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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40초론 부족해”횡단보도에 갇힌 노인들
“녹색불 시간 늘려달라” 호소…일각선 교통체증 유발 반론도
#1. 최근 온라인에서는 ‘20초간의 훈훈한 기다림’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영상에는 다리가 불편한 노인이 빨간불임에도 7차선 도로를 횡단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노인은 당초 녹색불에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지만, 신호가 짧아 미처 제 시간에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녹색불이 빨간불로 바뀌었음에도 노인이 횡단보도를 완전히 건너는 20초 동안 7차선 도로 위의 모든 차들은 ‘거짓말처럼’ 노인의 횡단을 기다려줬고, 노인은 무사히 길을 건널 수 있었다.

#2. 며칠 뒤 인터넷에 올라온 또 다른 동영상에는 정 반대의 상황이 담겼다. 부산에서 찍혔다는 블랙박스 영상에는 한 할머니가 왕복 4차선 도로 사이에 꼼짝없이 갇힌 장면이 고스란히 포착됐다. 할머니가 횡단보도 중간을 건널 무렵 보행 신호가 끝나자, 차들이 할머니를 무시한 채 운행을 하며 벌어진 일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횡단보도에서 ‘안전 보행’을 위협받고 있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횡단보도 위 ‘안전 보행’을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 종로구 파고다공원 횡단보도를 촉박한 시간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건너고 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지난해 10월 서울시가 녹색불 시간을 초당 1m에서 0.8m로 늘린다고 밝혔지만, ‘노인보호구역’ 59곳 중 41곳에만 적용되고 있다. 특히 노인 교통사고가 빈번한 전통시장과 공원 인근 횡단보도 신호등은 제외돼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노인, 장애인 등 교통 약자를 위해 신호체계 연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 쪽에선 “교통체증을 유발할 수 있다”며 반대하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27일 서울 종로의 파고다공원 인근 사거리에서 만난 신모(74) 씨는 “젊은 애들과 달리 우리같은 노인네들은 빨리 건너고 싶어도 다리가 말을 안 듣는다”면서 “녹색불이 너무 짧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신 씨가 건너려던 8차선 도로는 너비가 약 33m. 보행시간은 진입시간 7초를 포함해 40초 남짓이다.

일반 보행자들이 20초대에 횡단보도를 통과하는 데 반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는 신 씨의 경우엔 녹색불이 빨간불로 바뀌기 직전에야 완전히 길을 건널 수 있었다.

파고다공원 바로 앞 대로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녹색불이 켜져있는 약 45초 중, 일반인들은 20~25초 내로 횡단을 마쳤지만, 노인들은 평균 34~39초가 소요됐다. 그러나 성미가 급한 일부 차량 운전자들이 녹색불 점멸시간인 36~39초에 횡단보도 쪽으로 진입하며, 길을 건너던 노인들이 발길을 재촉하는 모습이 여러 번 연출됐다.

이에 보행자 김모(68) 씨는 “사람 만큼 차도 많아서, 보행자가 다 건너길 기다려주지 않고 신호가 바뀌면 곧바로 출발하는 운전자가 많다”며 “그래도 나라에서 정해주는 시간대로 내가 알아서 길을 건너야 하지 않겠냐”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처럼 횡단보도에서 조차 노인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녹색불 시간을 늘리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보행자 중심으로 신호체계를 바꾸는 과정에서 자칫 교통흐름이 끊겨 체증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운전자 한모(54ㆍ여) 씨는 “보행 신호를 길게 주다보면 운전자 입장에선 무리하게 신호를 받으려는 일이 생길 것 같다”며 “신호체계를 바꾸는 것 보단, 운전자들이 자발적으로 보행자들을 배려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박혜림ㆍ양영경 기자/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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