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 사람-‘한 컷의 영화’ 만드는 김혜진 포스터 디자이너]“포스터가 영화호감도 결정…부담크죠”
내달 개봉 앞둔 ‘간신’ 큰 주목받아
작품에 폐되지 않을까 고민 또 고민


영화 포스터는 영화의 얼굴이다. 상대의 첫인상이 소개팅의 성패를 좌우하듯, 포스터가 영화에 대한 호감도를 결정하기도 한다. 현장에서 포스터를 보고 즉흥적으로 티켓을 끊는 관객들도 있다. 그렇다보니 포스터 디자이너의 어깨는 늘 무겁다. 한 컷의 이미지에 영화의 분위기와 주제의식 등을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것은, 작품을 해석하는 능력과 미적인 감각이 모두 요구되는 일이다. 

5월 개봉을 앞둔 영화 ‘간신’(감독 민규동ㆍ제작 수필름)이 최근 홍콩 필름마켓에서 크게 주목 받았다. ‘채홍사’(미녀들을 강제 징발해 왕에게 바쳤던 직책)라는 이색 소재도 관심을 모았지만, 특히 해외용 포스터가 관계자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방탕한 왕과 야욕 넘치는 간신, 뛰어난 미색의 여인들이 뒤엉킨 모습은 궁궐에 몰아칠 파국을 예고하 듯 위태로우면서도 시선을 잡는 힘이 있다. 디자인 회사 ‘꽃피는 봄이오면’(이하 ‘꽃봄’)의 김혜진 실장(44) 솜씨다. 

“‘간신’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잖아요. 연산군(김강우 분)이 악행을 일삼는 비운의 왕이 된 역사가 있고, 간신 임숭재(주지훈 분)도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채홍사가 된 스토리가 있어요. 단순히 쾌락을 쫓기 보다, 정치적 희생양에 가까운 인물들이죠. 메인 포스터는 주로 구체적인 드라마를 보여주는데, 해외용 포스터인 만큼 이미지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어요.”

실내 촬영이 모두 끝나고 세트를 해체하기 직전에 포스터 촬영이 진행됐다. 김 실장은 부감컷을 촬영하기 위해 철근 구조물을 쌓고 올라가 배우들을 배치했다. 배우 30~40명이 동원된 촬영이다보니 신속하고 정확한 진행이 중요했다. 민규동 감독은 역대 자신의 작품 중 최고의 포스터라는 찬사로 만족감을 표시했다. 

김혜진 실장을 비롯한 ‘꽃봄’ 디자이너들은 지난 2000년부터 200여 편 이상의 영화 포스터를 만들어왔다. 설경구의 기찻길 절규 장면으로 기억되는 ‘박하사탕’(1999)부터 김옥빈의 파격적인 포즈가 시선을 잡았던 ‘박쥐’(2009), 위풍당당한 배우 군단의 워킹을 담은 ‘도둑들’(2012), 황정민의 푸근한 미소가 돋보이는 ‘국제시장’(2014) 등이 이들의 손을 거쳐갔다. 광고 디자인도 맡고 있지만, 영화 포스터 작업의 묘미는 남다르다고 김 실장은 말했다.

“영화에는 모든 분야의 문화가 다 들어가 있어요. 글·문학(시나리오)도 있고, 미장센 아트도 있고, 음악도 있고… 그 걸 한 장으로 표현하는 작업이 포스터를 만드는 일이죠.”

보통 한 작품을 맡으면 6~8개월, 길면 1년 가량 작업 기간이 이어진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포스터가 심의 기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을 때도 있다. 솔직히 화도 나지만 “심의에 걸리지 않는 좋은 포스터를 만드는 것도 능력”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물론 작업을 마친 뒤에도 마냥 홀가분한 건 아니다. 흥행 성적표를 기다리는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작품을 거듭할 수록 부담감과 압박감은 더 커져요. 사실 영화가 잘 돼도 포스터 덕이라는 소리를 듣기는 어렵잖아요. 오히려 작품에 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전전긍긍할 때가 많죠. 요즘 대중들은 좋은 건 다 알고, 나쁜 건 더 잘 알아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작품을 만드는 수 밖에 없죠.(웃음)”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