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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말한마디로 8000억 날린 보석갑부, 그 뒷이야기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윤현종 기자]세 치 혀로 천냥 빚도 갚는다고 하지요.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 속담입니다. 그런데, 말 한마디 잘못한 대가로 사업을 거덜낸 부자도 있습니다.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탄 그의 인생 막전막후를 들여다봤습니다.

▶오너의 ‘쓰레기’ 한 마디로 날아간 가업=1991년 4월 23일 영국 런던의 한 콘서트홀, 청중 5000여명 앞에 선 한 연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음료를 나를 때 쓰는 은도금 쟁반과 잔 6개, 그리고 포도주를 담는 유리병을 합쳐 4.95파운드(당시 환율로 약 5940원, 현재 한화 8000원가량)에 팔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 싼 값에 팔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그건 우리 제품이 완전 쓰레기(total crap)라서 그런겁니다”

래트너즈그룹이 승승장구하던 시절의 제럴드 래트너 모습.

이 연사는 당시 영국 시장 50%이상을 거머쥔 고급 보석브랜드 ‘래트너즈(Ratners)’의 오너 2세 겸 최고경영자(CEO) 제럴드 래트너(당시 41세)였습니다. 

24년 전, 래트너즈는 래트너즈그룹으로 불렸는데요. 래트너즈 브랜드 뿐 아니라 지금도 유명한 보석ㆍ시계 메이커 ‘어네스트존스’ 등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이는 제럴드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일군 결과였습니다.

1950년 런던 토박이로 태어난 그는 학교 중퇴 후 1965년에 가업으로 운영 중이던 보석회사에 들어갑니다. 1984년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은 그는 6년 만에 150개였던 래트너즈 점포를 비약적으로 늘려갑니다. 영국에만 1500개, 미국에도 1000개가 세워졌습니다. 작은 보석상은 직원 2만5000명, 연 매출 1조4400억원(12억파운드)이상의 명품기업집단으로 변신했습니다. 

1990년대 초 제럴드는 연봉만 65만파운드(당시 환율로 7억8000만원, 현재가치 10억5000만원)를 받았습니다. 주식시장에선 더 큰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영국 재계의 거물급이 된 그는 당시 영국 기업가협회(the institute of directors) 연례회의 연사로 초청받았는데요. 참석자 대부분이 기업경영자와 비즈니스 리더로 이뤄진 진지한 자리였습니다. 제럴드는 그날따라 다소 딱딱했던 좌중 분위기를 녹여보려 일종의 ‘셀프디스’ 같은 농담을 던진 것이죠. 그러나 사람들은 경악했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제럴드의 이같은 연설은 결과적으로 그의 사업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의 말은 일파만파 번졌습니다. 소비자들은 ‘오너 겸 사장이 직접 쓰레기라고 폄하한 래트너즈 제품을 사지 않겠다’고 돌아섭니다. 1년도 되지 않아 매출은 고꾸라졌고 기업가치 5억파운드가 날아갔습니다. 지금 환율로 보면 8100억원에 달하는 액수입니다. 당시 환율로도 6000억원 가량 되는 큰 돈이었습니다. 회사는 파산 직전까지 갔습니다.

영국 런던에 있었던 옛 래트너스 점포자리.

제럴드는 백방으로 불을 끄려 노력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급기야 1992년 11월 그는 사장직에서 물러납니다. 오너를 내보낸 래트너즈는 1년 뒤 브랜드 이름까지 ‘시그넷(Signet)’으로 바꿉니다. 현재 전세계 3600개 점포를 운영 중인 글로벌 보석체인 시그넷 쥬얼러스(Signet Jewelers)가 그것입니다.

이같은 제럴드의 일화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냅니다. 바로 ‘두잉 래트너(Doing a ratner)’인데요. 사업가가 비즈니스 현장에서 저지른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뜻한다고 합니다. 나아가 한 순간 실책으로 치명적 손상을 입은 사업이나 기업가의 행태를 칭하는 대명사로도 쓰인다고 하네요.

▶7년 간 ‘침대생활’ 끝 재기…가족ㆍ절친, 그리고 경험의 힘=스스로도 ‘업계 거물’이라고 부르고 다녔던 40대 초반의 제럴드는 오랫동안 자책과 후회에 빠져 살았습니다. 7년 간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고 사실상 침대생활만 했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그의 부인이 ‘당장 집 밖으로 나가라, 안 그러면 이혼하겠다’고 하소연했다고도 합니다. 당연히 수입은 제로였고 빚만 쌓여가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제럴드는 재기했습니다. 일등공신은 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의 ‘바가지’ 같은 잔소리가 오히려 고마웠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후에“아내는 어려울 때 언제나 곁에 있어줬고 나를 전적으로 이해했다. 그가 없었다면 그 때 ‘그 일’에서 벗어나는 데 훨씬 오래걸렸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재기를 위해 그가 가장 먼저 한 건 운동입니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45㎞를 달리며 떠오른 사업 아이템은 ‘운동’이었습니다. 제럴드는 살던 집을 담보로 ‘더 워크숍(The Workshop)’이란 휘트니스체인을 세웁니다. 그는 남다른 수완으로 2001년 이 업체를 1100만파운드(약 178억원)에 매각합니다. 

제럴드 래트너의 사업파트너가 된 찰스 사치.

제럴드는 이 돈을 새 사업의 종잣돈으로 삼았는데요. 그 때 제럴드에게 실질적 도움을 준 사람이 있습니다. 인도 출신 친구 찰스 사치(Charls Saatch)입니다. 20여년 전 말실수 이후 제럴드 주변 친구들은 모두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치는 유일하게 그의 곁을 지켰죠. ‘당신은 마음만 굳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며 제럴드에게 힘을 실어줬습니다.

제럴드 래트너 제럴드온라인 창업자의 현재 모습.

결국 2002년 그는 사치와 함께 ‘제럴드온라인’이라는 인터넷 보석거래업체를 설립합니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큰 온라인 보석상이 된 이 기업의 가치는 3500만파운드(약 570억원)까지 뛴 상태입니다. 2013년엔 인도에까지 사업을 넓혔습니다.

20여년이 지나 비로소 일선에 복귀한 지금의 제럴드를 만든 동력은 또 하나 있어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나락으로 몰아세운 말실수입니다. 8000억원의 수업료를 내고 받은 교훈인 셈이지요. 60대로 접어든 그는 좀 더 머리를 숙이고 다닙니다. 더 이상 오만하게 굴지도 않습니다. 이젠 그 때 일을 여러사람에게 털어놓으며 반면교사로 삼을 것을 권합니다. 실제 제럴드의 과거 행태는 수많은 현지 학교나 대학 등에서 주요 실수사례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제럴드온라인 판매제품

살면서 천국과 지옥을 오간 제럴드 래트너, 그는 특유의 강한 정신력으로 역경을 이겨냈습니다. 혹자는 진정한 기업가의 마음자세라며 칭송할 수도 있겠죠.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됐지만 실제 그런 뼈아픈 경험을 누가 겪고 싶어 할까요. 사소한 실수 하나까지 경계하는 자세. 큰 돈을 움직이는 부자 뿐 아니라 세상 누구라도 마음에 새겨야 할 덕목입니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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