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의 땀덩어리’ 썸남썸녀 위기탈출 안간힘…땀 흘리는 형태·색깔따라 건강 이상체크, 냄새로는 마음까지 확인할수도…

얼마전 사진 동호회에서 알게 된 여성과 ‘썸’을 타고 있는 오모(37) 씨의 마음은 요즘 매일이 봄날이다. 동호회 모임이 있을 때마다 머리며 옷 단장하느라 평소보다 두 배 이상 시간이 걸리지만, 모처럼 찾아온 사랑에 설렘을 감출 길이 없다. 그런 그에게 최근 고민이 생겼다. 기회를 봐서 손을 잡고 고백을 하고 싶은데, 손에 유독 땀이 많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시험 시간마다 손에 흥건한 땀으로 시험지를 적셨던 그는 더운 계절엔 그 고충이 더하다. ‘혹시 내 젖은 손에 그 애가 불쾌해 하지 않을까?’. 마음이 무르익기도 전에 바싹 다가와버린 더위가 야속한 이유다.

형벌같은 땀…‘겨터파크족 아우성’

코트로 몸을 싸매고 다녔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더위를 걱정해야 하는 계절이 왔다. 6일은 여름이 시작한다는 입하(入夏). 더불어 ‘땀과의 전쟁’도 시작됐다. 한낮 광합성 삼아 거리를 거니노라면 잠깐새 땀줄기가 뒷덜미를 긁고 지나간다. 셔츠의 등이며 겨드랑이 부분이 땀에 젖은 채 걸어다니는 남성들도 곧잘 눈에 띈다. 20여년간 영어(囹圄)의 몸으로 지냈던 신영복 교수는 이 계절을 ‘증오’로 기억한 바 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할 정도로 좁은 감옥 안에서 더운 여름날의 타인은 그저 36.5℃의 열덩어리로만 여겨졌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이 때의 경험을 “옆 사람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이라고 표현했다.

하물며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이라면 어떻겠는가. 출퇴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빽빽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닿는 타인의 젖은 신체는 가뜩이나 높아진 스트레스 지수를 한껏 끌어올린다.

실제 한 소셜데이팅 서비스 업체가 1000여명의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의 45.4%, 남성의 19%는 ‘불쾌지수를 높이는 소개팅 상대방의 모습’으로 땀을 꼽았다. 대외활동이 많은 비즈니스맨들이 사무실에 여벌의 셔츠를 항상 구비해 놓는 이유, 데오도란트를 비롯한 각종 땀 관리 용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 겨드랑이 부위의 땀샘을 제거한다는 ‘미라드라이 시술’이 다한증 환자를 넘어 일반인들에게까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36.5℃의 땀덩어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땀은 열을 발산시켜 체온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몸 곳곳에 있는 약 200만개의 땀샘은 체온조절의 80% 정도를 담당한다. 이 때문에 땀이 나지 않는 무한증이 다한증보다 훨씬 위험할 수도 있다. 땀샘이 막혀 땀이 흐르지 않으면 우선 체온조절이 불가능하고 현재의 의료 기술로는 특별한 치료법도 없기 때문이다.

땀은 천연 항생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땀샘에서 분비되는 더미시딘 단백질은 대장균, 포도상구균, 칸디다 등 피부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을 죽이는 효과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피부 수 제곱센미터에는 수십만마리의 미생물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사람이 땀을 흘릴 때처럼 온도가 높고 축축한 환경을 좋아한다. 인체는 미생물들이 불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항생제를 분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땀은 이런 역할들 외에도 우리 몸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령 자면서 식은 땀을 흘린다면 신장기능이 약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잠을 잘 때는 체온이 떨어지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이라면 땀을 흘릴 이유가 없다. 잠을 잘 때는 체온이 낮아지는 것이 정상인데 깊이 잠들지 못하고 긴장된 상태에서 열이나며 땀을 흘리는 것은 신경이 안정되지 않아 땀샘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한방에서는 이런 경우 신장 기능에 이상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신경과 정신을 주관하는 장기가 신장이기 때문이다.

누르스름한 빛깔의 땀이 난다면 간 기능이 떨어지지 않았나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혈액속에 황달을 일으키는 ‘빌리루빈’이라는 성분이 증가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땀이 공기중에 노출되면 세균에 의해서 부패가 되면서 냄새가 나고 색이 변하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투명했던 땀이 점차 노란색이 느껴지고 옷에 묻어난다면 몸에 나쁜 증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다.

건강에 대한 정보만이 아니다. 최근의 연구결과들은 땀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암시해준다. 2011년 폴란드 브로츠와프대학 연구진은 이 땀냄새로 상대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사람이 입은 티셔츠에서 나는 냄새를 다른 사람들에게 맡게 한 뒤 옷 주인의 성격을 추측하도록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옷 주인의 성격을 비슷하게 맞췄던 것이다.

연구진은 그 이유를 사람의 성격에 따라 호르몬 분비가 달라져 당사자의 체취도 함께 바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땀을 더 쉽게 흘려 겨드랑이에 있는 박테리아를 활성화시켜 그 사람 특유의 체취가 만들어지고, 리더십 성향이 강하거나 다소 강압적인 사람은 남성호르몬 분비가 많아져서 땀샘에 변화를 주기 때문에 독특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외향적인 성격이나 신경증적 성격, 지배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는 조용하거나 유순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과 땀 냄새가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심지어 땀냄새를 통해 사람의 마음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라이스 대학 연구팀이 과학저널 ‘뉴로사이언스’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이 일상생활 중에 흘린 땀과 성인 비디오를 봤을 때 흘린 땀을 여성들에게 각각 맡게 할 경우 뇌가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 확인됐다. 일상적인 땀냄새를 맡았을 때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여성의 안와전두엽과 방추상전두엽이 성인 비디오를 본 남성의 성욕이 반영된 땀 냄새를 맡고난 뒤 활성화된 것이다.

실제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땀 냄새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오래 전부터 사용돼 왔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는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의 증표로 자신의 겨드랑이 땀이 촉촉하게 밴 사과를 선물로 주었고, 발칸 지역에서는 남성이 자신의 겨드랑이에 끼워뒀던 손수건을 젊은 여성의 코 앞에 대고 흔들었다고 한다. 땀에 섞인 페로몬 때문이다. 남성의 겨드랑이 땀에 있는 페로몬은 여성의 긴장을 풀어주고, 월경 주기에도 영향을 미치는 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화가 나거나 기분 나쁠 때 나오는 땀을 모아서 다른 사람이 맡게 하면 맡은 사람도 화가 나는 효과가 있음을 증명한 연구도 있고, 손에 땀이 나면 수분으로 인해 전기 전도도가 높아지는 점에 착안해서 자살 가능성을 예측한 연구도 있었다. 땀이 샘솟는 곳은 단순한 땀샘이 아니라 감정샘인 것이다.

김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