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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쾌한 셰익스피어…연극 ‘페리클레스’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연극 ‘페리클레스’는 분명 ‘리어왕’, ‘맥베스’와 같은 셰익스피어 작품인데 무겁기는커녕 웃겨서 쓰러진다. 꽁꽁 막아서 기름칠을 한 관 속에 넣어 바다에 던져졌던 아내가 살아났는데도 웃느라 논리를 따져볼 겨를이 없다. 가벼움과 유쾌함으로 무장했지만 막이 내릴 무렵 늙은 페리클레스가 던지는 ‘시간’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셰익스피어의 후기 낭만주의 경향을 담은 ‘페리클레스’가 지난 12일부터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올랐다. 연극 ‘한여름밤의 꿈’ 등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흥겹게 전달했던 양정웅 연출의 작품이다.

해설자 가우어역을 맡은 유인촌이 객석 통로로 걸어들어와 “여기는 고대도시 안티온”이라고 소개하면서 극은 시작된다. 티레의 왕인 페리클레스는 안티온의 앤티오쿠스왕으로부터 노여움을 사 쫓기는 신세가 된다.

페리클레스는 티레, 안티온에 이어 다소, 펜타폴리스, 미틸레네까지 5개 도시를 떠돈다. 그는 펜타폴리스의 공주 타이사와 결혼해 딸 마리나를 낳았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페리클레스와 마리나는 여러 나라를 떠돌며 온갖 고초를 겪지만 극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우어의 재치있는 설명이 중간 중간 이어지기 때문이다. 각종 패러디도 웃음을 자아낸다. 

다소에서는 굶주림을 호소하던 백성들이 갑자기 발리우드(인도영화)의 한장면처럼 춤을 춘다. 펜타폴리스에서 벌어지는 무술 시합은 마치 오디션프로그램 ‘K팝스타’를 보는 것 같다. “아프리카 청춘이다”, “오빠. 나 마음에 안들죠?” 등 개그콘서트같은 대사도 등장한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동화책 속 그림같은 무대다. 가로 35m, 세로 20m에 달하는 무대 전체에 모래 60톤이 깔렸다. 모래에는 거대한 다이애나 여신 머리 조각상, 샹들리에, 뱃머리가 묻혀 있다.

무대는 배우가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가는데 30번 가까이 발을 떼야할 정도로 넓었다. 광활한 무대 위에서 쉴새없이 바뀌는 장면을 따라가다보면 어느 새 2시간 40분이 훌쩍 지나간다.

젊은 페리클레스는 과거 부족함 없이 살던 삶을 떠올리며 “시간이야말로 인간의 제왕이다. 자기가 원하는 건 취하면서도, 정작 인간이 원하는 것은 주지 않는구나”라고 탄식한다.

늙은 페리클레스는 “많은 일을 겪어왔지만 지나 오니 찰나였다. 시간은 과거라는 등불을 들고 현재를 비춘다. 헤어진다 해도 다시 만날 희망이 있는 것, 이게 바로 산다는 것 아닌가”라고 회고한다.

짧은 시간 여행을 떠났던 관객들에게 긴 여운을 남기는 대사다. ‘페리클레스’는 오는 31일까지 공연한다.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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