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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22. 끝이 시작되는 깐야꾸마리…힌두교 성지순례길
[HOOC=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가끔 연착도 잘되는 인도기차라 이번엔 조금 늦게 도착하기를 기대하면서 간다. 도착시각이 새벽 3시 30분이라 일찍 도착하는 게 더 힘들기 때문이다. 야속한 기차는 이럴 땐 정시도착이다. 컴컴한 플랫폼에 내려 대합실로 들어간다. 해가 뜰 때까지는 갈 데가 없다. 8시가 되야 기차 창구가 열릴 것이니 떠날 기차까지 예매하고 가야겠다. 


별도의 웨이팅 룸도 없는 작은 역이다. 최소한 다섯 시간은 여기 있어야 하니 배낭을 놓고 앉을 자리를 마련한다. 이럴 땐 동행이 있다는 게 힘이 된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옆 자리가 왁자지껄 해진다. 남인도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긴 팔 옷에 조끼, 그리고 두건까지 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시다. 인도의 여자들은 거의 모두 사리나 펀자비를 입는데 복장이 남다르시다.

그 중 촌장이라는 사람이 영어를 할 줄 알고 다른 사람들과 웃음과 손짓으로만 대화를 나눈다. 이 사람들은 인도 북부 쉼라(Shimla)라는 곳에서 깐야꾸마리에 성지순례를 하는 중이다. 인도가 북위35도에서 북위8도에 걸쳐진 커다란 대륙인데 그 먼 거리, 쉼라에서 이 최남단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해서 왔다고 한다. 한번에 오는 기차도 없어 갈아타고도 며칠이 걸린다고 한다. 한 마을에 사는 스무명 남짓한 이들은 일 년에 한 번 이렇게 성지순례를 다니는 것이다.


깐야꾸마리는 인도의 땅끝마을이다. 그리고 아라비아해, 벵골만, 인도양이 만나는 특이한 곳이며 힌두교의 성지이기도하다. 그렇기에 저 추운 인도 북부에서 여기까지 성지순례를 오시는 것이다. 특히 1월은 성지순례 기간이라 작은 마을이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이리 오라고 불러서는 두건을 벗어 씌어주고 우릴 보고 웃는다. 동양여자들이 신기하신 것 같다. 점잔을 빼던 할아버지들도 옆에 다가가 사진을 찍어드리니 좋아한다. 이 사람들은 이제 떠나는 길이고 우리는 도착하는 길이라 작별의 인사를 한다. 외로운 여행자의 새벽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 인도인이라 더 고맙다. 


땅끝마을에 들어선 기차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여기가 끝이다. 멈춰야만 한다. 그리고 다시 출발한다. 종착역은 곧 시발역이 된다. 생각해보면 끝은 늘 또 다른 시작을 동반한다. 그게 어떤 형태의 시작이든 말이다.

시, 표 예매를 위해 창구의 문이 열리기 기다린다. 최남단이고 작은 마을이라서인지 다른 배낭 여행자는 보이지 않는다.

조롭게 숙소를 구하고 펀자비로 갈아입고 거리로 나선다. 작은 마을엔 온통 사람들의 물결이다. 어촌답게 배들이 보이고 멀리 바다위의 메모리얼이 보인다. 


힌두 성자가 수행했던 바위섬이 유명해져서 기념관이 생겼다고 한다. 비베카난다 메모리얼(Vivekananda Memorial)이라고 하는 이곳은 깐야꾸마리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다. 바닷가에서 보이는 비베카난다 메모리얼과 동상이다.

인도의 여느 강가의 가트처럼 이곳 힌두인들에게 깐야꾸마리 해변은 성스러운 목욕 장소다. 날씨가 너무 더우니 가트에 몸을 담그는 게 종교의식인지 그냥 물놀이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실제로도 일단 바닷물에 들어간 인도사람들은 재미있게 논다.

맨발에 검은 옷을 입고 상의를 벗은 남자들은 여기 꾸마리암만 사원(Kumari Amman Temple)신전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이다. 신전에 들어가기 위해 남자들은 꼭 이 복장을 해야한다고 하니, 이곳으로 성지순례온 남자들은 검은 상의와 하의를 입고 맨발로 떼를 지어 다닌다. 더운 지역은 신을 숭배하는 방법도 특이하다.


날씨가 너무 더워 점심을 먹고 숙소로 들어갔다가 좀 쉬고 나오기로 한다. 햇볕이 쨍쨍한 거리에서 식당을 찾아 헤매는데 학생들 한 떼가 거리에 서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단체로 수학여행 온 학생들 느낌이다. 그 앞을 지나는데 한 녀석이 용감하게 다가오더니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묻는다. 께랄라(Kerala)에서 단체 여행 온 학생들이 맞다. 귀여운 생각이 들어서 악수를 해주는데 갑자기 뒤에서 쳐다보던 친구들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는 사진을 찍자고 아우성이다.

아까 목욕 가트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서 만나는 인도사람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외국인을 자주 볼 수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동양인 여자를 잘 볼 수 없어서인지 사진을 함께 찍자는 사람이 너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지순례나 관광 온 사람들이라 손에는 카메라나 핸드폰을 하나씩 쥐고 있다. 내 카메라를 찍어서 보여달라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것으로 찍어서 기념으로 보관한다는 거다.


바다 위의 바위섬인 비베카난다 메모리얼(Vivekananda Memorial)에 가기 위해 줄을 선다. 줄 서는 데만 한 시간, 배를 타려고 기다리는 데 30분은 걸린 듯하다.

배로 20분 정도, 잠시 가는데도 구명조끼는 필수다.

드디어 도착한다. 여기는 작은 바위섬이라 마음대로 다녀도 된다. 이 곳에서 수행한 비베카난다라는 힌두성자가 깨달음을 얻어 후에는 영국, 미국에 머물면서 힌두교를 설파했다고 한다. 식민지배 시절 인도인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준 대단한 사람이라고 한다.


여기는 성스러운 곳이라 신을 벗고 맨발로 다녀야한다. 익숙하지 않은 맨발의 감촉이 왠지 좋다. 발바닥에 와닿는 따스한 돌의 감촉을 느끼며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생각한다.

북위 8도. 인도 대륙의 최남단.

동쪽 벵골만, 서쪽 아라비아해, 남쪽 인도양의 세 바다가 만나는 곳, 그런 이유로 파도 마저도 일정하지 않다는 깐야꾸마리 바다를 눈앞에서 보고 있다. 세 물결이 만나는 것이야 자세히는 확인하지 못하지만 파도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은 알겠다. 겨울의 한가운데, 기온이 족히 40도는 넘을 듯한 무더운 인도의 최남단에 와서야 비로소 ‘끝’을 생각한다. 여길 오고 싶었던 이유가 아마도 그 끌림 때문이었던 것 같다. 끝의 시작, 그 역설을 알 것 같다. 


신발을 신고 해변으로 가는 배를 타러 간다.

다시 돌아온 해변에서 시내 쪽을 본다. 힌두교 성지이지만 저 멀리 뒤에는 특이한 건물들도 보인다. 여기는 남인도다.

해가 저물기 전에 목욕 가트로 다시 간다. 낮에 선글라스를 팔던 사람들은 어디가고 사진사 아저씨들이 나와 있다.

일몰을 보러 가는 길, 이 길을 걸으면서 사진을 찍자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나중에는 둘이 그냥 앉아있기만 해도 옆에 와서 자리를 잡으며 포즈를 취한다. 그냥 말거는 사람, 어디서 왔나 묻는 사람들도 결국 환하게 웃으며 함께 사진찍기를 권한다. 남녀노소 불문이다.


북인도의 유명 관광지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다르게 여기 남인도 사람들은 치근덕거리지 않고 담백하고 순수하게 보인다. 외국인이 많지 않아서인지 상업용의 그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난(?) 호기심이라는 게 느껴져서 웃게 된다. 지나가다가도 우리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서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기분 좋게 사진 모델이 되어주고 연예인들이 일반인들 있는 곳에 그냥 못가는 마음이 이해된다며 동행과 박장대소 한다.

지역적인 끝에서의 시간적인 끝.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다 볼 수 있는 깐야꾸마리지만 일몰은 진짜 장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시작이라는 단어가 같이 튀어나온다. 인생에 있어서 시작과 동반하지 않는 끝이란 단어는 단 한번 밖에 쓸 수 없을 것이다. 


마법의 시간은 끝나고 배고픈 현실이 닥친다. 가이드북에서 제법 괜찮다는 레스토랑에 찾아가서 어울리지 않게 탄두리치킨을 시킨다. 해가 지는 야외식당에서 모기를 쫓으며 일주일을 함께 지낸 동행과 서로의 첫인상 얘기를 하며 웃는다. 어떤 이해관계도 인연도 없이 그저 인도땅 첸나이에서 만났을 뿐인 한국인 두 사람이 추억을 공유한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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