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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新)문맹세대 엄지족의 슬픈 자화상 ‘대필(代筆)’
어버이날ㆍ스승의 날 감사 편지도 ‘대필(代筆)’로…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가정의 달 5월에 ‘대필(代筆)’이 성행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푹 빠져 책과 멀어진채 단문메시지로 의사소통을 하는 요즘 세대들에게 편지와 같은 장문의 글을 쓰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선택한 곳은 ‘대필 서비스 앱’이다.

문맹이 많았던 과거에 서류나 탄원서 등을 대신 써 주던 ‘대서소’ 가 오늘날 온라인으로 진화해 재등장 한 것이다. 

글 쓰는 법을 잃어버린 ‘신(新)문맹세대’ 엄지족들의 슬픈 자화상인 셈이다.

대학생 김 모(20)씨는 고등학교 은사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 위해 인터넷에서 ‘스승의날 감사 문구’ 를 검색하던 중 ‘편지 등 각종 글 대필’한다는 블로그를 찾았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선생님과 어떤 관계였는지 특별히 넣고 싶은 문구가 있는지 등에 대해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대필을 의뢰하니 불과 몇시간 만에 e- 메일로 편지를 받을 수 있었다.

김씨는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막상 글로 표현하려니 너무 어려웠다”고 대필 서비스 사용 이유를 말했다.

이처럼 5월 들어 대필을 의뢰하는 이들은 상당수에 달한다. ‘어버이날 문구’, ‘스승의날 감사 문구’ 등은 최근 인터넷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점령하기도 했다.

실제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쇼핑하듯 쉽게 편지를 살 수 있다. 가격은 A4용지 한 장당 5000원 선에서 10만 원 정도까지 천차만별이다. 소위 ‘고스트라이터(ghost writerㆍ대필작가)’들이 글 못쓰는 세대 속에서 새로운 수입원을 발굴하는 것이다.

수년간 편지 대필을 해 온 박 모씨(43)는 “본인이 편지를 직접 쓰기에는 너무 바빠 집중을 못할 것 같을 때 의뢰를 많이 한다”며 “가정의 달에 의뢰가 특히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필된 편지를 보면 개인적인 사연들이 엉성하게 짜깁기되어 있거나, 상투적인 말이 반복돼 의뢰 만족도는 크게 높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휴대폰을 손에 쥐고 놓지 않는 이른바 ‘엄지족’들에 대한 글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다 사회적인 관계 단절성은 점점 심화되어 이같은 대필 문화가 앞으로도 성행할 것으로 지적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터넷 문화 보급과 함께 대부분 단문 중심의 소통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글 쓰는 법을 잃어버렸다”며 “교육과정에서 서술형 평가를 강화한다고 해도 외워서 베껴 쓰는 정도에 그쳐 진정한 의미에서 글쓰기 교육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임 교수는 “관행상 편지를 써야하는 기념일이 매년 돌아오니 편의주의적으로 남에게 돈 주고 맡기는 것 같다”며 “글 자체에 대한 경시도 우려되며 이 같은 세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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