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징비록’ 임란 첫 승전 이끈 신각의 억울한 죽음
[헤럴드경제]12일 방송된 KBS 1TV ‘징비록’에선 임진왜란 발발 이래 첫 조선군 승전을 이끈 신각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내용이 담겼다. 신각은 임진왜란에서 조선군 최초로 승전한 장수다.

신각은 임진왜란 이전 파직당했으나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기용됐다. 선조가 개성으로 파천할 당시 한강 방어선을 지키는 장수 중 한명으로 수성대장 이양원 휘하에서 중위대장에 임명됐다. 이후 도원수 김명원의 휘하로 들어가 부원수가 됐다.



당시 4천여명에 불과했던 한강 방어 조선군은 수만의 일본군이 다가오자 당해내지 못하고 모두 뿔뿔이 흩어지는데 신각도 마찬가지였다. 신각의 휘하부대는 경기도 양주 부근으로 후퇴해 진을 치며 상황을 지켜봤다. 당시 신각은 조선군 최정예로 불리는 함경도군과 합류하며 반격에 나선다. 신각은 함경도병마사 이혼의 군사를 받아들이며 양주 해유령 인근에서 매복작전을 펴 일본군을 격퇴시켰다.

당시 양주 해유령 전투는 적군 1~200명과 싸운 중대 규모 크지 않은 전투이긴 하지만 임진왜란 발발 후 첫 승전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신각의 군사는 해유령 인근에 매복해 가토 기요마사 선발대를 덮쳐 크게 승리했다. 역사에는 신각의 군사가 적군 70여명을 몰살 시켰다고 적혀있다.

신각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깝다. 신각이 경기도 양주로 후퇴하면서 김명원의 본대와 연락이 두절된 것. 돌아오지 않는 신각에 대해 김명원은 적전도주자라 판단, 선조에 이를 보고했고 선조는 이에 곧바로 참하라는 명을 내렸다. 알고보면 당시 신각의 군사가 본대와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양주 해유령 전투에 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은 안 선조가 곧바로 참수령을 걷어들였지만 간발의 차로 신각은 이미 죽음을 당한 상태였다.

onlinenew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