 별궁에서 무신들에 의해 왕위를 뺏긴 무능하고 유약한 군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의종을 폐위하고 권력을 잡은 무신들이 그렇게 기록한 것이란 얘기다. 의종은 문벌귀족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지만 그들 대신 환관과 측근 무신을 정치 파트너로 삼아 왕실의 중흥과 왕권 강화를 도모한 신성군주의 면모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책에는 개방성과 역동성, 다양성과 통일성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고려역사에서 구현됐는지, 거란과의 100년 영토 전쟁을 통해 결국 보주(의주)를 되돌려받은 고려왕조의 등거리 실리외교의 실체도 담겨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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