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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윤재섭]이재용 부회장 체제의 삼성호는?
선택을 강요받는 인간은 늘 고독하다. 지존(至尊)의 고독은 더할 나위 없다. 조력자가 있더라도 최종 결정은 언제나 그의 몫이다. 때론 만인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중차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책임감이 늘 어깨를 짖누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난 1년이 꼭 그랬다. 이 부회장은 전례없는 고독을 맛봤다. 갑작스레 병상에 누운 아버지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그룹의 대사를 결정해야 했다. 부친의 경영권을 대리할 그룹 내 2인자였기 때문이다.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이 회장의 빈자리를 채우기란 쉽지 않았다. 부친은 조부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이 일으킨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군 그룹의 상징이었다.

이 회장의 와병소식에 시장(市場) 역시 우려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 꼭 맞다. 스마트폰이 날개 돋친 듯 팔린 덕에 사상 최대 실적을 구가하던 삼성전자는 이 회장이 자리를 비웠던 지난해 2분기 7조원대의 영업이익을 내는데 그쳤다. 3분기엔 영업이익이 4조원대로 줄어들었다.

이 부회장은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다. 쫓기듯 서두르지 않았다. 경영매뉴얼에 따라 차분히 대응했다. 위기경영관리시스템을 가동하면서도 결코 요란하지 않았다. 정중동 행보를 이어갔다. 시장에는 ‘선택과 집중’이란 경영모토를 계승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화학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고, 바이오와 헬스케어 등 미래 먹거리 사업에 그룹의 역량을 집중했다. 1등을 자신할 수 없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한다는 사인이었다. 안으로는 ‘도전(challenge)’을 강조했다. 그는 올해 1월 신임 임원 부부동반 만찬회에서 격려사를 통해 “올해도 더 열심히 도전하자”고 당부했다. 벤처기업가적인 도전정신이 있어야만 더 큰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철학이 담겨 있었다. 이는 곧 본인 스스로에게 던지는 주문이기도 했다.

공존과 화합의 새 경영문화를 만드는 작업에도 공들였다. 삼성전자 연구센터 일부 임직원들에게만 적용되던 ‘자율출퇴근제’를 올들어 전 임직원들로 확대했다. 그러는 사이 삼성전자의 실적은 제자리를 찾았다. 올 1분기에는 6조원 상당의 영업이익을 올려 실적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그의 도전은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 부회장은 해외투자가와 기업간 거래(B2B) 제휴사들로부터 ‘리더십 강화’를 요구받고 있다. 요구에 화답하려면 경영권 승계작업을 무난히 완수해야 한다. 지주회사 설립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타고난 전략가다. 위기경영을 강조했던 이 회장을 빼닮았으면서도 좀더 치밀하고, 집중력 있다는 평가다. 현재로선 경영권 승계를 서두르는게 불리하다. 승계를 하려면 더 많은 지분과 돈이 필요하다. 조건이 허락하는 선까지 최대한 시간을 버는 것이 그로서는 유리하다.

관건은 시장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그룹을 끌고가는 길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그 때까지 그는 자신만의 색깔을 내보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색은 경영권 승계가 완수된 뒤에야 비로소 팔레트에서 떨어져 나올 것이다. 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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