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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이 오면…나도 모르게 죽비 같은 詩가 끌린다
문태준 사물과 얼마간 거리를 두는 문법“대상과 세계에게 말 걸고 싶었다” 황동규 오랜 병치레로 보낸 인고의 시간 지친삶에 대한 진한 사랑 묻어나
문태준
사물과 얼마간 거리를 두는 문법
“대상과 세계에게 말 걸고 싶었다”

황동규
오랜 병치레로 보낸 인고의 시간
지친삶에 대한 진한 사랑 묻어나

방민호
슬픔과 원한, 죄책감과 절망감
세월호 참사의 시간을 시로 증언



시가 끌리는 순간이 있다. 내 안의 언어로는 표현할 길 없는 어떤 차오름 혹은 비어버림 속에서 그에 걸맞는 말을 만나고 싶을 때다. 또 때로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어떤 것을 끄집어내줄 죽비같은 언어를 시에서 막연히 기대하기도 한다. 가는 것과 오는 것이 격하게 부딪치는 4월에 도착한 시집 가운데 서정시인 문태준은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창비)이란 시집을 내며 이렇게 말했다. “대상과 세계에게 솔직한 말을 걸고 싶었다. 둘러대지 말고 짧고 선명하게.”

“노랗게 잘 익은 오렌지가 떨어져 있네/붉고 새콤한 자두가 떨어져 있네/자줏빛 아이리스 꽃이 활짝 피어 있네/나는 곤충으로 변해 설탕을 탐하고 싶네/누가 이걸 발견하랴/몸을 굽히지 않는다면/태양이 몸을 굽힌, 미지근한 어스름도 때마침 좋네/누가 이걸, 또 자신을 주우랴/몸을 굽혀 균형을 맞추지 않는다면”(몸을 굽히지 않는다면‘)

문태준 시인의 ‘몸을 굽히지 않는다면’이란 시다. 몸을 굽힌다는 행위는 머리는 그냥 앞을 똑똑히 보고 무릎만 굽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연히 머리를 숙여야 한다. 그래야 낮은 곳 혹은 가려진 곳에 존재하는 것들을 보게 된다.

거기에는 맛있는 오렌지, 자두도 있고 예쁜 꽃도 있다. 그렇게 떨어진 것들, 예쁘고 맛난 것들과 놀다보면 해가 어스름해진다. 다시 거기에 내 모습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그 모습은 뻣뻣하거나 부끄럽거나 축 늘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다. 주워 살펴야 한다. 몸을 굽히는 일은 그렇게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문태준 시인의 또 다른 시 ’여시(如是)‘는 이렇게 시작한다. “백화(百花)가 지는 날 마애불을 보고 왔습니다 마애불은 밝은 곳과 어둔 곳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눈두덩과 눈, 콧부리와 볼, 입술과 인중, 목과 턱선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안면의 윤곽이 얇은 미소처럼 넓적하게 퍼져 돌 위에 흐릿하게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볼수록 마애불의 눈, 코, 입, 얼굴의 이모저모는 더욱 형체를 알 수 없다. 세상을 다 품은 듯한 넉넉한 마애불의 미소도 실은 가까이에서는 볼 수 없다. 얼마간의 거리를 두어야 그 밋밋한 형상의 경계와 미소가 비로소 잡힌다 시인은 돌아와 깊은 밤중에 그 마애불이 떠오른다. 이마와 눈두덩, 양볼과 입가가 내 것과 겹쳐진다. 마애불의 형상을 찾으려 하나 다만 “내 위로 무엇인가 희미하게 쓸려 흘러가는”것이 느껴질 뿐이다.

‘여시’는 ‘이와 같이’라는 뜻으로 ’이유나 사정이 이와 같다’는 얘기다. 얼마간의 거리를 두는 시인의 문법은 새로운 통찰로 이끈다.

황동규 시인의 14번재 시집 ‘겨울밤 0시 5분’(문학과지성사)도 새롭게 출간됐다. 2003년 강단에서 내려온 이후 쓴 작품이자, 각종 병치레로 인고의 시간을 보낸 시인의 삶에 대한 진한 사랑이 묻어난 시집이다. 시인 특유의 감각적인 언어가 살아 숨쉬면서도 한층 깊고 먼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다왔다/하늘이 자잔히 잿빛으로 바뀌기 시작한/아파트 동과 동 사이로/마지막 잎들이 지고 있다. 허투루루/바람이 지나가다 말고 투덜거린다.(중략) 아직 햇빛이 닿아있는 파라칸사 열매는 더 붉어지고/하나하나 눈인사하듯 똑똑해졌다/더 똑똑해지면 사라지리라”(‘삶을 살아낸다는 건’)

63편의 시가 4개의 부로 나뉘어 있다. 각 부 앞에 ‘쪽지’라는 제목으로 짧은 메모를 붙였다.

방민호 시인의 세월호 추모 시집 ‘내 고통은 바닷속 한방울의 공기도 되지 못했네’(다산책방)는 세월호 참사의 시간을 시로 기록했다. 시인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대로 쓴 시들은 지난 1년을 시로 증언한다. “산길에/꽃이 떨어져 있다//시들었다/말랐다/꽃잎 그대로 오그라들었다”로 시작하는, 지난해 4월18일에 쓴 ‘꽃’이란 시로부터 올해 2월27일에 쓴 ‘꽃으로 피어나라‘까지 1년여간 연작시 장정을 해온 것.

“그대들 이름/여기 낱낱이 새기며/기원 드린다//그대들도/먼 옛날에 스러진 그이들처럼/봄마다 환한 꽃으로/피고 또 피어나라(중략))봄마다/사월마다/우리에게 돌아오라”(’꽃으로 피어나라‘)

시인은 4월 16일, 그날 이후 슬픔과 원한, 죄책감과 절망감에 시달렸다며 “지난 한 해 동안 이 시들에 매달려 왔다.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진실이 알려지길 간절히 기원했다.

“오로지 진실만을 노래하게 하소서/큰 슬픔과 아픔의 사금파리 한 조각만이라도 오롯이 실어놓게 하소서//두려움과 주저함으로 나아가지 못함이 없도록 하시되/원한과 복수에 머물게 하지 마소서 ‘발원’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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