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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박용근]‘번아웃’ 학습 세대
< Burnout >
어떤 일에 지나치게 집중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무기력해지는 정신적 탈진 상태가 온다. 이를 번아웃 신드롬(Burnout Syndrom) 또는 탈진증후군이라고 한다. 더 이상 의욕 없이 극도의 정신적인 피로감과 무기력증을 느끼고, 심하게는 우울증으로까지 악화되는 증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이 학업에서 ‘번아웃’을 느끼는 것 같다. 대학 입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등교해서 밤 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한 뒤 밀린 숙제를 해야 하고, 주말과 방학에는 또 다른 학원에 다녀야 한다.

그렇게 명문대에 입학해도 끝이 아니다. 단순히 명문대 입학이 삶의 목표였다 보니,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생들과 상담하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휴학을 하고 싶어요. 너무 지쳤어요’라는 고민을 가장 많이 듣는다.

또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해 학점 관리는 기본이고, 어학, 리더십, 각종 경시대회 등 수많은 스펙을 관리해야 한다. 중간중간 지쳐 낙오되는 동료들이 생겨도 그들처럼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더 채찍질해야 한다고 되뇌이며 끝나지 않을 무한 경쟁으로 몸을 내던진다.

우리나라 학생은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고등학생의 주간 평균 학습 시간은 35시간인데 반해 우리나라 학생은 무려 50시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생이 ‘공부를 즐겁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된 것이 현실이다. OECD 국가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도 놀랍지 않다. ‘수학ㆍ과학 공부를 좋아한다’고 답한 우리나라 학생은 10%가 채 안 된다. 최하위다. 같은 조사에서 싱가포르 학생은 35%가 넘는다.

이렇게 ‘번아웃’ 상태로 학창 시절을 보내다 보니, 스스로 본인이 무엇을 잘 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고민해 볼 수가 없다. 아니 시간이 없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인이 돼 사회에 나간 학생이 갑자기 새로운 분야에 몰입해서 즐겁게 배우고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사회 전체로 보면 불행한 일이다.

물론 시장 경제 체제에서는 무한 경쟁을 피할 수 없고, 노력과 결과에 따른 보상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인적자본을 바탕으로 수출을 통해 국부(國富)를 유지해야 하는 우리나라 현실 상 과거와 다른 새로운 경쟁력이 필요하다. 많은 학생들이 배움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번아웃’돼 사회에 나가는 현 상황은 개선돼야 한다.

학생에게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아니 그럴 수도 없다. ‘입시 시계’가 시작되는 초ㆍ중학교 학생은 학업이나 진로 선택 문제에서 자기 결정을 할 수 없는 매우 취약한 위치에 있다. 교육정책의 개선, 교사의 교육 방식 전환, 학부모의 의지가 모두 필요하다.

부모의 소득수준에 상관 없이, 공부를 좋아하고 잘할 수 있다면 학생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명쾌하고 간단한 기준과 적절한 변별력을 가지는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입시 정책이 필요하다.

1000여 가지에 달하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현 입시 전형은 공부만 잘하는 일반 가정의 학생에게 불리하다. 몇 년 과정을 앞지르는 선행학습과 다양한 경시대회를 경험하고, 여러 악기를 다루고, 외국 오지로 봉사활동을 다녀온, 그래서 스토리가 있는 자기소개서와 수많은 입증 자료를 준비할 수 있는, 소위 중산층 이상 고소득 전문직 자녀에게 유리한 제도다.

교사는 학생이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지금은 공교육조차 일단 학생이 알고 있다고 치고, 숙제와 시험으로 평가만 하면 ‘학생들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학생은 남이 출제한 비슷한 문제가 나오면 틀리지 않을 수 있지만, 새로운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다.

학부모는 조기교육을 강요하는 사교육의 상술이나 주변 이야기에 겁먹지 말고, 자녀를 믿고 본인이 원하는 삶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양육해야 한다. 자녀의 학업 스케줄ㆍ스펙 관리를 담당하는 코치가 아닌 자녀가 의지할 수 있는 울타리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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