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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樂]작은 기적의 현장…눈물바다된 푸른달극장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 지난 11일 푸른달극장에서 연극 ‘손순, 아이를 묻다’ 프레스콜이 시작되자마자 카메라 60여대의 셔터 누르는 소리가 우레와 같이 쏟아졌다. 마치 아이돌가수의 기자회견장에 온 듯했다. 하지만 극이 고조되자 관객들은 자발적으로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셔터 소리 대신 여기저기서 소리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막이 내리자 땀을 비오듯 흘린 배우들에게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관객 4명뿐이던 극단의 공연을 11회차 모두 매진시킨 작은 기적이 대학로에서 일어났다. 디시인사이드 연극뮤지컬(연뮤갤)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연덕(연극덕후)들의 힘이다.

지난주 극단 푸른달의 박진신 연출이 쓴 글을 보고 감동받은 연덕들은 ‘손순’ 공연(5월 12~25일)을 전부 매진시켰다. 5월 31일까지 추가 공연도 이끌어냈다. 그덕에 5월 폐관 예정이었던 푸른달극장은 한달 연장할 수 있게 됐다.

극단 기획자가 리플릿(간략한 책자)을 만드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자 연덕들은 프로그램북을 만들어주겠다고 나섰다. 연덕들의 자발적인 모금 결과 프로그램북 제작비는 500만원 넘게 모였다.

비록 참여한 프레스(언론)는 적었지만 프레스콜도 개최했다. 프레스콜은 기자, 사진기자 등을 모아놓고 취재나 사진촬영을 위해 시연하는 것이다. 이날 프레스콜은 언론보다 관객 위주로 초청해 ‘모두모두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푸른달극장은 원래 82석 규모지만 이날 프레스콜을 위해 53석으로 줄였다. 큰 렌즈가 부착된 카메라를 든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연덕들은 이날 프레스콜 전 극장 앞에 물, 음료수, 간식거리도 두고 갔다. 극단 관계자들이 감사인사를 하기도 전에 물건만 놓고 사라진 팬도 있었다.

프레스콜 시작 전 박 연출이 무대 위에 올라서자 박수가 터져나왔다. 박 연출은 “관객들이 알려주신대로 프레스콜을 하려고 했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인삿말을 했다.

‘손순, 아이를 묻다’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손순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손순은 어린 아들이 노모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것을 보고 아들을 산에 묻기로 결심한다.

이 연극의 주인공도 이름이 손순이다. 손순의 어머니는 치매, 아들 유하는 정신병에 걸렸다. 과일장사를 하며 어렵게 살던 손순은 “입이 하나만 줄어도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며 유하를 버리기로 결심한다.

손순이 유하를 뒷산 나무에 묶는 장면부터 관객들은 자발적으로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셔터 소리 대신 사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순역을 맡은 배우 이재원은 땀이 비오듯 쏟아져 옷이 다 젖을 정도로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손순’은 박 연출이 직접 극본을 썼다. 박 연출은 학창 시절 ‘손순’ 이야기를 읽고 “어른들이 너무 못됐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 다시 ‘손순’ 이야기를 읽었을 때 손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박 연출은 “제가 손순이고 연극이 유하라고 생각하고 극본을 썼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난 뒤 박 연출은 돌아가는 관객 한명한명에게 허리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프로그램북 제작을 맡은 한 관객이 찾아와 통장을 보여주며 500만원가량 모였다고 하자 “거짓말 같아요”라고 말했다.

관객들이 모두 돌아간 뒤 박 연출에게 “이전에 ‘손순’을 공연했을 때도 이렇게 관객 반응이 뜨거웠냐”고 물었다. 박 연출은 “관객이 거의 없었다. 보통 다섯명”이라고 답했다.

“저희 극단이 만드는 극 자체가 어둡다보니 그동안에는 초대권을 줘도 관객들이 오지 않았어요. ‘우리는 옳지 않은가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처럼 봐주실 줄은 몰랐어요”

푸른달도 다른 극단처럼 여러차례 정부 지원금을 신청했다. 하지만 인맥도 없고 신춘문예 당선과 같은 자격 조건도 갖추지 못해 번번히 떨어졌다.

“부산연극제에서 선보인 ‘보물상자’는 행복한 극이예요. 마지막으로 행복하게 극을 올리자고 마음먹었어요. 배우들이 많이 슬퍼했는데 아무도 내색을 안했어요. 막상 막을 올렸는데 배우 9명에 관객은 4명이었어요. 익숙한 일이었죠”

지난 6일 ‘보물상자’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식사할 때 박 연출은 혼자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때 푸른달 기획자가 연뮤갤에 올라온 글을 보여줬다.

“관객 한분이라도 저희 연극을 행복하게 보셨다는데 위로를 받았어요. 관객분이 극중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하셔서 연뮤갤에 글을 썼죠. 상상도 못했던 일인데 많이 도와주셔서 너무 행복하고 무섭기도 해요”

‘손순’ 공연 수익금으로 푸른달극장은 6월까지 한달 연장된다. 티켓값 외에 극단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는 팬들도 적지 않다.

박 연출은 푸른달극장에서 6월 3~17일 마임극 ‘인생은 아름다워’를 공연한다. 올해 중 푸른달은 가수 하림과 음악연극 ‘해지는 아프리카’도 공연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밖의 계획은 모두 미정이다. 현재 푸른달극장 분장실을 사무실로 쓰고 있지만 6월 이후에는 어디로 옮길지 알 수 없다. 푸른달의 기적이 이어지는 것은 푸른달과 관객들의 관심에 달려있다.

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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