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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1년] 깊은 슬픔 잠긴 안산, “웃고 떠들기가 미안해요”
[헤럴드경제(안산)=박혜림ㆍ양영경 기자]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나서, 이 작은 동네가 그야말로 한 집 걸러 한 집씩 초상이었어요. 그렇게 밝았던 아들녀석이 세월호 참사로 가장 친한 친구들을 여럿 잃고 나서는 한동안 넋을 놓고 지냈죠.”

14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내 정부합동분향소에서 만난 고모(52) 씨 부부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도 고 씨 부부는 아들 친구들을 보러 합동 분향소를 찾은 참이었다. 고 씨의 아내 김모(47) 씨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며, “쟤가 내 친구 딸이었다”, “저 여학생이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때 좋아하던 애였다”고 회상했다.

그런 아내의 말을 듣고 있던 고 씨는 “친구 중 한 명이 내게 ‘이쯤이면 그만 되지 않았냐’며 세월호 피로를 호소한 적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14일 세월호 참사 1주기가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그러면서 고 씨는 “당시 친구의 말에 화가 나, 네 자식이어도 그런 말이 나오겠느냐고 소리를 쳤다”면서, “이 엄청난 참사가 이토록 허망하게 잊히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여섯다리’만 건너면 모든 사람들이 연결된다는 ‘케빈 베이컨의 여섯다리의 법칙’.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적잖은 희생자를 낸 안산에서 만큼은 여섯다리가 아니라 ‘두 다리’만 건너도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과 모두 연결되는 ‘두다리의 법칙’이 통용되고 있다.

안산이 슬픔에 깊게 가라앉은 이유다. 아직도 하루 평균 200명 정도가 정부 합동 분향소를 찾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주말에는 3000여명 가까운 조문객이 몰리기도 했다.

이날 안산 단원고 앞 정자에서 만난 고산초등학교 6학생 김모(13) 양 등도 ‘안산 두다리 법칙’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형제ㆍ자매의 많은 친구들이 참사로 생을 마감했다고 털어놨다.

김 양은 “누나를 잃은 친구가 슬퍼하는데도 아무런 말을 해줄 수 없었다”면서, “모두가 희생자들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 있어, 누굴 특별히 위로해주는 게 이상할 정도”라고 말했다.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도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마음은 지인, 이웃과 다름 없었다.

안산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중년 여성은 “화랑유원지가 원래 안산 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놀이 장소였다”고 운을 띄우며, “이젠 웃는 게 미안해, 그곳으로 꽃놀이를 가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생떼같은 자녀를 잃은 유가족들을 위한 안산 시민들의 배려라는 것이다. 실제로 화랑유원지에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가족단위로 꽃 구경을 나올 법도 했지만, 이날 유원지는 한산하기만 했다.

‘한산한 곳’은 비단 유원지 뿐만이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침잠된 안산의 상권은 여전히 회복될 기미 보이질 않고 있다. 

14일 세월호 참사 1주기가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경기도 안산의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정부합동분향소에는 적막만 감돌고 있다.

안산 단원고 주변에 있던 문구점은 참사 1년이 채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단원고 인근 또다른 문구점 주인은 “20년동안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해왔지만 지금처럼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에도 안산 상인들은 ‘우는 소리’조차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게 ‘나와 내 이웃에게 닥친 슬픔’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안산 중앙역에서 만난 강모(47) 씨는 “내 아들도 3년 전 단원고를 졸업했다”며 “부모로서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참사로 상권이 죽었다고 해서 마냥 원망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10년간 안산 중앙역에서 맥주집을 운영했지만 지난해 7월, 세월호 참사 여파로 매출이 뚝 떨어지며 그해 12월 아이스크림 가게로 업종을 바꿨다고 했다.

이에 대해 안산에서만 20년을 거주했다는 김모(71) 씨도 “잘 지내다가도 길거리에서 노란 현수막만 보면 뜨끔해 놀러가려고 하다가도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면서 “안산이 활기를 되찾기 위해선 하루빨리 참사를 둘러싼 모든 문제가 해결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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