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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과거사 패배, 이번엔 문화재…정부, 日 움직임 2012년부터 알았다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 또다시 우리 외교가 또다시 과거사에 발목을 잡혔다. 독도, 군 위안부, 교과서 등에 이어 이번엔 문화재다. 일본 내 조선인 강제징용 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유력해졌다. 우리 정부는 2012년부터 일본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끝내 이를 막지 못했다. 연이은 과거사 패배이다.

▶ICOMOS의 권고 결정, 세계유산 사실상 확정 = 6일 정부당국 및 외신 등에 따르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민간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메이지(明治) 일본 산업혁명 유산 23곳을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하도록 유네스코에 권고 결정했다. 23곳 중에는 ‘지옥도’라는 불린 하시마 탄광을 비롯, 조선인을 강제 징용한 7곳이 포함돼 있다. 조선인 강제징용 시설이 세계유산으로 남게 된다는 의미다. 


ICOMOS는 공학박사, 고고학자, 미술학자 등 전문가 1만명으로 구성된 민간자문기구다. 한국인 회원도 130명가량 존재한다. ICOMOS는 세계유산의 최종 결정기구는 아니다. 최종 결정은 21개 위원국으로 구성된 세계유산위원회의 몫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오는 6월 28일 독일 본에서 열린다.

문제는 ICOMOS의 권고를 세계유산위원회가 거부한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단 1건에 불과하다. 이스라엘ㆍ아랍국 간 영토 문제가 얽힌 사례로, 이 역시 ‘영토 갈등이 해결될 때까지 미루자’는 이유로 등재가 ‘보류’된 사례이다. 사실상 ICOMOS의 권고가 절대적이란 뜻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조선인 강제징용 시설의 세계유산 등재도 유력한 까닭이다.

▶정부, 2012년부터 알았지만…. = 일본이 ICOMOS에 공식 등재 신청한 건 지난해 1월이지만, 우리 정부는 2012년부터 일본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당국자는 “주일본대사관, 주유네스코대표부 등 공관을 통해 2012년부터 일본의 움직임을 인지했고, 그 이후 이 문제에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는 걸 지속적으로 전달해왔다”고 전했다.

일본은 치밀하게 등재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ICOMOS 심사에서 서류 심사가 절대적인데, 일본은 3000여 페이지에 이를 정도로 꼼꼼하게 신청서를 작성했다는 후문이다. 일본의 등재 신청서도 심사 과정 등에서 호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우리 정부의 대응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리 정부는 ICOMOS 심사 전에도 3차례에 걸쳐 세계유산 등재를 반대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또 다양한 채널을 통해 국제사회에 부당함을 알렸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2012년부터 인지한 만큼 대응할 시간도 촉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4일 국회에서 “산업혁명 시설로만 미화시켜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에 반대한다. 다양한 채널과 여러 수준에서 등재 추진 재고를 강하게 촉구했고, 앞으로도 모든 가능한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강한 의지를 피력했지만, 3년간 거두지 못한 변화를 등재가 확정되기까지 두 달 남짓 남은 시간 동안 이뤄내겠다고 강조하는 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다.

▶남은 건 최악 피한 차악(次惡), 한일 양자협의 돌입 = 등재를 막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아우슈비츠’화(化)가 사실상 유일하다. 나치 범죄의 유산인 아우슈비츠도 현재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부의 유산(Negative Heritage)’이란 개념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비인간적인 범죄가 앞으로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자는 차원에서 등재가 된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도 등재 자체를 막을 수 없다면, 이 시설에서 강제 징용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리는, ‘반성의 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일 양국은 이달 말 일본 도쿄에서 양자협의를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측의 요구로 이뤄지고 양측에서 국장급이나 차관보급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우리 정부는 해당 문화재를 부의 유산으로 등재하는 ‘차선책’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유산 등재 보고서에 강제징용이 있었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식이다.

일본의 반발도 예상된다. 이미 일본은 등재 신청서에서 “1850년대부터 1910년까지 산업 국가를 형성한 궤적을 보여준다”고 표현했다. 그 이후 이뤄진 강제징용은 역사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꼼수’이다. 양자협의에서도 일본은 이 같은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의 차선책마저 핑크빛 전망만은 아니다.

▶과거사에 발목 잡힌 외교, 연이은 난제 =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분명하게 집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일본의 도발에 연이어 발목 잡히는 모양새다. 연초부터 교과서 검정과 외교청서로 독도 도발 및 군 위안부 왜곡을 강행했고, 양국 외교전에 맞붙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 의회 연설에서도 끝내 과거사 사죄를 얻어내지 못했다. 이번엔 문화재까지 과거사 왜곡에 합류했다. 박 대통령의 당부가 무색한 결과이다.

한편,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23개 근대산업 시설 중 7개 시설에 강제 징용된 우리 국민은 5만7900여명이다. 하시마 탄광을 비롯, 미쯔비시 중공업 시설, 타카시마 탄광 등 7곳이다. 일본은 등재 신청 근거로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 일정 문화권 내에서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류를 반영’,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이거나 특출한 증거’,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사례’ 등을 들었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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