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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1년][실종자 가족 인터뷰 1 - 이금희, 조남성씨]“전교 1등 딸 2014년 11월 일정표에 기말고사 날짜 동그라미만”
[헤럴드경제=이지웅ㆍ김진원 기자] 엄마, 아빠의 시계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9분에 멈춰 있었다.

“같은 반 아이한테 물어봤어요. 은화 어디 있었니. ‘은화 SP-1하고 SP-2 복도 사이에 있었어요’. 생존자가 말하잖아. 거기 있었다고. 올리라고요. 올려서 확인시켜 달라고요. 내 새끼 거기 있는지. 그게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할 도리라고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단원고 2학년 1반 조은화(18)양의 엄마 이금희(45ㆍ여)씨와 아빠 조남성(51)씨는 인터뷰 내내 계속 울었다.

1년 전 가족은 엄마, 아빠, 오빠(대학생), 조은화양 네 식구였다.

1년 후 수학여행을 간다고 집을 나섰던 딸은 365일째 40m 아래 차가운 바닷물 속에 갇혀 여지껏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빠는 자동차 내연기관을 찍어내는 안산의 금형업체에서 30년간 개근하다 딸을 잃어버린 날 일을 그만두었다. 4월 17일 진도로 내려갔다가 수색 종료 때 안산 집으로 올라온 대학생 오빠는 아직 복학을 못하고 방에 틀어박혀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엄마는 세월호를 인양해달라는 서명지를 들고 눈이 퉁퉁 불은 채 국회의원들에게 허리를 굽히며 서명을 받으러 다닌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놓인 세월호 실종자 9명의 사진. 단원고 2학년 조은화 허다윤양, 남현철 박영인군, 단원고 양승진 고창석 선생님, 일반인 권재근씨 아들 혁규군, 이영숙씨는 아직 물속에 갇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1년 동안 어떤 이들은 이 네 가족이 죄를 지은 것처럼 손가락질을 했다.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에요. 내 자식을 못 찾았는데 왜 내가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내 자식을 못 찾았는데 왜 내가 피켓을 들고 서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피켓 들고 서있으니까 어떤 사람이 지나가면서 막 욕을 해요. 세월호 이거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요즘 스마트폰 잘 돼 있잖아. 대꾸도 못해요. 내가 한마디 잘못하면 딱 찍어서 실종자 부모가 이랬다하면서 올려버리니까. 딸 잃은 엄만데 한 마디도 할 수 없어요. 왠 줄 알아요? 못한다고 할까봐. 안 꺼내 준다고 할까봐.”(이금희)

엄마 이씨는 딸의 빈 방에서 날짜 곳곳에 동그라미가 그려진 2014년 일정표를 보았다. 그곳에 딸이 채우지 못한 부재(不在)의 날들이, 딸의 미래가 될 수도 있었던 평범한 하루하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작년 일정표에 시험 보는 날짜들이 다 체크돼 있어요. 1학기 기말고사, 2학기 중간고사, 2학기 기말고사. 근데 은화가 없어. 은화가 전교 1등도 했었어요. 그래서 학교로 전화가 온대요. 단원고 1등 죽은 거 맞냐고.”(이금희)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실종 학생 단원고 2학년 조은화양의 엄마 이금희씨가 국회의원들에게 돌리는 세월호 인양 촉구 서명지를 들고 있다.

남겨진 엄마, 아빠는 딸을 집어삼킨 사고와 그 순간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던 정부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18살 애들이 얼마나 힘이 좋았겠어요. 나가라면 다 나가지. 자켓도 다 입었고. 물에 떠있으면 건지기만 하면 되잖아. 그런데 죽는 걸 방송으로 생중계했어요. 배 거꾸로 뒤집히고 죽어가는 걸 지켜만 본 거야. 3일을. 참사가 아니라 수장(水葬)시킨 거야.”(조남성)

“나 너무 아파요. 너무 힘들어. 하루에 2, 3개 일정을 뛰고 있고요. 지방을 다 돌고 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딸이 이래요. 우리 딸이 이래요. 우리 딸 좀 찾아주세요’ 기자들 만나 사정을 해야 돼요. 분향소가 차려진 지 1년이 다 돼 가는데, 못 들어가고 있어요. 이 상태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냐고요.”(이금희)

사고 발생 1년이 지났지만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는 이들은 계속 2014년 4월 16일에 살고 있다. 바닷속 가족과 작별도 못한 이들이 광장과 거리에 주저앉아 1년이 넘도록 울고 있다.

plato@heraldcorp.com



-인터뷰 전문



#이금희씨(조은화양 어머니)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 은화 찾는 것. 욕도 다 하고 싶은데. 2014년 4월 16일 팽목가고 진도 갔어요. 아직도 우리는 2014년 4월 16일에 살고 있어요. 가족을 못 찾았으니. 가족을 못 데리고 왔으니. 아홉 명의 실종자가 있으니 가족을 찾아달라는 것. 가족을 보내줄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그런데 생각해보라. 방금 말했듯 수학여행비 주고 학교 보냈어요. 이런 일 당할 거다 하면 보내겠어요. 교과 과정에 수학여행 안 보내면 결석이에요. 4월 15일 난 학교 보냈어요. 16일 사고나고. 아이들 데리고 선생님 가고, 아이들이 선생님 말 잘 들은 죄 밖에 없어요. 자식 키우면서 선생님 어른들 말 듣지 말라고 가리키는 부모 없어요. 선생님 말 잘 듣고 나가지 말라고 해서 사고 당했어요. 6시 55분에 통화를 했고, 9시 15분에 통화를 했고. 9시 58분에 통화 했어요. 구할 시간 충분히 있었어요. 왜 안 구했냐. 왜 그 아이들을 바다 속으로 밀어 넣었나. 정치 빼고 이념 빼고 이익 빼고 다 제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 존엄성을 생각해봐요. 인간으로서 받아야 하는 기본적 도리.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

나를 보세요. 오늘 아침 7시에 나와서 이러고 돌아다녀요. 은화 오빠는 방에서 안 나오고, 은화 아빠는 피켓 시위해요. 은화 하나만 잘못된 게 아니고. 하나 더. 단원고 250명 합동 장례식 할 거냐 영결식 할 거냐 해서 합동 분향소가 안산에 차려져 있어요. 246명이 올라왔고. 한 달 안에 16명 남고 다 찾았어요. 그러면 어떤 부모가 너네들 조금 남았으니까 그만해 하겠어. 없어요. 그러면 어떤 부모가 이제 4명 남았으니까 그만해. 할 수 있겠어요. 없어요. 실종자가 유가족이 가는 것, 유가족이 진상규명 하는 것 똑같아요. 가족이 1년을 바다 속에 있었으면, 우리보다 더 억울할까요. 우리보다 더 궁금할까요. 유가족이 왜 궁금해? 실종자? 자식을 찾는 것.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그러기 위해서 제일 먼저 뭐 해야겠어요. 사람이 올라와야지.

교통사고가 났어요. 어 사람이 차 안에 껴서 못 구해. 그럼 정비소로 들어갔어. 사람부터 꺼내야지. 그 다음에 견적내야지. 그런데 지금은 사고현장에 있고 차는 정비소에 들어가 있고. 여기서 사고가 있었데. 그런데 차가 찌그러져서 안에 사람이 있는 데 못 꺼내. 사고 현장에서 하고 있는 것. 정비소가 아니라. 그러면 사고 현장에 있는 세월호 안에 있는 실종자 뭐야? 사람. 사람. 뭐야? 사람이다. 가족은? 사람이죠. 이것은 사람으로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받고 있는 거죠.

정말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에요. 내 자식을 못 찾았는데 왜 내가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내가 왜 내 자식을 못 찾았는데 피켓을 들고 서있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그래놓고 내가 피켓 들고 서 있으니 어떤 사람이 지나가면서 막 욕을 하더라고요. 세월호 이거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그런데 요즘 스마트폰 너무 잘 돼 있죠. 내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딱 찍어서 실종자 부모가 그래 하면서 올려버리니까. 못해요. 그리고 은화를 딱 보면서. 은화가 더 힘들기 때문에. 배 속에 있는 가족이 더 힘들기 때문에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거죠. 엄마로서 단 한마디도 할 수 없는 것. 왠 줄 아냐? 못한다고 그럴까봐. 안 꺼내 준다고 할까봐.

우리 진도에서 7개월간 자식을 갖다가 볼모로 갇혀 있었어요. 여기 한 번도 못 올라왔다. 그러면서 광화문 광장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가있어서 좋겠다. 저기 언제가. 그런데 부모들이 뭐라고 했냐면 죽은 자식을 찾아 가지고 오면서 남은 부모한테 미안하다고 그랬고, 찾아가는 부모들을 보면서 남은 가족들이 축하한다고 그랬어요. 죽은 자식을 데리고 가는데, 한 달 안에 올라간 부모들이 그거 알까. 내 자식 새끼 죽은 것 억울해. 죽겠어. 자식을 잃었는데 어떻게 안 아파. 그런데 9명은 아직도 바다 속에 있다고.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세월호 배가 안 올라오면 세월호 문제는 시작도 안 되고 끝도 안 나요. 그러면 뭐부터 해야겠어요. 반찬을 여러 개를 다 해놨는데 밥 먹겠다는 데 밥이 없어요. 반찬만 먹겠나. 못합니다. 우리 밥 먹자고 하지 반찬 먹자고 안 하잖아요. 세월호 참사라고 하죠. 그런데 세월호가 없어요. 뭘로 싸우겠어요. 그러면 정부가 왜 인양 발표를 안 할까. 왜 안 할까. 기자들이 물어요. 그럼 내가 궁금한 게 그거에요. 진도에서 팽목에서 기자들이 그래요. 은화 어머니 정말 하시고 싶으신 게 뭐냐고. 내가 그랬습니다. 당신 엄마 새끼 자식 아내 들어가 있으면 뭐 해 달라겠어요? 가족 찾아 달라 했겠지. 최대 아픔을 겪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이 왜 저기서 피켓을 들고 있어야겠나 모르겠어요. 왜 저기 가서 욕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어제도 은화 방에 들어갔다가 방에 걸려 있는 2014년 일정표를 딱 봤는데, 11월 달인가. 시험 보는 날짜까지 체크가 돼 있더라고요. 1학기 기말고사, 2학기 중간고사, 2학기 기말고사. 여기까지 다 돼 있는데. 은화가 없잖아요. 걔가 과연 수학여행 가서 그런 일 겪을 거였으면 갔겠냐고요. 그 안에서 얼마나 엄마를 찾았겠냐고요. 그러면서 얼마나 공포스러웠겠냐고요.

최소한 나라가 정부가 대통령이 국민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지. 마지막 한명까지 최선을 다해서 구조하겠다며. 모든 것을 다 하겠다며. 해경 해체하면서 유가족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하겠다며. 모든 책임은 자기에게 있다며. 2014년 4월 16일을 살고 있는 부모들이 원하잖아요. 최선을 다해서 가족을 찾아달라고. 그게 잘못된 거냐고요. 대통령이 국민을 책임지는 모습이. 대통령이 한 나라 대통령으로서 실종자 가족 참사를 당한 그 304명에게 약속 한 거잖아요. 대한민국 국민에게 약속했고. 그거 세계로 다 나갔어요. 세계로 다 나갔는데. 대통령이 그거를 갖다가 안하면 나라망신이죠.

나는 은화 찾아야겠어요. 왜? 은화 살아 있었으니까. 말 잘들은 죄밖에 없으니까. SP-1 수색 제대로 안 했으니까. 생존자가 분명 내가 SP-1 SP-2 복도에서 봤다고 했으니까. 어떤 부모가 자식이 거기 있는 것을 아는데 포기를 하나요. 난 세상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요. 비용이 많이 든다고? 자기 부모가 자기 자식이 거기 들어가 있으면 이런 참사가 안 일어난다고 누가 장담하나요. 우리 아픔은 여기서 끝내야 해요. 이런 고통 세월호에서 끝내야 해요. 그래야 나중에 책임지는 정부고 그래야 나중에도 책임지는 대통령이고요. 나중에 이런 사고가 났을 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런 대접을 받는 국민이라는 것을.

나 너무 아파요. 나 너무 힘들어. 두세 개 일정을 다 뛰고 있고요. 지방을 다 돌고 있고요.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딸이 이래요 우리 딸이 이래요. 우리 딸 좀 찾아주세요. 기자들 만나서 사정을 해야 되고요. 내가 자식을 잃은 부몬데. 내가 보여드려요? (서명지를 가방에서 꺼내며) 이게요 봐바요. 국회의원들한테 받으러 다니는 서명지에요. 대통령이 약속한거죠. 최선 다 안하고 있잖아요. 최선을 다해달라고. 그러고 또 있죠? (세월호 합동 분향소 사진을 보이며) 영정사진 조차 못하고 실종자란 이름으로 팽목항에 있는 것. 이게 말이 되냐고요. 분향소가 차려진지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못 들어가고 있어야 되냐고요. 그러면 이 상태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냐고요. 어떻게 이 상태에서 돌아가야 하냐고요.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다 죽여놓냐고요. 나가 한마디만 하면 다 살 수 있는 애들을.

우리가 2014년 4월 16일 다 진도로 내려갔어요. 살려달라고. 구해달라고. 그 다음에 얼굴이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그 다음에 뼛조각이라도 찾게 해달라고. 인간으로서 겪질 말아야 될 사악의 끝과 인간으로서 겪지 말아야 될 아픔을 갖다가 겪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 가서 빌어야지 되고, 저기 가서 빌어야지 되고. 여기 가서 매달려야 되고 저기 가서 매달려야지 되고. 7개월 현장에 있다가 서울에 오니까요. 실종자 (이야기가) 없더라고요. 실종자 없더라고요.

그래도 나 은화 엄마라서 싸워야 된다고요. 나보다 은화가 더 슬퍼하니까요. 그래서 은화 올 때까지 싸울꺼에요. 그런데 모든 엄마들이 다 그럴 거라고 믿어요. 엄마들 다 그럴꺼에요. 우리 딸내미가 단원고 전교 일등했어요. 그런데 학교로 전화가 온다네요. 단원고 1등 죽은 거 맞냐고. 그게 현실이에요. 아직도 분향소를 한번도 못 들어 가봤어요.

은화 전화는 8시 55분에 왔어요. 엄마 배가 이상해 그러면서 전화가 왔고요. 파도가 쳐서 배가 흔들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그리고 9시 12분에 전화 와서 엄마 배가 45도 기울었는데 물건이 한쪽으로 쏠려 있어. 그래서 우리 구명조끼 입고. 선생님 뭐라고 하시니 그러니까 우리가 움직이면 배가 더 심하게 움직이니까 우리보고 가만히 있으래 엄마. 그리고선 연락이 안 되고요. 세월호 배속에서 우리 딸이 그러고 났는데 침착해야 한다고 당황하면 안 된다고. 선생님들이 반 카톡으로 그랬죠. 제자리에 있으라고. 우리 딸 친구랑 9시 58분에 통화를 했어요. 걔는 SP-3였고 내 딸은 배정은 SP-2였는데 SP-1 친구랑 바꾼 상태였고요. 근데 그 친구가 9시 58분에 전화 받아요. 그러면 구조할 시간 충분히 있었죠. 9시 12분에서 9시 58분.

그냥 죽인거잖아요. 누가요? 쫓아갔던 사람들 선생님들 교육부 해경 하나도 뛰어든 사람 없죠. 그리고 일 처리 잘 못한 해수부. 처음에 가서 우리 뭐라했어요? 애들 살려달라고 빌었죠. 작업 몇 일 동안 못했어요? 3일 동안 바다 속에 들어가 있으면 살 수 있어요? 그냥 죽인 거잖아요. 배가 이렇게 기울어져 있을 때 배 이거 잡아 달라고. 여기다 넣어 달라고. 부모들이 얼마나 사정을 했는데. 물속에 다 집어넣어 버렸잖아요.

이건 참사가 아니라 수장이에요 수장. 누가 죽인 거에요? 정부기관이. 그리고 부모들한테 너네 새끼들이 바다로 들어가는 거 봐. 너네 가족 들어가는 거 봐 그리고 막 티비 화면으로 틀어줬죠. 1년이에요 1년. 어떻게 살으라고요. 찾은 부모들이 길바닥에 나와서. 찾지도 못한 부모. 1년동안 거기서 애들 볼모로 다 거기 있었던거.

17일인가 18일인가. 안산에 아는 동생한테 전화해서 일반인 생존자 제일 많은 고대병원, 빨리 고대 가라. 가서 은화 어딨었나 물어봐라. 미안하다고 그러고 내가 알아봐라 그랬어요. 그랬더니 걔가 가서 1반 있는 애한테 물어봐서 걔한테 전화해서 물어봤어요. 은화 어디있었니. 그랬더니 걔가 은화 SP-1하고 SP-2 복도 사이에 있었다고. 생존자가 말하잖아요. 거기 있었다고. 근데 (지난해 11월 마지막으로 발견된 단원고 학생인) 지현이가 몇 번 들어가서 나왔어요? 14번 들어가서 나왔죠. 그 중간이에요. 은화 있는데는 여기고 지현이 있는 데는 여기야. 중간이면. 그러면 정확하게 수색 했다고 하겠어요? 가로 4.5미터 세로가 4.2미터 높이가 2.5미터를 14번을 들어가서 한 것을, 다른 데는 25명, 50명 넣는 방을 거실, 로비, 식당 같은 데를 넓은 데를 수색 했다고 100프로 장담해요?

올리라고요. 올려서 확인시켜 달라고요. 내 새끼 거기 있는지. 실종자가 거기 있는지. 그게 대통령으로서 해야지 될 도리고요. 국민을 갖다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고요. 사람으로서 받아야지 될 실종자로서 마지막 예우라고요. 그거에요. 그거를 왜 안해주냐고요. 왜. 얼마까지 울고 다녀야 되냐고요. 언제까지 울고 다녀야 하냐고요.



#조남성씨(조은화양 아버지)

대통령이 끝까지 책임져라. 국민에게 봉사하는 대통령 뽑은 것 아니냐. 자식 잃은 부모 어떻게 살아가라고. 아휴. 전 세계에 외신으로 다 나가. 보상금은 자기내들이 부추기는 거야. 국민들한테 선동하고. 우리가 뭐 보상금 협의도 안 했는데. 누가 돈 달라고 그랬어. 여론이 정부 자체가, 행정부 자체가 되어 버렸다. 여론이 움직인다. 이 나라 경제, 경제 이야기 하지 말라니까. 국민 편안하게 살고 그런 거지. 정치색 띠고 말 한마디 못하고. 그게 무슨 정치야. 일자무식한 사람도 정치 더 잘해. 죽지 못해 사니까. 말 한마디 못하고 끙끙 앓으면서 살아왔는데. 일 년이 넘도록. 지금 일 년이 다 되도록 일주기 되가는데. 자식 안 꺼내 줄까봐. 누가 수장을 시켜놓고. 박근혜가 그럴 줄 알았어? 수색 중단시키고 바로 인양이 될 줄 알았지. 작년11월 때. 약속을 두 번씩이나 했는데. 특별법 때도 다 이용했잖아. 선거전할 때. 17일 18일 체육관에 와서 마지막 한 명까지 해준다고 그러고. 누가 7개월 동안 수색하라고 했어. 폭발사건 나서 5개월 연장된 거지.

작년 이맘 때만 해도 애들 한창 수색돼서 올라오니까 애들 올라오겠거니 했지. 시간이 가니까 명수가 줄어드니까 그거에 대한 부담이 엄청 컸지. 마지막에 누가 남을지 모르니. 그런 생각을 하고. 마음 졸이며 살아가는 거지. 그런데 확실한 것은 마지막으로 딸내미와 통화를 했고 생존자가 증언을 했기 때문에 배속에 있다는 것은.

실종자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 돌아오지 못한 아홉 명이라고 해야지. 실종자가 아니거든. 근데 국민이 보기에 실종자라고 하면 멀리 떠내려. 유실돼서 떠내려간 그런 거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이거지. 수색도 제대로 안 됐고. 우리는 SP-1도 여자 다인실 그거 때문에 마지막까지 싸웠어. SP-1 SP-2 SP-3 있잖아 선미에 있는 여자 다인실. 거기가 증개축한 데 아니야. 국내에 들어와서 증개축. 그러니까 거기에 작업을 하면서 일찌감치 무너지기 시작한거야. 선수 같은 데는 튼튼한데. 배 만들 시기에 강고하게 만들잖아. 일찌감치 붕괴되기 시작했다고. 그러니까 붕괴되니까 잠수부가 못 들어간다니까.

판을 따는 데 웬만한 절단봉을 가져다 쓰면 됐을 텐데. 뇌관 성분이 많이 들어간 것으로 한 것 같아. 내가 보기에. 잠수부 이야기 하는 거 보니까. 더 강력한 거. 그게 폭발한거지. 애를 꺼냈어야 되는데. 구멍을 뚫어서 바깥으로 나오게 했어야 했는데 에어가 있으니까 물하고 만나고 하면서 폭발을 한 거지. 내가 바디 위에 있었고 꿍 하는 소리가 났었고. 내가 봤을 때 말은 안했는데 쓴 용접봉 뇌관 성분 많은 것을 쓴 것 같아. 잠수부들이 말하는 것 들었거든. 그리고 ‘88’ 이라는 업체가 하청에 하청이 있거든. 걔네가 주가 됐거든 밑에 팀이. 해난 구조 상황이 열악해 그러니까. 뇌관이 많이 들었으니 폭발력이 강하겠지. 절단이 안 되니까 빨리 자르려고. 한 두번 따면 다 딴다고 했거든. 언딘이 와서 그랬거든 삼 개월 걸린다고. 여기 사람들 죽어서 이렇게 있는데 작업을 이딴 식으로 하냐고 그랬거든. 88호 선장이 15일이면 끝난다고 했거든. 우리는 그런 사람을 원했거든. 폭파된 거 안 나오고 그래서 5개월 더 걸린거야. 수색하랬지 누가 폭파 시키랬어. 잠수부 돌아가시게 하고.

일상생활 돌아가려면 아직도 먼 것 같아. 배를 들어 올린다고 해도 뭍으로 와야 하고 그러다 보니까 정부 믿음이 떨어지는 거야. 정말 누구 말도 믿지 못하지 이제. 마지막 통화는 애 엄마가 이야기 할 거야. 공백 시간 40에서 50분 있고 그때 나가라 했으면 다 나갔어. 18살 애들이 동작 얼마나 그렇고 힘이 좋겠어. 나가라면 다 나가지. 자켓도 다 입었고. 나가서 물에 떠있으면 건지기만 하면 되잖아. 죽는 것을 생중계를 했으니 빨리 끌어내라고 방송이라도 제대로 했어봐. 거기 있는 애들이 그런 능력이 없거든. 해경이고 해수부고. 공무원이 상하 지시를 해서 먹히는 입장이 아니거든 목숨이 걸려 있고 그러니까. 강력하게 하고 큰 거 동원시키고 하고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고 했어야 했는데. 어휴 다른 나라 보면 비상사태야 그거. 대통령 한마디만 했어도 그렇게. 그냥 죽어가는 거 지켜보고 거꾸로 뒤집혀서 지켜만 본거야 삼일을. 일부 떠오르는 거 건져 온 거야. 16일 내려갔을 때 새벽에 나오는 거 떠서 나온 거야. 바로 죽은 거 나온 거. 물에 빠져 나온 거 깨끗하더라고. 익사를 시킨 거지 수장을. 그게 남 일인지 알았어. 내일이 될지 알았어.

나도 TV로 전원구조 지켜봤어. 저렇게 가라앉을 줄 알았나. 다 나올 줄 알았지. 가족들은 전원구조라고 하니까 갈아입을 옷 가지고 간 거야. 옷 갈아입혀 온다고. 생존자가 그 많던 사람이 많은지 알았더니 생존자 다 분산시켜서 없어. 그리고 걔네 반이 가장 많이 살았어. 쉬는 시간 다른 친구들 늦게 밥 먹고. 선원들 이야기 하니까 일반인 화물기사 보니까 자기네는 학생들 많으니까 피해서 먹으려고 가면서 놀러가는 목적이 보니까 선상에서 캠프파이어 하려고 즐기려고 간 거야. 밤새 놀다가 사십오도 넘어가는데 다리 걸어놓고 농담 따먹고 하잖아 천진난만하게. 죽은 자 가지고 너무 이렇게 오래 방치하고 슬픔을 일 년이 넘게 하고 이게 보통 나라야. 나쁜 놈들이지. 욕을 해 쳐 먹어도 싸.

은화는 공부밖에 모른 것 같아. 어디 놀러가지도 못하고 오로지 공부만 하다가 저렇게 당한 것 같아 공부밖에. 좀 놀다가 그래도 공부 신경 쓰지 말고 놀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공부만 하고 늦게 들어오고 주말에. 나는 일찍 나가고 걔는 두 번째로 나가고 애 오빠는 대학생이니까 늦게 나가도 되고. 그런 식이지.

은화 오빠는 4월 17일에 내려갔어. 수색 종료할 때 올라왔어. 복학을 못해. 복학 못하고 은둔 생활 하고 있어. 애가 수습이 돼야 걔한테 신경을 쓰지. 진짜 걔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거야.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야. 주위 사람들 친척 친구 못 만나. 주위 사람들 친척이고 못 만나. 뭐가 수습이 돼야 만나지. 뭐라고 이야기할 거야. 지나가다 또래 친구들 봐도 그렇고 뭐라고 이야기할 거야. 걔네는 만나고 싶지 않은데 엄마한테 전달해달라고 하는데.

딸내미가 담배 끊으라고 맨날 이야기 하던 건데. 나도 딸내미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 그런데 뭐가 와야지 담배를 끊던가 말던가 하지. 이거마저 안 피우고. 내가 진도에서 술 많이 먹었지만. 지금도 이거 없으면 하루하루가 더 힘들게 될 것 같아. 은화가 담배 끊으라고 많이 해서 끊는다, 끊는다고만 했지 약속은 못하고. 인양되고 찾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고. 실종자 가족 붙어서 있어야 되고 마지막 뭍으로 올 때까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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