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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최영진]무책임한 대통령과 의원내각제 개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역시 박근혜 대통령은 통치자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통령은 “이번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지만 과연 지금의 사태에 대해 대통령이 단지 ‘유감’ 표명과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국민들이 문제시하는 것은 단지 거론된 인물들이 불법자금을 받았다는데 있는 것만 아니다. 오히려 그런 인물을 중용해서 국정을 맡긴 대통령의 판단력을 우려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마치 남의 일처럼 유감을 표명하는데서 벗어나지 않았다.

사실 대통령의 무책임한 모습은 그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유와 방식은 달랐지만 이전 대통령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치적 책임이 단지 정치적 수사나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라며 실질적 정책이나 태도변화라 한다면 큰 차이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제왕적 대통령으로 취임해서 식물 대통령으로 사라지는 것이 민주화 이후 한국 대통령의 일반적 경향이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대통령제라는 제도의 근본적 한계와 대안을 고민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의 제도적 원인으로 5년제 단임제에서 찾는다. 단임제의 특성상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대통령 역시 국민과의 소통이나 평가보다 자신의 역사적 과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많다. 4년제 중임제 개헌주장은 그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포인트 개헌을 통해 이러한 제도적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했고, 학계나 정치권에서도 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다.

4년제 중임제로 바뀔 경우 기대되는 효과는 적지 않다. 우선 첫 번째 임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첫 번째 임기동안의 정치적 업적에 대한 평가가 재임선거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재선에서의 당선가능성 때문에 레임덕 현상도 그렇게 심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처럼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출마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 될 경우 집권 중반기 이후 국정동력이 상실되는 경향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4년제 중임제로 바뀐다고 무책임한 정치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좀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선 제도적 효과는 초임 대통령에서 끝난다. 재선 대통령의 경우 단임제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중임제를 실시할 경우 제도적 미덕이 해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국정운영은 선거용으로 변질될 것이다.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한국의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 어렵다. 국정원이나 기무사의 사이버 댓글달기는 애교수준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정치의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의 집중에 있다.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하는 것이 원론적 희망이지만 대통령의 지지도에 의존하는 정당구조에서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한국의 정치현실을 고려할 때 제도적 대안은 제한적 효과만 갖고 있는 4년제 중임제 개헌보다 여야 대립구도를 본질로 하는 의원내각제 개헌이 훨씬 현실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대통령제의 가장 큰 문제인 권력집중의 해악 크게 줄어들 것이다. 선거를 통해 책임정치가 지속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여야간 대권대립구조에 포획된 유권자들은 다당제를 통해 더 많은 선택지를 갖게 될 것이다. 가장 큰 우려는 잦은 정권교체로 인한 정치불안이지만 이제 한국 유권자들도 안정적인 정치성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그리 염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한국 대통령제의 근본적인 문제와 해결방안에 고민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권 경쟁이라는 고정관념은 4년제 중임제에서 개헌논의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제에 갇힌 한국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의원내각제 또한 중요한 대안으로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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