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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덕포주, 감금, 인신매매 옛말”…집창촌 新풍속도
[헤럴드경제=이지웅ㆍ양영경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지하철 4호선 길음역 인근 집창촌에서 만난 업주 A씨는 “요즘은 ‘아가씨 세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업주들이 조금만 서운한 소리를 해도 아가씨들이 112에 신고할까봐 아주 조마조마하다”고 느스레를 떨었다. ‘아가씨 세상’은 지난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업계에 나타난 집창촌 신(新) 풍속도다.

이곳은 약 90개 업소, 400명 정도가 일하고 있다. 10명 중 7명은 자기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 이들 중 상당수는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다.

한 종사자는 “일주일 꽉 채우면 4일 정도 일하는데, 요일은 하고 싶은 날을 택한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 업주 등 8명은 집창촌 하면 떠오르는 악덕 포주, 감금, 인신매매 등에 대해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옛날 얘기”라고 입을 모은다.

업주들의 감시 대상은 그들의 신변이 아니라 건강이다.

업주 B씨는 “매주 수요일 보건소와 에이즈연맹의 검사를 받고 있고, 몸이 안 좋다고 하면 집으로 돌려보내는 날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그는 “건강만 보면 집창촌 여성(약3000명)보다 풀살롱 등 유사 업소 여성(약10만명)이 더 열악하다. 그들은 ‘소모품’처럼 취급되는 까닭에 건강관리 같은 것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편하게 돈 벌려고 성매매를 한다는 일반인들의 손가락질에 대해 업주들은 고개를 저었다. 업주 C씨는 “집창촌 여성은 가정을 지키려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 식당에서 일하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말하지만 160∼180만원 받고 부모님 병원비 대거나, 자식들 학원비 대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종사자들은 돈 쓰려고 성매매 한다는 생각은 편견이라며 억울해했다. 종사자 D(35)씨는 “강남 업소에서 알바처럼 일하며 명품백 사는 여성들과 생계 때문에 일하는 여성이 대부분인 집창촌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집창촌 건너편에 백화점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옷 한벌 산다는 건 굉장히 큰 맘 먹고 샀다는 의미다. 우리도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곳에 일하게 된 계기도 다양하다. 스무살 때 이곳에 온 E씨는 이혼한 부모님이 아무도 자신을 키우려하지 않아 눈칫밥 먹어가며 친척집을 전전했다.

그렇게 초중고 시절을 보낸 E씨는 하루빨리 독립하는 게 목적이 됐고, 고등학교 중퇴 후 여러 직장을 떠돌다 혼자 서울로 상경, 미아리에 들어왔다. E씨는 “힘들다고 다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들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선급금 문제 때문에 여성들이 집창촌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에 업주들은 “언제적 얘기를 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선급금은 업주가 여성에게 목돈을 쥐어준 뒤 이를 볼모로 성매매를 강제한다는 것이다.

집창촌 업주들 모임인 한터전국연합회 강현준(61) 사무국장은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생겼을 때 정부가 선급금을 문제삼길래 업주들이 ‘앞으로 주지도 않고, 이미 준 선급금도 받지 않겠다’는 포기각서를 썼다. 이제 법적으로 권리행사를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출퇴근하면서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고, 아가씨들 112 전화 한 통이면 업소를 아예 문닫게 할 수도 있다. 선급금은 여가부가 집창촌 폐지의 빈약한 논리를 채우기 위해 동원한 포퓰리즘이다”라고 주장했다.

plato@heraldcorp.com



(사진설명)미아리 텍사스로 불리는 서울 지하철 4호선 길음역 인근 집창촌에 성매매특별법 폐지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헤럴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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