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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은행 앞이 ‘암환전 메카’인 이상한 나라
[헤럴드경제=서경원ㆍ이세진 기자]“위안화 몇 장 있는데? 딴 아주매보다 100원 더 얹어줄 테니 나한테 팔어.”

지난 15일 서울 남대문 시장 길바닥에서 만난 암(暗)환전상 ‘재윤할머니(명함 이름)’. 손주의 이름을 딴 예명으로 일한다고 했다.

벙거지 모자를 쓴 재윤할머니는 이날도 노란 테이프로 쌓여진 라면박스를 세로로 엎어 놓은 ‘간이 테이블’ 위에 전자계산기 하나 올려놓고 환전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은행 앞은 남대문, 명동이 있어 외국인들이 많아 각종 불법 환전영업이 성행하고 있는 가운데 한 환전 영업소가 영업을 하고 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기자가 100위안짜리 다섯 장을 건내자 계산기에 ‘17500 X 5’라고 두드리더니 허리에 둘러맨 지퍼 주머니를 열고 8만7500원으로 바꿔준다.

이 할머니는 “아침 10시쯤 나와 오후 네다섯시면 파장”이라며 “노인네들이 그냥 햇볕도 좋고 해서 산책 나오는 거지 돈은 몇 푼 못 번다”고 했다.

남대문시장에 가면 이런 할머니들을 비롯해 아예 ‘환전Exchange’라고 적힌 책상을 도로변에 차려 놓은 노점 환전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도 오래돼 남대문 시장의 역사있는 진풍경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영업 등록을 하지 않아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한 불법 환전상들이다.

더군다나 이들이 활동하는 남대문 시장은 환전 업무를 등록ㆍ관리하고 있는 한국은행의 코 앞이다.

외국인들 눈에도 한국이란 나라는 외환당국인 중앙은행 앞마당을 환전상들의 ‘메카’로 내 준 ‘이상한’ 나라인 셈이다.

한국은행 앞은 남대문, 명동이 있어 외국인들이 많아 각종 불법 환전영업이 성행하고 있는 가운데 한 환전 영업소가 영업을 하고 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명동 인근이라 외국인 왕래가 많아 환전 수요가 끊이지 않기 때문에 암환전상이 성업(?)중이지만, 서로 떠밀기식으로 단속 주체도 명확하지 않고 처벌 수위도 높지 않아 수십년째 사실상 방치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일정 영업장을 갖고 한은에서 간소한 등록 절차를 거치면 누구나 환전 영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업장 마련엔 투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냥 길 위에서 저가 수수료 전략으로 불법 환전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남대문 경찰서 관계자는 “환전업은 한은에 등록을 해야되고, 한은 내지는 지자체에 감독권이 있고 우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고발이 들어오면 수사를 할 순 있지만 단속까지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앞은 남대문, 명동이 있어 외국인들이 많아 각종 불법 환전영업이 성행하고 있는 가운데 한 환전 영업소가 영업을 하고 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그런데 한은 측은 “등록된 영업자에 대해서만 관리가 가능하다”며 “등록 요건이 미비해 영업을 취소하는 경우와 같은 행정 조치만 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무등록 환전영업은 경찰의 단속을 받아야 하고, 사법처리 대상이 된다”고만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은 “환전 할머니들을 단속해서 즉결심판으로 벌금 20만원 때려도 다시 나오는 분들이 많다”며 “벌금을 대폭 상향하면 없어질 것도 같지만, 그 할머니들도 생계 수단으로 하는 거라 무작정 단속하긴 어려운 면도 있다”고 밝혔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암환전시장은 외환을 사고팔 때의 가격차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우리나라에서 생길 유인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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