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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혼모‘주홍글씨’에…입양줄고 유기는다
오늘 열번째 입양의 날…출생신고 의무화 등 영향
입양절차는 까다로워져…베이비박스 유기 날로 증가


#. 20대 후반의 미혼 직장 여성 A씨는 자신이 아기를 가졌단 사실을 임신 6개월 무렵에서야 알게 됐다. 그녀는 아기 아빠가 누군지조차 알지 못했지만 아기를 낳았다. 하지만 혼자서 키울 엄두는 나지 않았다. 미혼모라는 사회적 시선이 두려운 건 둘째치고, 주위의 눈총이 두려워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가난이라는 현실도 발목을 잡았다.

A씨는 아동복지기관 등에 전화해 입양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아기의 출생신고를 한 뒤 입양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에 A씨는 고개를 떨궜다. 입양숙려기간 7일동안 아기를 데리고 있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지난 2월 설 연휴를 앞둔 어느날 새벽, A씨는 아기를 데리고 서울 관악구의 한 교회 앞에 설치된 ‘베이비박스’를 찾았다. 그곳에 자신의 사연이 담긴 편지와 함께 아기를 두고 왔다. 자책감에 눈물이 흘렀다. 편지 말미에는 “아기랑 같이 죽을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출산을 했어요. 저는 비록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지만 아기는 축복받으며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쓰여 있었다.

입양의 날인 11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입양전문기관인 동방사회복지회에서 입양대기 아동이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국내입양 활성화를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 ‘입양의 날’이 11일로 열번째 돌을 맞은 가운데, 지난 2012년 8월 입양특례법이 개정이후 입양이 오히려 미혼모들의 신원을 노출시켜 이들에게 오히려 ‘주홍글씨’를 찍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출생신고 의무화’ 등 입양 절차가 까다롭게 바뀌면서 신원 노출을 꺼리는 미혼모들이 아이를 버리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법 개정의 취지는 입양된 아기가 양부모의 친자식인 양 허위로 출생신고 되거나 위장 입양되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입양특례법이 시행되면서부터 아이를 입양 보내려면 친부모가 출생신고를 해야 하는데 10대 미혼모의 경우 아기를 호적에 올리게 되면 미혼모라는 것이 사실상 기록에 남을 수밖에 없다. 

경제ㆍ사회적으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미혼모들이 아기를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내몰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친모만 출생신고를 할 수 있어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를 친부가 입양 보내지 못해 아예 포기하는 사례도 늘었다.

실제로 특례법 시행이후 정식 입양은 오히려 줄어든 반면, 베이비박스를 찾아 아기를 버리고 가는 미혼모는 부쩍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영아유기 발생건수는 2009년 52건에서 2010년 69건, 2011년 127건, 2012년 139건 등으로 꾸준히 늘어나다 개정된 입양특례법 시행 이듬해인 2013년에는 225건으로 급증했다.

베이비박스를 시작한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따르면 이곳과 경기 군포시 새가나안교회 등 2곳의 베이비박스를 통해 버려진 아기는 2011년에는 37명, 2012년 79명, 2013년과 2014년에 각각 252명, 280명으로 급증했다. 

올들어서도 지난 4월까지 이미 94명의 아기가 버려졌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조태수 부목사는 “사람들은 미혼모를 두고, ‘왜 그런 삶을 사느냐. 본인이 실수했으면 본인이 책임져야하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누구든 언제 실수할지 모르는 것”이라며서 “사회에선 비난하더라도 잘잘못을 떠나 이들을 품어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입양특례법 개정과 영아 유기 증가는 상관관계가 부족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복지부 입양특별대책팀 관계자는 “복지부가 파악한 영아유기는 2010년 191명, 2011년 218명, 2012년 235명 2013년 285명, 2014년 282명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긴 하지만 지난 2009년에도 222명이나 됐다”며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갑자기 영아유기가 늘어난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제도적 문제가 지적되자 최근에는 가족관계증명서에 미혼모의 자녀출산 기록 등이 나타나지 않게 하고 아버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배두헌 기자/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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