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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디지털36.5℃〕내 아이의 첫 로그인, 축하할 일 일까요?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육아전쟁, 힘들수록 편리해지는



첫 아이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는 맞벌이의 제 지인에게 물었습니다. 아이는 어떻게 키우냐고, 누가 돌봐주냐고 말입니다. 아이는 이제 두 살이었습니다. 육아 전문 도우미의 손을 빈다고 얘기하더군요. 그러면서 스마트폰을 내밀었습니다. 화면엔 집안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CCTV 영상이 있었습니다. 흉흉한 소식들이 워낙 많은 세상이니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어린 자녀를 둔 또 다른 부부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맞벌이는 아니지만, 밤늦은 시간에 동반 외출이나 각자의 외부 모임이 적지 않은 부부였습니다. 대개는 어느 한쪽이 약속을 포기하거나 이웃집에 아이를 맡기고는 했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해결법을 찾았습니다. 아이의 울음이나 뒤척이는 소리를 감지하는 앱이었습니다. 아이가 일단 잠이 들면 앱을 활성화시킨 태블릿PC나 스마트폰을 아이의 옆에 둡니다. 아이가 깨서 울거나 뒤척이면 앱이 탑재된 태블릿PC나 스마트폰은 부모의 스마트폰에 자동으로 영상 통화를 겁니다. 집 가까운 곳의 짧은 시간 외출에는 그만입니다. 앱의 소음 감지력과 영상통화 성공률도 훌륭했습니다.

육아, 참 힘들어진만큼 편리해졌습니다. 



▲드론으로 딸을 감시하는 아빠



최근 타임 온라인판은 아이를 키우는 데 드론(초소형 무인 비행기)을 이용한 한 아빠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미국 테네시주에 사는 크리스 어얼리 녹스빌이라는 비디오 프로덕션 회사 경영자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8살 배기 딸 케이티가 “이제 학교에 혼자 가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허락하는 대신, 드론으로 딸의 등교길을 함께 했습니다. 아빠가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딸의 등교길을 실시간으로 살핀 것입니다. 크리스 어얼리 녹스빌은 “단지 아빠가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재미로 한번 해봤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례를 보도한 기사의 마지막 논평이 재미있습니다. “딸이 데이트를 시작할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드론이 아니더라도 현재 자녀 보호 모바일 기기는 적지 않게 나와 있습니다. 통신사별로 학교나 지방교육청, 교육부와 연계를 해 아이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단말기를 목에 걸거나 팔에 차고 다니면 이를 통해 부모들은 아이의 위치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단말기로 간단한 통화를 하거나 긴급 신호를 보낼 수 있습니다.

세상 참 험해지는 만큼, 안전해지는 것도 역설적이지만 사실입니다.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생애에는 부모나 제 자신이 잊지 못할 ‘첫 경험’의 순간이 있습니다. 영국의 철학 저술가이자 경영 컨설팅 전문가이기도 한로버트 롤런드 스미스의 저서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은 사람의 일생 중 20가지 첫경험의 순간에 대한 철학적인 단상을 담았습니다. 태어남부터 걸음마, 입학, 자전거타기, 시험, 첫 키스, 첫경험(순결의 상실), 운전면허, 첫 투표, 취직, 사랑, 결혼, 출산, 이사, 중년의 위기, 이혼, 은퇴, 늙어감, 그리고 죽음과 내세가 바로 그 20가지 인생의 통과의례입니다. 한국이라면 여기에 주민등록증 받기가 더해질 수도 있겠습니다. 남자라면 입대의 순간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예를 들자면 이런 식입니다. 두발 자전거 타기에 처음으로 성공한 순간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빠가 자전거를 잡은 손을 놓을 때 의심과 믿음의 갈림길에 선다”. 이 순간을 아빠는 아이의 등 뒤에서 점점 아이와 멀어져가는 길로, 아이는 아빠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채 앞으로 죽 펼쳐진 길로 기억할 것입니다. 부모와 아이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전혀 다른 공간감으로 이 순간의 영상을 뇌리에 각인할 것입니다. 부모와의 동반은 뒷길에 남겨지고 이제 아이 혼자 헤치고 나아갈 인생에 대한 상징이나 비유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눈치챘겠지만,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이 담고 있는 인생의 계기들이란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입니다. 지금 자라나는 어린세대는 전혀 다른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첫 로그인, 첫 스마트폰도 그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자전거 타기에 성공한 그 순간보다는 부모가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사준 때를 기억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이제 엄마나 아빠의 스마트폰을 힐끔거리거나 죄짓는 마음으로 빌려쓰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올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이동통신 전시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5)의 홍보 동영상 중 유난히 눈에 띄는 문구가 있었는데, 바로 “모바일은 모든 것”(Mobile is Everything), 그리고 “모바일은 나”(Mobile is Me)라는 것이었습니다.



▲내 아이의 첫 로그인, 축하할 일일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주민등록증을 받은 순간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정보 보호가 더없이 중요해진 시대에 ‘필요악’처럼 됐지만, 개개인들에겐 법적으로 독립적이고 완전한 인격체가 됐음을 ‘증명’해주는 수단으로 여겨졌습니다. 법적인 성년은 19세 이상이지만, 17세에 나오는 주민등록증은 사실상 어른이 됐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이제는 부모의 이름이나 소속 학교의 학생증이 아닌, 제 이름과 번호만으로 된 주민등록증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주민등록증을 받거나, 부모가 아닌 자신만의 집주소를 가지게 되는 나이는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온라인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부모 이름이나 소속 학교가 아닌 자신이 지은 자신만의 이름, 즉 식별기호를 통해 로그인할 수 있으며, 자신만의 계정으로 메일을 받고 메시지를 송수신할 수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는 성년이냐 미성년이냐에 따라 제한되지만 로그인이 가능하다는 것은 적어도 온라인상에서는 독립된 인격체가 됐다는 말입니다.



▲중독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들을 점점 더 어린 나이에 접하게 됩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한편으로 육아를 쉽게 만들었습니다. 칭얼거리던 아이도 스마트폰만 쥐어주면 조용해집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어린 나이의 자녀에겐 스마트폰이 좋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전쟁같은 육아에 지치면 절로 손이 갑니다. 스마트폰은 어쩌면 아이들보다 부모들에게 더 강력한 유혹입니다. 포털사이트의 다양한 아동용 콘텐츠와 스마트폰 교육용 어플리케이션들은 그래도 위안입니다. PC, 태블릿, 스마트폰은 이제 동화책이고 동요집이며 영어 비디오이고 숫자놀이도구입니다.

이른 나이의 디지털 기기 경험은 중독의 부작용을 낳습니다. 최근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10대 청소년 중 29.2%가 스마트폰 중독위험군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0대 뿐 아니라 유ㆍ아동의 경우도 주목할만했습니다. 만 3∼9세 유·아동의 경우 부모를 상대로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 실태를 조사했더니 52%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하루 평균 이용시간은 1.4시간이었습니다. 부모의 33.6%는 자녀가 스마트폰을 과다사용한다고 응답했으며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해 자녀와 갈등을 겪었다는 부모도 50.1%였습니다. 유ㆍ아동의 인터넷 중독 위험군도 전체의 5.6%나 됐습니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내 아이들은 안돼”



잘 알려진 것처럼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글로벌 정보통신산업을 주무르는 거물들은 오히려 자녀들의 컴퓨터, 모바일 기기 사용에 엄격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올해 21살, 18살, 14살 된 자녀 셋을 두고 있는데,13살 이상이 돼서야 스마트폰을 사줬고, 하루 평균 컴퓨터 사용시간은 45분으로 제한했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 또한 생전 자신이 개발한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포함해 스마트 기기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했습니다. 늘 컴퓨터와 휴대폰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했을 스티브 잡스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는 책과 역사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무인 비행기 제조사 3D 로보틱스의 크리스 앤더슨 대표, 통신 마케팅 기업 아웃캐스트 에이전시 알렉스 콘트타티노플 대표도 자녀들에게 일정 나이 이상이 되기까지는 어떠한 컴퓨터 모바일 기기도 허용하지 않고, 성년 전까지는 하루에 극히 제한된 시간만 사용을 허락한다고 합니다.



▲내 아이의 휴대폰 언제 사줄까



부모들은 갈등에 싸입니다. 혼란스럽습니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인터넷과 컴퓨터, 모바일 기기에 일찍 노출되면 중독의 위험이 높고 건강을 해치며 폭력성과 우울증, 공감능력 결여, 주의력결핍 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첨단 통신 기기에 접하는 시기는 늦으면 늦을수록 좋다”는 거의 원칙같이 전하는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입니다.

하지만, 인터넷과 모바일 앱에는 서너살의 유아부터 즐길 수 있는 콘텐츠와 서비스가 넘쳐납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조기 코딩 교육 열풍도 혼란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코딩이란 컴퓨터 언어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죠. 연산과 수리ㆍ논리적 사고가 중요한 분야입니다. 이르면 열살 전후에 코딩 교육이 시작됩니다. 글로벌 ICT 업계를 주도하는 거물들도 코딩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뇌를 스마트하게 하는 ‘코딩 교육’에서 다른 하나의 창만 열면, 클릭 한 번이면, 아이들의 뇌를 마비시킬 수 있는 거대한 콘텐츠의 홍수가 쏟아지게 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컴퓨터를 사용하게 해야 하고, 휴대폰을 사줘야 할까요?



▲당신의 철학적인 순간



아무도 정답은 없지만, 어느 정도의 추론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바일 기기에 노출되는 시기는 늦으면 늦을수록 좋다는 것은 거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그러나 친구들 모두가 스마트폰을 갖고 하루에도 몇 번씩 ‘카톡’ ‘카톡’하는데 내 아이라고 여기서 소외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이의 사회성과도 균형을 맞춰서 결정해야 될 문제입니다.

사용시간과 사용량에 대한 엄격한 관리도 필요하겠죠.

미국의 한 통계에 따르면 휴대폰 도난이나 분실은 성인의 경우 평균 10명 중 1명꼴로, 아이들은 5명 중 1명 꼴로 겪는다고 합니다. 또 아이들 10명 중 1명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정보나 사진 등을 노출시킬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20%의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성적인 이미지를 접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는 중독 뿐 아니라 아이들이 새로운 범죄의 표적이 될 수도 있으며, 개인 정보 유출을 통해 가족 전체가 위험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국내의 경우 인터넷중독대응센터(http://www.iapc.or.kr)에서 온라인을 통한 자가진단과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항상 아이들에게 “온라인에서 친구들은 무엇을 하는지” “최신 유행 앱은 무엇인지” “너는 왜 스마트폰이나 특정 앱을 사용하는지” 묻고 대화하고, 부모 스스로 자신의 휴대폰에서 꼭 필요없는 앱은 삭제하고, 위치기반 서비스나 이미지ㆍ동영상 공유 앱은 최소화할 것을 조언하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습관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쥐어주는 스마트폰을 처음으로 접하고, 부모의 스마트폰에 있는 앱과 콘텐츠를 처음으로 사용합니다. 또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은 부모가 집에서 모바일 기기를 쥐고 있는 시간과 비례합니다.

아버지의 손에서 떠나 처음으로 아이가 두발 자전거를 타는 순간처럼, 결국 온라인 첫 로그인도 당신이 함께 결정하는 아이의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이 아닐까요.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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