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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간색 좋아하지만…나에게 ‘레드’는 고통”
연극 ‘레드’ 서 화가 로스코役으로 2년만에 무대 복귀…데뷔 30년 맞는 정보석의 드라마틱한 도전
“요즘 잠을 못 자요. 10년 동안 빨간색 차만 타고 다닐 만큼 빨간색을 좋아했는데…. 지금 레드는 저에게 고통이죠”

배우 정보석이 오는 5월 1일 개막하는 연극 ‘레드’에서 화가 마크 로스코로 변신한다. 스티브 잡스가 죽기 직전에 심취했다는 화가 로스코와 로스코의 조수 켄만 등장하는 2인극이다.

지난 12일 막을 내린 드라마 ‘장미빛 연인들’에서 손녀를 내다버리는 등 갖은 악행을 일삼던 백만종에서 피카소와 니체를 논하는 지적인 화가 로스코로 변신하는 것이다. 2010년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주얼리 정으로 인기를 끌다가 바로 드라마 ‘자이언트’의 잔악무도한 조필연으로 출연했을 때처럼 드라마틱한 도전이다.
‘연기 변신의 귀재’ 정보석은 연극‘ 레드’에서 변덕스럽고 예민한 화가 마크 로스코역으로 출연한다. 2년만에 무대 복귀작이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정보석은 지난 2011년 ‘레드’ 초연 당시 관객으로 왔다가 제작사인 신시컴퍼니에 “꼭 출연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세대 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예요. 제가 배우로서, 교수로서 후배 배우들, 제자들한테 느꼈던 감정들이 담겨있어 정말 와 닿았어요. 각자 세대는 각자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로스코는 캔버스 위에 네모를 색칠해놓는 등 추상적인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다. ‘레드’는 로스코가 뉴욕 시그램빌딩 내 포시즌 레스토랑에 걸 벽화를 의뢰받았을 당시 이야기를 다뤘다. 로스코는 비싼 레스토랑을 찾는 부자들이 벽화 앞에 서면 정신적인 변화를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극‘ 레드’ 콘셉트.

하지만 직접 레스토랑에 방문한 로스코는 현란한 분위기가 자신의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200만달러(약 22억원)에 달하는 그림값을 포기해버린 것이다.

정보석은 로스코라는 인물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마크 로스코전’도 찾았다.

“로스코의 그림을 직접 보고 나서 더 어려워졌어요. 로스코는 자기가 아는 ‘무엇’을 형태가 아닌 색을 통해 정확히 전달하려고 했던 사람이예요. 구도적(求道)인 인물이죠”
마크 로스코展에 간 정보석.

극중 로스코는 “예쁜 그림이나 그리려고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을 하게 하려고 그림을 그린다”고 외친다. 정보석 역시 말초적인 막장 드라마에도 출연하지만 의미를 곱씹어야 하는 연극도 놓치지 않고 있다. 특히 ‘레드’는 “지금까지 한 작품 중에 가장 어렵다”고 털어놨다.

“로스코가 실제 했던 말들이 연극 대사로 쓰였어요. 논리적인 말들이 아니라 로스코가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뱉어낸 ‘날 것’들이죠. 예전에 연극 ‘길 떠나는 가족’에서 연기했던 이중섭은 배우로서 울컥하는 감정이 있었다면 로스코는 울화통이 터져요. 연기하기 어렵지만 관객 입장으로 보면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예요”

그는 “왜 이 작품을 한다 그랬을까. 관객으로만 볼 껄. 바보”라고 머리를 쥐어뜯을 때도 있다. 하지만 연극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세상 어떤 것보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켄역으로 출연하는 박정복을 집으로 불러 지난 22일부터 합숙 연습도 하고 있다.

“연극은 할 때도 즐겁지만 보는 것이 더 즐거워요. 영화는 팝콘이나 콜라도 먹으면서 보지만 연극은 두시간 동안 온전히 집중하게 하니까요. 성북동으로 이사온 것도 연극을 많이 보고 싶어서예요”

정보석은 고등학교 시절 가출할 때도 셰익스피어 전집을 들고 나갔다. 셰익스피어 덕에 연기를 시작하게 된 그는 ‘햄릿’, ‘오셀로’, ‘리어왕’을 인생의 3대 작품으로 꼽았다.

“ ‘햄릿’은 2013년에 출연했었고, 다음은 ‘오셀로’가 되겠네요. 예술의전당이나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도 한번 서보고 싶어요”

1986년 KBS 드라마 ‘백마고지’로 데뷔한 그는 어느덧 30년차에 접어든다.

희대의 악녀 연민정이 등장하는 드라마 ‘왔다 장보리’에 빗대 ‘왔다 백만종’이라고 불릴 정도로 열연을 펼쳤지만 “난 아직 아마추어”라고 말했다.

“처음 연기 시작했을 때는 대본을 총천연색 펜으로 칠했어요. 연기력을 타고나지 못했기 때문에 치밀하게 구성하려고 했어요. 10년쯤 지나서는 전체적인 상황을 보려고 노력했죠. 조금 편해졌나 했는데 ‘레드’로 20년만에 고통을 맛보고 있어요. 로스코는 진실에 다가간 사람이고, 전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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