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검은 돈 상자의 범죄심리학
[헤럴드경제=서경원ㆍ이세진 기자]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비타민 음료 박스에 현금을 넣어 전달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씁쓸하기만 한데 해당 음료의 판매량은 하룻새 42%나 껑충뛰었다죠.

시대가 흘러도 ‘검은돈’의 역사는 멈추지 않고, 전달용기인 박스의 종류만 바뀌는 모양입니다.

검은돈은 왜 상자를 좋아할까요. 우선은 공간 효율성이 좋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지폐를 다발로 묶으면 직육면체 모양이 나오는데 네모진 박스에 차곡히 쌓을 때 상대적으로 적은 공간에 많은 현금을 담을 수 있는 것이죠.

운반하는데도 용이합니다. 손잡이가 없어도 들기 편하고 여러개를 한 곳에 쌓기에도 편리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은폐성이 높다는 게 가장 큰 이유 아닐까요. 과일박스 등 일단 포장을 해버리면 상자 안에 돈이 들어있다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는 거죠.

전문가들은 검은돈이 상자에 담기는 데에는 일종의 ‘자기 기만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문화학)는 “뇌물이나 청탁성 현금을 상자 안에 넣는 것은 건네주는 사람의 입장에선 죄책감을 덜 수 있는 방법”이라며 “일종의 위장술인데, 본인 스스로도 이게 나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자기는 뇌물이 아닌 선물을 준다는 식으로 자기를 속이는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임성학 서울시립대 교수(정치학)도 “누가 봐도 ‘나는 돈이 아니라 선물을 주는 거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상자가 애용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언제부터 상자에 돈을 넣어 주기 시작했을까요.

조선시대에도 은병이나 토지문서를 뇌물로 주는 일이 많았지만, 본격적인 시점은 종이상자와 근대 지폐가 발행되기 시작한 1950년 이후로 추정됩니다.

1962년엔 세무공무원이 각종 세납을 봐 준다는 조건으로 당시 돈 20만환(현재가치로 100여만원)이 담긴 과자 상자를 받아 검거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상자가 ‘애용(?)’되기 시작한 것은 금융실명제가 시행된 1993년부터입니다.

출처와 경로 추적이 가능해진 10만원짜리 수표 사용이 어려워지자 큼지막한 사과상자에 1만원권 다발을 채워넣는 방법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거죠.

대표적인게 1997년 수서비리 사건으로, 당시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사과상자(2억4000만원)와 라면상자(1억2000만원)로 100억여원의 돈을 정ㆍ관계 인사들에게 뿌린 일이었습니다.

이후 1999년 세풍 사건 땐 캐리어가, 2001년 ‘진승현 게이트’ 때는 골프 가방이 새로운 자금전달 용기로 등장합니다.

2002년 대선 땐 한 대기업이 현금 150억원이 실린 트럭을 통째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나라당에 전달하는 그 유명한 ‘차떼기 사건’도 일어나죠.

2005년 마사회 수뢰 사건 땐 안동 간고등어 선물함, 상주 곶감 상자도 등장했고, 2009년 5만원권 발행 이후엔 상자의 경량화가 가능해져 와인상자, 티슈곽, 담뱃갑, 음료박스까지 다양해지는 추세입니다.

gil@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