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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돌덩이 저울눈금은 ‘0’…유머·냉소로 버무린 ‘무의미’
코리안 디아스포라 곽덕준 개인展
저울 위 무거운 돌덩이, 한 100㎏은 되려나. 그런데 저울은 0(제로)을 가리키고 있다. 바늘이 한바퀴를 돌아 0인 것인지, 돌의 무게가 0인 것인지, 아니면 저울이 고장난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쨌거나 0, 아무것도 없다.

3개의 저울을 쌓은 작품에서 바늘은 제각각 다른 무게를 가리킨다. 저울이 저울의 무게를 달고 있다. 계측하고 재단하는 것이 계측하고 재단 당한다.

재일(在日) 원로작가 곽덕준(78)의 작품은 어렵다. 개념미술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작가의 생애와 함께 작품의 텍스트를 읽어 내려가면 명쾌해진다. 모두 부조리한 구조에 대한 고발이며, ‘무의미’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계량기와 돌, 1970 (2015년 재현)
[사진제공=갤러리현대]

곽덕준의 개인전이 10여년 만에 한국에서 열렸다. 곽덕준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는 가치, 관념들의 ‘무의미’를 유머와 냉소로 버무린 작품들로 명성을 쌓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1970~80년대 작가의 ‘행위성’에 초점을 맞춘 회화, 설치, 영상 작품 34점을 선보인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곽덕준은 본래 일본 국적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발표에 따라 한국 국적을 되찾았다(혹은 일본 국적을 강제 박탈당했다). 일본인에서 재일 한국인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다시 말해 일본에 사는 외국인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으로 귀화를 한 것도 아니었다. 한국말은 더더욱 할 줄 모른다. 나고 자란 교토에서 평생 작업활동을 펼쳐 왔지만 곽덕준은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영원한 이방인’이 됐다. 국제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한ㆍ일 양국에서 작가에 대한 재조명이 더뎠던 이유다.

“백남준, 이우환에 대해서는 국적을 묻지 않는다. 그런데 왜 나에게는 자꾸 국적이 뭐냐, 귀화를 할 생각은 없느냐고 묻는 것인가. 나에게 중요한 건 예술가로서의 삶, 그 자체일 뿐이다.” 곽덕준의 말이다.

코리안 디아스포라(Diasporaㆍ이산, 난민) 곽덕준은 웃음기 걷어낸 유머로 자신의 삶을 작품에 녹여냈다. 대표적인 작품이 1974년부터 2009년까지 30여년에 걸쳐 선보였던 ‘타임(TIME)지’ 연작이다. 대통령 얼굴에 작가의 얼굴을 반반씩 조합했다. 포드 대통령부터 오바마 대통령까지 10명의 미국 대통령 얼굴 사진이 개제된 타임지 표지를 소재로 했다.

전하는 바는 분명하다. ‘플러스(세계 제일의 권력자)’와 ‘마이너스(미미하고 초라한 나)’의 합은 결국 0이라는 것. 저울이 저울을 계측하고 재단하는 일처럼, 내가 한국인인가 일본인인가를 규정하는 일의 무의미함처럼, 절대적 가치는 허구에 불과하고, 세계와 나의 관계 역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 작가의 생애 전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전시는 5월 31일까지 갤러리현대(종로구 삼청로)에서 볼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개념미술가의 담담하고 건조한 시선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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