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좋은 음식’‘나쁜 음식‘ 구별짓기의 사회학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는 종영된지 꽤 되는데도 ‘차줌마’ 차승원의 요리 따라잡기가 최근 인기다. 다양하지 않은 재료로 뭐든 뚝닥 만들어내는 마법에 가까운 그의 요리에 음식만들기와 거리가 먼 20대와 남자들까지 앞치마를 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TV채널은 경쟁적으로 ‘쿡방’프로그램을 신설, 요리 열기로 스튜디오가 뜨겁다.

일상의 평범한 관행인 음식과 먹기가 관찰의 대상이 된 건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먹방’‘쿡방’ 열기에는 사회문화적 의미가 들어있다. 

호주 캔버라대 연구교수인 데버러 럽턴의 저서 ‘음식과 먹기의 사회학’(원제:Food, the Body and the Self)에 따르면 음식과 먹기의 관행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활동이 아니라 문화적 기호이자 사회화의 한 형태다.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먹느냐가 나를 결정하고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 사회로 확장해도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저자가 도입부에서 설명하는 ‘요리’ 의 속성을 보면, 최근의 요리 열기를 설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즉 “요리는 원물질을 자연상태에서부터 문화적인 상태로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단지 물리적 실행의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상상력의 수준에서 문명화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매우 마법적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요리법과 요술 간에 기묘한 친족관계를 생각해내게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전통적으로 철학이 남성적이고 정신적이라면, 음식과 먹기는 여성적이고 육체화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말하자면 상상력의 문명화, 문명화 속에 숨은 동물적 속성에 현재 ‘요리 현상’은 끈이 닿아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음식, 먹기, 요리라는 명백히 ‘실제적인’ 현상과 주체성, 감정, 기억, 사회화라는 보다 ‘추상적이고’‘사회학적인’ 현상 간의 연계관계를 탐구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음식 습관과 음식 관행, 문화, 육체화, 어린 시절, 엄마와 아이의 관계, 음식취향, 좋음과 나쁨 등의 켜를 하나하나 벗겨내며 탐색해 나간다.

현대사회에서 음식은 몸에 대한 인식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자신을 돌보는 음식습관과 음식선호는 자아의 중심적 관행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특히 불확실성과 강화된 자기 성찰의 시대에는 몸도 변화시킬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으로 간주된다. 몸을 통제하는 방식 중의 하나가 먹기 습관을 규율하는 것인데, 몸은 그 소유자가 자기 통제력을 소유하고 있는 정도를 보여주는 유력한 신체적 상징이기 때문이다. 또 상품으로서의 음식은 자신을 남과 구분하는 표시이기도 하다. 종교나 고급문화, 계급의식 등 전통적인 구별짓기의 의미들이 약화된 현재 상황에서 음식이 그 자리를 대체한 것으로 본다. 

“먹기의 사회적 차원과 감정의 사회적 차원들이 특히 하나로 묶이는 곳이 바로 가족이라는 맥락이다. 음식에 대한 믿음과 행동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발전되고 가족 단위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음식과 먹기의 사회학’ 중)

저자의 탐색 중 흥미로운 부분은 음식먹기의 사회학과 감정 사회학을 결합시키고 있는 점이다.

데버런 교수는 음식이 어떤 감정과 연관돼 있는지 살피기 위해 시드니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음식에 관한 기억을 기술하도록 했다. 일부 사람에게 삶은 양배추 냄새는 그들을 학창시절로 되돌아가게 해 받아 먹었던 급식 뿐 아니라 학교생활 경험 전체와 관련된 관계 및 감정을 끌어온다. 또 바닐라 향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위안을 주고 어린 시절의 기억과 집에서 만든 케이크 같은 단순한 즐거움을 불러일으켜 안심, 친밀, 안전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집을 팔고자 하는 사람들은 긍정적 감정을 유발시키기 위해 구매자가 도착하기 전 신선한 커피를 끓이거나 약간의 비스킷을 구우라는 조언을 한다.

배고픔도 저자에 따르면 순수한 생물학적 현상이라기보다 음식의 필요성에 대한 몸의 인식과 감정 상태 간의 화학적 작용으로 본다. 좋아하는 음식이 요리될 때 느끼는 배고픔이나 불안감, 초조, 슬픔 또는 기쁨이나 의기양양함의 상호작용에 따른 식욕상실 등이 그런 예다. 또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애인‘처럼 음식이 폭력과 화의 매개체로 쓰이기도 한다.

’건강에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의 담론 속에 담긴 사회적 의미도 저자는 날카롭게 파헤친다.

좋은 음식 나쁜음식, 자연음식 인공음식의 대립은 불확실성에 대한 하나의 반응으로 저자는 본다. 만약 우리가 어떤 음식이 자연식품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을 먹는 것은 우리를 더 기분좋게 만들어주며 도덕적 의미까지 부여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연 그 자체도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불안이 점점 더 증가하면서 이항대립은 더 첨예해지는 양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문화자본을 앞세운 고도로 미학화된 접근 대상으로서의 음식, 다이어트 열풍, 먹기의 단순한 즐거움으로 돌아가자는 해방운동까지 최근의 음식을 둘러싼 담론을 담아낸 이 책은 그동안 음식과 요리와 관련한 수많은 정보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접근이 모자란 터에 균형을 잡아준다.

음식과 먹기의 사회학/데버러 럽턴 지음, 박형신 옮김/한울

/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