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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돌아온 괴동’ 목진석 “첫 우승 벅찼지만, 두번째는 간절했다”
[헤럴드경제=김성진 기자]“바둑에서 40세전에는 절대로 명인이 될수 없다”는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의 말은, 21세기 세계 바둑계에서 가장 잘못된 말 중 하나다. 지금 세계 바둑은 10대 홍안의 소년기사와, 스무살 앳된 청년기사들의 세상이다. 명국의 기보를 얻기 위해 몇날 며칠을 기다리는 시대는 끝났다. 외국에서 벌어지는 대국의 기보를 같은 시간에 온라인으로 볼 수 있는 지금, 젊은 고수들의 발전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40대 기사는 버텨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 45세가 넘어 세계타이틀을 5차례 따낸 조훈현 9단의 사례는 ‘기적’에 가깝다. 그만큼 한국과 중국에서 자고나면 등장하는 신예기사들과 어린 기사들의 실력은 무섭다.

‘괴동’ 목진석 9단(35)의 우승은 그래서 신선하고 놀랍다.

지난주 GS칼텍스배 결승 5번기에서 목진석은 최철한을 상대로 1패 뒤 3연승을 거두며 통산 2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스무살에 첫 우승을 거뒀던 신동에게 두번째 우승까지 걸린 15년의 간극은 너무나 컸다. 하지만 서른 다섯 목진석의 우승이 바둑계에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끝없이 정진하는 선수에겐 기회가 온다는 걸 몸소 증명한 것이다.

지난 7일 ‘돌아온 괴동’을 만났다. 단정한 정장차림에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특유의 차분하면서 공손한 말투로 기자를 대했다. 

오랜만의 우승 덕분인지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목진석 9단. 다양한 포즈를 요구하는데도 싫은 기색없이 선선히 응한다. 한국기원 옆에서 챔피언의 한수를 던지는 모습./사진=박해묵 기자 mook@heraldcorp.com

■첫 우승은 벅찼고, 두번째는 절실했다=인터뷰중에도 전화가 쉼없이 울렸다. 우승턱을 내라는 축하전화가 쇄도하기 때문이다. “이번주 내내 밥을 사야돼요”라며 웃는 목진석은 “과분할 만큼 축하전화를 받았고, 나를 보고 힘을 얻었다는 댓글도 많았어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목진석은 “이창호 9단을 꺾고 첫 우승했을 때는 벅찬 기분이었는데, 이번에는 오랜 간절함 때문이었는지 기쁘면서 얼떨떨했어요”라고 말했다.

목진석이 두번째 우승을 하기까지 몇가지 변화가 있었다. 결혼을 해서 아빠가 됐고, 곧잘 즐기던 술을 끊었다.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가 우승하는데 힘이 됐다. “2000년대에 결승에는 곧잘 올라갔는데 상대가 강하기도 했지만, 우승을 놓치면서 압박감을 많이 느꼈어요. 또 안되나 하는 불안감도 드니까 집중하기가 더 힘들었죠.” 2010년 교회에서 만난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바둑을 대하는데도 조급한 승부욕보다는 좋은 바둑을 두자는 여유를 갖게 됐다고. 바둑공부에 좀 더 전념하기 위해 술을 끊은 것도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줬다.

목진석은 결혼을 앞둔 후배기사들이 조언을 구한다면 얼른 하라고 권하겠다고 말했다.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고 좋은 점이 많아요. 아기가 태어났을 때 잠을 못자 육체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누구나 인생에서 겪어야되는 일이니까요. 최철한 사범도 작년에 아기 태어나서 한동안 힘들어하더라구요 하하”.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결승전으로 2002년 기성전을 꼽았다. 이창호 9단과 5번기에서 2승2패로 만난 마지막 대국을 80%가량 이기다가 역전패했고, 이후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오랜만의 우승 덕분인지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목진석 9단. 다양한 포즈를 요구하는데도 싫은 기색없이 선선히 응한다. 한국기원 옆에서 챔피언의 한수를 던지는 모습./사진=박해묵 기자 mook@heraldcorp.com

■‘셀프별명’ 괴동(怪童)과 녜웨이핑=목진석의 별명 ‘괴동’은 ‘철의 수문장’으로 유명했던 녜웨이핑 9단과 관련이 있다. 95년 15세 초단 목진석이 당대 최고수였던 녜웨이핑을 한중대항전에서 꺾는 이변을 일으킨 뒤 널리 회자됐다. 하지만 실제 언론에서 붙여준 별명은 ‘우주소년’, 중국언론에서는 ‘외성인(外星人)’이었다고. 목진석은 “그때 인터넷바둑을 할때 아이디로 쓴게 괴동이었어요. 좀 독특한 포석이나 시도를 많이 하려고 그렇게 지었어요”라고 설명한다.

그 후에 또 녜웨이핑과 인연은 없었을까 물었다. 딱 한번 더 만났다. 목진석은 “2001년 중국리그 당시 속기대국에서 만나 제가 불계패했어요. 사실 처음 이긴게 운이 좋았죠”라고 겸손해했다. “훗날 들어보니 녜웨이핑 9단이 나를 이긴 뒤 중국 후배기사들과 만나 ‘드디어 설욕했다’고 굉장히 기뻐했대요”라며 웃는다. 류징, 창하오, 구리 등 중국기사와 절친한 중국통이니 정확한 소식일 듯하다. 

오랜만의 우승 덕분인지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목진석 9단. 다양한 포즈를 요구하는데도 싫은 기색없이 선선히 응한다. 한국기원 옆에서 챔피언의 한수를 던지는 모습./사진=박해묵 기자 mook@heraldcorp.com

■국가대표 코치로 얻는 보람=한국은 2013년 중국에 절대 열세였다. 하지만 지난해 유창혁 감독을 필두로 대표팀이 꾸려지면서 목진석도 코치로 가세했다. 이후 한국 남녀 바둑 모두 중국과의 대결에서 열세를 만회했고, 두터운 만리장성을 서서히 허물고 있다. 목진석은 “선수들이 자신감면에서 달라졌어요. 규율도 있고, 오전에 실전대국, 오후에 연구하는 시스템이 자리잡으면서 정상급 선수들이 서로를 통해 배우게 되는게 많아요. 어린 육성군 선수들도 대표기사들을 보면서 많은 걸 얻고요.” 대표팀이 생기기 전에는 한국의 톱랭커들은 각자, 혹은 소속 연구회에서 공부를 했다. 하지만 이들이 한데모여 공부하면서 서로가 가진 장단점을 통해 훨씬 많은 걸 얻게 됐다. 목진석은 대표팀 훈련을 위해 매일 오전 한국기원으로 출근을 하느라 연구실 운영도 손을 뗐다.


■서른 다섯 목진석의 꿈=목진석은 20대때부터 “바둑은 평생 공부이며, 나이가 들면서도 (최고의 선수들과) 승부를 갖는 것”이 목표였다. 이런 목진석이기에 흔치않은 ‘35세 챔피언’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목진석이 사표(師表)로 삼는 조훈현, 린하이펑, 서봉수 역시 지천명을 훌쩍 넘기고도 뜨거운 열정으로 노력하는 기사들이다.

일단 가슴 한켠을 오래 짓눌러온 우승에 대한 갈증을 푼 목진석은 세계대회 정상에 서겠다는 꿈을 또 키우고 있다. “욕심인지 몰라도 최고의 대회인 응씨배에서 우승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신선한 발상과 뜨거운 열정으로 무장한 목진석이라면 얼마든지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가 허락(?)한다면 둘째를 갖고 싶다는 것도 또 다른 꿈이란다.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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