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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매매특별법 헌재로…집창촌 종사자들 “생계형은 갈 곳 없어”
[헤럴드경제=이지웅ㆍ양영경 기자] 성(性)을 사고 판 사람을 모두 처벌하도록 하는 성매매 특별법 21조 1항(성매매를 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에 처한다)에 대한 공개 변론이 9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에서 열린다. 이는 지난 2012년 서울 전농동에서 13만원을 받고 성을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46)씨가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김씨는 재판에서 “성매매가 아니고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데 처벌하는 것은 기본권과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생계형 집창촌(집결지) 종사자로서의 현실을 법(法)이 인정해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실제로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난 2004년 이후, 집창촌 종사자들의 삶은 어땠을까.

▶변종 업소, 해외 원정 등으로 ‘풍선효과’=지난달 27일 서울 지하철 4호선 길음역 인근의 집창촌, 일명 미아리텍사스에서 만난 종사자 김모(35ㆍ여)씨는 “2004년 9월 시행된 특별법은 내 인생을 비틀어버린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강원도 삼척에서 스무살 되던 해인 2000년, 홀로 서울로 상경해 변변한 직장을 못 잡다가 김씨는 미아리에 첫 발을 들였다. 가족도 없이 강아지에 애정을 몰아준 김씨의 꿈은 이 일로 돈을 모아 ‘애견 미용샵’을 차리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2001년부터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학원을 다니는 생활을 했고, 이듬해인 2002년 애견 미용 자격증을 땄다. “직업은 자랑스럽지 않았지만 꿈이 성큼 다가오는 듯했다”고 그는 말했다.

김씨는 2004년 특별법을 현실로 마주했다. ‘성을 판 아가씨도 경찰서에 끌려가고 벌금을 낸다’는 법이라는 설명에 집창촌 종사자들은 겁을 먹고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집창촌 여성들의 행로는 엇나가고 말았다. 종사자 대부분은 다른 직업을 택하는 대신 법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변종 성매매 업소로 흘러갔다. ‘풍션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김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견샵이 손에 잡힐 듯했고 다른 기술과 경험, 학력이 모자란 김씨는 결국 강남구 논현동의 주점과 송파구 잠실의 보도방을 선택했다. 하지만 술 한잔 못하는 김씨의 몸은 매일 술 먹어야 하는 생활을 견디지 못했다. 반년도 못 버티고 스물네살 된 김씨는 2005년 5월 미아리로 돌아왔다. 이제 서른다섯이 된 그는 “여전히 애견 미용샵을 차리는 게 목표지만 손님도 없고 돈도 없다. 모든 게 불투명해졌다”고 말했다.

A(32ㆍ여)씨도 법 시행 후 잡혀갈까 무서운 마음에 일을 그만두었다. A씨는 호주 원정 성매매를 택했다. 브로커들은 여성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현지에서 감시인력을 붙였다. 말을 듣지 않으면 여권과 돈을 빼앗았다. 계약을 깨면 큰 돈을 물어내야 한다는 협박에 악으로 버텼지만, 끝내 계약기간을 못 채우고 지인의 도움을 받아 귀국했다. A씨는 “빚을 갚기 위해 다시 성매매를 한다”고 말했다. 전국 집창촌 업주들의 모임인 한터전국연합회 강현준(61) 사무국장은 “외국에 간 아가씨들은 가끔 성인 동영상을 찍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법 이후 ‘나이 든’ 아가씨들은 갈 곳이 없어 ‘떡다방’처럼 더 추락할 수 없는 곳으로 자의반 타의반 내몰렸다”고 말했다.

▶왜 성매매를 그만두지 못하는가?=한양대 행정자치대학원 논문 ‘성매매죄의 비범죄화에 관한 연구(2010, 이소이)’는 성매매에 종사자들이 성매매 이외 다른 직업을 가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성매매는 특별한 전문성이나 기술을 요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 보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다른 직업을 가지기 위한 비용은 대단히 크고 그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다. 논문은 성매매 종사자들을 전업이 용이하지 않은, 다시 말해 ‘전환비용이 높은 노동자들’이라고 규정했다. 또 성매매는 ‘진입장벽’이 다른 산업에 비해서 월등이 높다고 논문은 설명했다. 실제로 미아리텍사스에서 만난 업주, 종사자들은 생계형 성매매가 많은 집창촌 종사자들이 이 일을 그만두기가 무척 어렵다고 말했다.

한 업주는 “몸이 불편한 부모님을 모시거나, 이혼하고 혼자 아이 키우는 경우 처럼 집창촌 여성은 가정을 지키려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다른 업주는 “식당에서 일하면 그 정도 벌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여성 혼자서 매달 수백만원 병원비 벌고, 동생 대학 등록금 내고, 자녀 학원비 대고 하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 이곳은 마지막 생존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주는 “오피방, 키스방 같은 변종 업소에서 알바처럼 일하는 사람들은 생계형이라고 볼 수 없다. 며칠 일해서 놀려고 하는 경우가 90%이고 비생계수단이다. 그곳과 이곳은 일하는 여성들이 처한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들은 선급금 문제 탓에 여성들이 집창촌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선급금이란 목돈을 쥐어준 다음 이를 볼모로 잡고 여성에게 성매매를 강제하는 것이다. 한터연합회 강 사무국장은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생겼을 때 정부가 선급금을 문제삼았기 때문에 업주들이 ‘앞으로 선급금을 주지도 않고, 이미 준 선급금도 받지 않겠다’는 포기각서까지 썼다. 이제 법적으로 권리행사를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출퇴근하면서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고, 아가씨들 112 전화 한 통이면 업소를 아예 문닫게 할 수도 있다. 선급금은 집창촌 폐지의 빈약한 논리를 채우기 위해 동원한 포퓰리즘이다”라고 주장했다.

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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