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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혜미의 무비 for U]무심코 내뱉은 거짓말에 산산조각난 삶
‘세 치 혀’의 무서움 일깨운 ‘더 헌트’
걸출한 입담으로 사랑받던 개그맨들이 자신의 ‘입’ 때문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최근 장동민 유상무 유세윤은 과거 팟캐스트에서 내뱉은 부적절한 발언이 수면 위에 떠오르며 논란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비슷한 시기 할리우드 스타들도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전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주역들이 경솔한 발언으로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크리스 에반스, 제레미 레너는 극중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분)가 마블 시리즈에서 여러 남성 캐릭터와 러브라인을 펼친 것을 두고 “난잡한 계집(slut)”, “매춘부(whore)” 등의 농담을 던졌다가 황급히 사과했습니다. 그로부터 하루 만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슈퍼 히어로 영화를 두고 ‘문화적 집단 학살(Cultural genocide)’이라고 일갈한 것을 겨냥,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하는 남자가 ‘문화적 집단 학살’이라는 구절을 한 번에 말할 때 얼마나 영리해보이는 지 알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이는 모국어가 영어인 남성에 대한 우월감을 전제한 발언으로 네티즌들의 비난을 샀습니다. 

‘세 치 혀’는 그만큼 무거운 것입니다. 일단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기 때문이죠. ‘올드보이’(2003)는 말 한마디가 불러온 파국을 핏빛 복수극으로 그려냈습니다. ‘더 헌트’(2013) 역시 무심코 내뱉은 말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유치원 교사인 루카스(매즈 미켈슨 분)는 ‘선생님이 성학대를 했다’는 한 소녀의 진술로 인해 파렴치한으로 몰립니다. 실은 사소한 일로 루카스에게 서운함을 느낀 소녀가 얼떨결에 한 거짓말이었죠. 누명을 쓴 루카스는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전염병처럼 퍼져나간 소문은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모릅니다. 절친한 친구들마저 그를 피하거나 손가락질 하죠. 우여곡절 끝에 루카스의 결백은 밝혀지지만, 산산조각 난 일상은 회복이 어려워 보입니다. 자신을 성범죄자로 의심하고 비난한 이웃, 친구들과도 예전처럼 지내는 건 불가능하죠. 반면 소녀는 자신이 어떤 거짓말을 했는 지 “이젠 기억도 잘 안 난다”고 말합니다.

그로부터 1년 뒤, 사냥을 나선 루카스는 자신의 등 뒤에서 총성이 들리자 공포감에 휩싸입니다. 불안감이 드리운 그의 얼굴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표면적으로 사건은 해결됐지만, 루카스를 향한 주민들의 의심은 완벽하게 걷히지 않습니다. 물론 그가 들은 총성이 피해의식으로 인한 환청이거나 누군가의 단순한 오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믿었던 이들에게서 불신을 경험한 루카스는 이제 누구도 믿지 못합니다. 세 치 혀가 불러온 비극은 당사자에겐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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