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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9. ‘낯선 인도’ 폰디체리서 프랑스를 만나다
[HOOC=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동행은 아직 자고 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와 거리로 나선다. 아침의 일상은 북인도나 남인도나 비슷하다. 일어나서 씻고 각자 모신 신상에 향을 올리고 신에게 첫인사를 드린다. 어제 유적지 찾아다니느라 보지 못한 평범한 어촌 마말라뿌람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청소하고 씻는 일들이 거리에서 행해진다. 아침 특유의 신선한 공기가 골목에 퍼진다. 해변으로 나간다. 넓은 이국의 바다, 처음 만나는 벵골만에서 조용히 아침을 맞이해 본다. 


오늘 마말라뿌람을 떠난다. 다른 사람들은 볼거리 없다고 1박만을 하고 서둘러 떠난다는 마말라뿌람이지만 여행자는 2박3일도 아쉽게 느껴진다. 여기서 느끼는 고요함, 편안함이 좋다. 체크아웃하기 전, 아쉬운 마음에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제 갔던 가게에 다시 가서 커피를 주문한다. 이 더운 날씨에 뜨거운 커피를 손잡이도 없는 유리잔에 가득 따라준다. 테이블도 없이 플라스틱의자에 앉아 호호 불며 커피를 마신다. 담배를 사러 온 옷가게 점원이 방금 산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건다. 그는 바라나시 근처 북인도에서 여기로 와서 일하는 사람이다. 한국인이라고 하자 정색을 하며 묻는다.


“한국인들은 다 카메라를 가지고 다녀요. 당신들도 마찬가지네요. 한국인들을 다 사진작가인가요?”

웃음이 나온다. 그렇진 않다고, 한국인들이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것 뿐 이라고 대충 얼버무리며 내 손의 카메라를 본다. 나는 미러리스 카메라, 동행은 DSLR을 손에 쥐고 있다. 그의 말이 아까도 한국인 남자 두 명을 봤는데 어김없이 카메라를 매고 다니더란다. 생각해보면 한국인들이 유독 카메라를 좋아하는 것 같긴 하다. 서양 여행자들은 빈손으로 다니는 사람도 많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게다가 웬만한 카메라는 가격이 비싸니까 의문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어제 복대를 맡긴 가게로 간다.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갔는데도 마무리가 안 되어 있다. 이제야 마무리 중이다. 여기는 인도라 그럴 수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예측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음이 재미있긴 하다. 뭘 맡겨도 제 시간 내에 해 주는 일은 별로 없는 인도다. 어제 동행의 가죽신발을 맡긴 신발가게도 그랬었다. 1시까지 오래서 가니 아직 안됐다고 3시에 오라고 했었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그러고는 모두들 “노 플라블럼”한다. 웃음만 나온다. 오늘 출발이라 다시 오긴 힘들어서 복대는 기다려서 받아가지고 나왔다. 한국 같았으면 서비스가 엉망이라고 지적할 사항이지만 인도에서는 마음도 왠지 너그러워진다. 한국은 생활의 터전이고 인도에서의 나는 여행자 모드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짐을 챙겨 폰디체리(Pondicherry)를 행해 출발한다. 마말라뿌람에서 폰디체리는 버스로 두 시간 정도의 거리다. 첸나이까지 장거리 이동에 지치다가 두 번의 도시 간 이동을 이렇게 짧게 하니 몸이 편안하고 기운이 난다.

폰디체리라는 이름은 참 예쁘다. 그런데 이 이름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부르던 이름이다. 인도의 거의 모든 영토가 영국령이던 식민지 시절, 이곳은 유일한 프랑스 식민지였다고 한다. 프랑스령이었던 도시는 지금도 프랑스풍의 건물이나 거리를 간직하고 있어 인도의 여느 도시와는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그 도시가 지금은 뿌두체리(Puducherry)라는 현지발음으로 불리운다. 봄베이가 뭄바이(Mumbai)가 되고 캘커타가 꼴까따(Kolkata)가 되었듯이.

오토릭샤는 북인도와는 달리 흥정이 잘 안 된다. 비싸든 싸든 그저 릭샤올라 배짱인 것 같다. 북인도에 비하면 릭샤비가 비싸고 여행자에게 바가지 씌우는 게 역력하다. 몇 번의 흥정 끝에 간신히 릭샤를 타고 프렌치쿼터라고 하는 시내에 들어온다. 예쁘게 단장한 건물들과 멋드러진 간판들, 인도스럽지 않은 깨끗하고 질서 정연한 거리가 펼쳐진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보는 슈퍼마켓도 있다. 프랑스인이 많을 거라고 짐작되지만 여하튼 서양인 여행자들이 많다. 


피자헛, 도미노피자 등 국제적 브랜드의 피자가게들도 많고 화덕에서 구워내는 탄두리 피자를 파는 곳도 있다. 덥고 배고픈데 눈에 들어온 도미노 피자로 얼른 들어간다. 인도물가로는 비싸지만 시원하고 현대적인 곳에서 여독을 달랜다. 역시 이곳에는 부유해 보이는 인도인들이 들어와 있다.

깨끗한 거리엔 여기가 인도인지 프랑스인지를 의심하게 하는 프랑스풍의 저택들이 즐비하다. ‘르 까페’니 ‘르 클럽’이니 하는 프랑스식 이름을 가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 인도인데 인도 같지 않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릭샤들이 다니는 걸 제외한다면 인도의 거리풍경이 아닌 듯하다. 아쉬람이나 오로빌 같은 영성 공동체에서 직접 생산한 물건들을 파는 매장이 많다. 아쉬람은 수행자들이 모이는 공동체를 의미하는 말이다. 뿌두체리는 스리 오로빈도 아쉬람과 오로빌이라는 영성공동체가 있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오리엔탈 풍의 옷이나 가방, 악세사리까지 고급스런 물건들을 디스플레이도 잘 해놓고 싸지 않은 가격으로 팔고 있다. 오랜만에 좋은 아이쇼핑 거리를 찾았으니 정신없이 구경하며 돌아다닌다.


숙소는 바닷가 바로 앞 아쉬람에서 운영하는 파크 게스트하우스로 정했다. 아쉬람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들은 가격이 비싸지 않은 대신 룰이 엄격하다. 술이나 흡연 금지는 물론 통금시간도 정해져 있다. 안내 데스크에서 일하시는 분도 아쉬람의 일원이다. 다른 숙소와는 달리 숙박부도 꼼꼼하고 자세히 기입해야 한다. 나이 드신 할머니가 프런트에서 일하시는데 엄격하면서도 깔끔해 보이는 인상이 너무 좋다. 껄렁껄렁 여행자들에게 농담 거는 여느 숙소의 프런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괜히 수행자가 된 기분이 들고 떠들면 쫓겨 날 것 같아 눈치가 보인다.

마치 우리나라 콘도를 연상하게 하는 깨끗하고 큰 숙소 마당이다. 아쉬람의 숙소들은 조직적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


숙소를 나서면 바로 해변으로 이어진다. 벵골만을 따라 바닷바람을 맞으며 긴 산책을 한다.

여기가 뿌두체리인 만큼, 저녁은 ‘돈 지오반니’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찾아간다. 음식을 기다리며 전망 좋은 식당에서 뿌두체리의 야경을 바라본다. 이탈리아 사람이 주인인 이곳은 여행자에게 친절하고 맛도 좋다. 어딜가도 빠지지 않는 음식은 맥도날드 빅맥과 이탈리아 요리인 피자이긴 하지만, 여기 프랑스령이던 인도 뿌두체리에서 맛보는 화덕 피자와 파스타는 맛이 진짜 다르다.

바다와 가까워서인지 호텔 루프탑인 이 레스토랑은 바람이 세차다. 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하면서 동행과 이야기를 나눈다. 폰디체리와 뿌두체리라는 지명 사이에는, 식민지라는 단어가 있다. 세련되고 예쁜 서구 문명에 길들여진 우리는 폰디체리라는 이름이 맘에 든다. 인디안 쿼터와 프렌치 쿼터로 나뉘는 이곳에서 프렌치 쿼터에만 머물게 된다. 하지만 이곳은 지금 엄연히 인도이고 그들의 이름 ‘뿌두체리’라는 걸 인식한다. 과거를 지우거나 부정 할 수는 없다. 다만,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잘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도시든,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라는 걸 상기할 뿐이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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