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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에세이]평화와 생명의 물길, 파로호
이승만 대통령의 잊혀진 별장이 있는 그 곳…
인적이 드문 땅을 우리는 ‘오지’라고 부른다. 오지는 외로움인가.

한반도의 한 가운데 있는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상무룡 2리는 파로호 언저리에 둥지를 텄다. 아름다운 풍광에 취한 용(龍)이 춤을 추었다는 전설 때문에 무룡으로 이름 붙여진 곳이다. 민가가 드문드문 있다보니 한 두 채의 가옥을 연결시키려 도로를 뚫지는 않았다. 파로호를 가로지르는 조각배 만이 오지의 주민들을 외부 세상과 연결시켜준다.

그런데, 사람의 손떼가 묻지 않은 이곳에 대통령 별장이 있단다. 기우뚱 기우뚱, 지국총, 지국총 하는 조각배는 초행길 손님에겐 위험할 수도 있는데, 대통령이 이곳에 거동한다는 것이 얼핏 믿어지지 않는다.

배에서 내려 무성한 나뭇가지 헤치고, 잠깐 한눈이라도 팔았다가는 벼랑 아래로 구르기 십상인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5부능선 쯤에 검게 그을린 굴뚝과 골조만 앙상히 보이는 집터가 나타난다. ‘잊혀진 대통령의 별장’이다. 허물어진 별장 자리는 쓸쓸한 풍경과 외로운 모습으로 거친 강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댐으로 막혀 거대 인공호수가 만들어져 ‘대붕호’로 불리웠던 이곳은 해방직후 38선 이북, 즉 북한의 점령지였다. 6.25 한국전쟁 중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은 춘계 대공습을 시작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속절없이 당한다. 거침없이 남하하던 중공군은 그러나 험준한 지형에 거대호수가 버티고 있는 이곳에서 멈칫 한다.

당시 육군6사단은 최초의 수력발전소인 파로호 화천발전소를 탈환하기 위해 목숨 걸고 중공군을 공략해 적 2개사단 3만여명을 섬멸한다. ‘파로호 대첩’이 아니었으면 역사는 또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대첩을 치하해 직접 붓글씨로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뜻으로 “파로호 (破虜湖)”라고 개명한 뒤 비석을 세우고, 휴전한지 1년이 지난 1954년 9월 이곳에 별장을 지었다고 한다.

토박이 전재옥(66세)씨는 “내가 소년이던 시절, 군인들이 이곳을 총을 들고 지키고 있었고, 별장터 앞에 대통령이 직접 쓴 파로호란 비석이 하나 더 서있었는데, 5.16군사정변 이후 누군가 별장을 허물고 큰 배에 실어 화천 구만리 발전소 주변으로 옮기는 것을 마을사람이 모두 보았다”고 회고한다.

파로호는 평화와 힐링, 그리고 생명이다. 그 1급수의 물줄기는 한강으로 흘러 서울시민의 식수원이 된다. 천연기념물 원앙새의 집단서식지가 되기도 하고 잉어, 붕어 등 각종 담수어가 풍부해 한때 전국 최고 낚시터의 명성을 얻기도 했다.

1987년 평화의 댐 축조를 위해 수위를 낮추자 바닥이 드러나면서 고인돌 21기가 나왔으며, 1만년전 구석기인들이 사용했던 선사유물 4000여 점이 발굴돼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배를 몰아 북한강 최상류 화천 평화의 댐까지 25㎞를 유유자적하는 동안, 온전하게 보존된 청정자연의 모습이 여행객을 감싼다. 어쩌다 마주치는 주민은 자연인지 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여유로운 표정의 그들에게 오지의 고립은 행복인 듯 하다. 그들은 자연인이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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