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말바꾸며 버티던 李, 새벽 0시52분 문자메시지로 전격 사의
총리실서 공식 표명 뒤 청와대서 확인
선거 부담에 ‘친정’與마저 등돌리는 현실
해임건의안 통과땐 역사적 굴욕 ‘최악’
李총리 자진사퇴 카드로 ‘차악’선택


0시 52분.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 표명이 공식 발표된 시각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흔들림 없이 국정을 챙기겠다”고 강행 의사를 밝힌 그였다.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새벽에 발표했다는 건 그만큼 긴박했다는 방증이다. 여론이 돌아서고, 여야가 칼을 겨누자 청와대마저 결국 등을 돌렸다.

동이 틀때까지 버틸 수 없을 만큼 막다른 길에 처했다. 긴급 사의 표명이 나오기까지 숨 가빴던 새벽이었다. 


▶0시52분, 돌연 사의 표명에 충격 또 충격= 이 총리의 사의 표명은 예정된 수순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새벽에 돌연 사의를 표명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21일 새벽 0시 52분, 총리실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이 총리가 국무총리직 사임의 뜻을 전달했다’는 소식을 공식 전달했다. 뒤이어 청와대도 이 총리의 사의 표명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전날 오전만 해도 이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 귀국까진 총리직을 유지하리란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직전까지도 이 총리는 “국정 공백이 있어선 안 되며 흔들림없이 국정을 운영하겠다”며 강행 의지를 수차례 강조했다.

20일 오후 이 총리가 평소보다 이른 시각인 오후 5시에 퇴근하면서 사의 표명 분위기가 감지됐으나 심야에 이를 밝힐 것이라곤 총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만큼 비밀리에, 또 신속하게 사의를 결정한 셈이다.

▶반복된 의혹, 스스로 운신 폭 좁혔다= 그가 돌연 사의를 결심하게 된 건 우선 자초한 바가 크다. “목숨을 걸겠다”, “성완종 전 회장과 독대한 적 없다”는 등 각종 의혹을 적극 부인했지만, 새로운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이 같은 말들이 오히려 칼로 돌아왔다.

성 전 회장을 잘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다가 “동향 출신이고 제가 원내대표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만난 건)당연하다 생각한다”며 말을 바꿨고, 1년간 수백 차례 통화한 기록이 나오자 “국회의원을 같이 했고, 1년인데…”라고 해명했다.

국정 공백을 우려한다는 논리로 강행 의지를 밝혔지만, 계속된 의혹과 말 바꾸기에 ‘식물 총리’로 전락, 사실상 이미 국정공백이 시작됐다는 반발이 거셌다. 이 총리 입장에선 달리 선택할 카드가 없던 셈이다.

▶‘친정’마저 사퇴압박, 선거 일정도 부담= 야권에 이어 여권마저 ‘자진사퇴론’을 제기한 점도 결정적인 이유다. ‘친정’마저 이 총리를 압박하면서 총리직을 유지하는 데에 부담이 커졌다. 이 총리의 사의 표명 직전까지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이제 남은 건 자진사퇴밖에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해임건의안을 공식화한 상황에서 자칫 여당 의원까지 해임건의안에 찬성하고 나면 그나마 남은 ‘자존심’마저 지킬 수 없다는 절박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코앞으로 다가온 재보궐 선거 일정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29일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야권이 이 총리 사퇴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자칫 이 국면이 장기화될 경우 이 총리는 선거 패배의 책임까지 져야 할 상황에 처했다. 여권이 국정 공백 반대에서 자진사퇴로 돌아선 배경이기도 하다.

▶청와대도 부담, 자진사퇴로 ‘차악’ 선택= 이 총리가 사임을 표명한 이후 청와대의 반응도 신속했다.

박 대통령은 중남미 순방 중에서도 “매우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며 “검찰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확실히 수사해 모든 것을 명백히 밝혀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사의 표명 직후 이뤄진 발 빠른 대응이다. 박 대통령은 귀국 후 사의를 수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가 새벽에 전격 사의를 표명한 것도 대통령이 순방 중인 중남미와의 시차가 고려된 것으로도 보인다. 시차를 고려한 발표시점과 청와대의 즉각적인 대응은 이 총리의 사의 표명이 어느 정도 조율돼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성완종 리스트’ 이후 전ㆍ현직 비서실장까지 의혹이 확대된 상황에서 청와대 입장에서도 이 총리의 사퇴와 검찰 수사는 불가피한 수순이다. ‘최악’이 아니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셈이다. 박 대통령이 “순방에 다녀와서 이 총리 거취 문제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총리에게 자진사퇴의 길을 열어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완구, 역사의 굴욕은 피했다= 이 총리가 긴급하게 사의를 표명하면서 역사에 남을 오명은 피하게 됐다.

국회의 해임건의안에 여당의원까지 찬성하게 되면 이 총리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국무총리가 될 뻔했다. 또 국무총리직을 유지한 채 검찰에 소환되면 이 역시 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갑작스런 사의 표명으로 오히려 오명을 쓸 가능성도 있다. 사의를 표명한 날까지 63일 재임한 이 총리는 65일간 재직한 허정 총리 이후 최단명 총리를 기록하게 된다. 다만, 박 대통령의 사의 수용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사의 수용까지 재임 기간을 고려하면 최단명 총리의 오명은 벗어날 수도 있다.

김상수 기자/dlcw@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