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147일간의 세계여행] 14. 갠지즈강 성수와 티카…굿바이, 바라나시
[HOOC=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가트의 아침 풍경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평상에 대나무 파라솔을 세워놓고 힌두교도들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사제들이다. 힌두교도들은 아침마다 이마에 티카라는 표식을 그려 넣는다. 축복을 빌어주고 양미간에 티카도 그려주는 사람이다.

​​오늘은 그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중에 낯익은 얼굴이 있다. 6년 전 바라나시에 왔을 때 아는 체하고 지낸 바바다. 전에는 그의 아들이 곁에 있었는데 지금 그 옆의 아기는 손자라고 한다.

세월이 흐른 만큼 나이가 들었지만 오히려 더 깔끔해진 모습이다. 인도가 변한 만큼 그의 삶의 질도 나아진 듯하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늘 여행자들이 넘쳐나는 곳이라서인지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허허 웃으며 하는 말이, 뿌자를 해 주겠다는 거다. 돈이 드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반가운 마음에 흔쾌히 응해본다. 나와 가족의 이름을 노트에 적어준다.

나를 가까운 강가로 데리고 나가 갠지즈의 성수를 손에 적시게 하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내 머리에 손을 얹은 그가 힌디로 축복을 내리기 시작한다. 이마에 티카를 찍는 것으로 의식이 끝난다. 이아침 그의 축복은 정성스러웠고 나는 정화된 기분이 들었다. 고맙다고 하자 그가 한 말은 분명 어디서 들은 말이다.

“You are my friend, not guest.“

머릿속에 종이 울린다. 그는 6년 전과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 역시 딱 그만큼의 영어만 하는 사람이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무 감동받아 다시 바라나시에 오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같은 멘트를 같은 사람에게 다시 들으니 씁쓸한 마음이 든다. 누구에게나 날리는 형식적인 멘트였다고 생각하니 예전의 어설픈 감동이 머쓱해진다. 마지막 날 이렇게 그와, 또 바라나시와 작별한다. 나에겐 바라나시가 죽음을 대면하고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영적인 도시지만 그에게 이곳은 생활의 터전이다. 여행자의 눈과 현지인의 시각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한 번 보는 것으로는 알 수 없을 것들 천지다. 여행이란 장님이 코끼리 만지고 지나가는 것과 다름없긴 하다. 코끼리는 맞는데 코인지 다리인지 확신이 없다. 코끼리라는 실체를 맞닥뜨려 보았다는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인도인처럼 이마에 빨간 티카를 칠하고 가트를 걷는다. 축복을 받고 가족들의 안녕까지 빌었으니 올해는 ‘희망의 해’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온다. 
그렇게 티카를 이마에 칠한 채 조식을 먹으러 숙소로 들어간다. 가쯔상은 새벽에 떠났고 료만 부스스한 얼굴로 호텔 옥상에서 요가를 배우고 있다. 료와 호텔직원 니키와 식사를 한다. 가쯔상은 부다가야로, 케이는 꼴까따로 떠났다. 료는 델리로 떠나 일본으로 가고 나는 첸나이로 떠난다. 내가 남인도로 간다니까 니키가 반색을 한다. 그는 남인도 안주나라는 도시 출신이다. 고아라는 해변도시가 좋다며 추천해준다. 6년 전에 상영중이던 ”Ta Ra Ram Pam“이란 인도영화 이야기에 아침부터 박장대소한다. 예전에 인도 와서 본 영화를 인도인과 함께 추억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 일본으로 돌아가야하는 료는 개를 쓰다듬으며 부러운 듯 대화를 듣고 있다. 호텔주인이 키우는 갈루라는 개다. ”갈루“하고 부르면 헉헉거리며 다가오는 귀여운 녀석에게도 정이 들었는데 이제 다들 가는 걸 녀석은 알까?

첸나이로 가는 기차는 무갈사라이역에서 오후 11시30분 출발이다. 오전 11시30분에 체크아웃 해야하니 12시간이 남는다. 짐을 프런트에 맡기고 고돌리아 근처의 영화관에 간다. 그즈음 가장 인기있는 영화 ‘둠3를 혼자 본다. 스릴러+액션+멜로+형제애+노래+댄스가 버무려진 인도영화다운 영화다. 인도영화는 힌디를 몰라도 재미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서너시간이 획 지나갔다.

 다시 호텔로 가서 료를 만나 릭샤타고 떠나는 그를 배웅한다. 오토릭샤에 오르는 그의 사진을 찍어 주었더니 너무 좋아하며 페이스북에 꼭 올려달란다. 이제 바라나시를 떠올린 때면 귀엽고 잘생기고 천진난만한 료도 함께 생각날 것이다. 오후 5시쯤 되어 호텔로 들어간다. 기차는 11시 반이고 7시쯤 가트에서 구두와 게리를 만나 역으로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시간이 또 남는다. 할 수없이 짐을 맡긴 호텔 로비에 들어서는데 한국어 상표가 달린 배낭 두 개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 호텔에 일본인들이 대부분이라고 나를 ”코리안“이라 부르던 직원이 달려와서 해주는 말이 한국인 두 명이 도착했다는 거다. 그 한국 배낭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60세 노부부셨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며 자녀들이 걱정한다고 연락해야한다는 말씀이, 부모님이 걱정하신다고 말하는 젊은 여행자와 다르지 않아 웃음이 난다. 네팔을 거쳐 인도로 배낭여행 오신 멋진 노부부와 한시간 동안 폭풍수다를 떨었다. 

7시가 되어 배낭을 짊어지고 가트로 간다. 이미 정이 든 호텔 사람들과 인사를 한다. 노부부께 잘해드리라고 당부를 하고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이별이 서투른 나는 마음이 찡해온다.

가트에 나가는 길목, 구두가 기다리고 있다. 내가 가게 될 무갈사라이 역 가는 길이 멀고 여행자 혼자 가기엔 위험하다고 걱정하니 구두와 게리가 흔쾌히 같이 가주기로 한 것이다. 가트 계단에서 구두가 사주는 짜이를 마신다. 한참을 계단에 앉았다가 게리가 와서 보트로 옮겨앉아 인도사람과 한국사람, 남자와 여자, 여행자와 현지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9시가 되자 무갈사라이역으로 가는 오토릭샤를 잡는다. 인적 많지 않은 컴컴한 길을 사오십분 달린다. 이들이 없었으면 아마 낮에 일찌감치 역으로 가서 시간만 때웠을 텐데 너무나 고맙다. 드디어 역에 도착한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다시 어두워진 거리를 되돌아가야하는 가난한 보트맨에게 내가 해줄 일이 별로 없다. 돌아가는 그들의 차비라며 500루피짜리 지폐를 꺼낸다. 한사코 안 받으려 하는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이게 한국식 감사인사라고 생각하라며 돈을 손에 쥐어준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

이제 무갈사라이 역 안으로 들어간다. 기차번호를 확인하고 웨이팅룸을 찾아간다. 늦은 시각 출발하는 기차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아예 자리를 펴고 누워 있다. 이별의 아쉬움은 생리현상을 이기지 못한다. 용변이 너무 급해져서 화장실에 들어간다. 이유는 모르지만 세면대에 물도 안 나오는 넓은 화장실 구석에 변기만 하나 달랑 놓여있다. 그냥 멍하니 둘러 보는데 통통한 생쥐가 한 구석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으악!“ 나도 모르게 짧은 비명이 쏟아진다.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라 참을 수가 없다. 큰 배낭을 등에 지고 작은 배낭은 앞에 매고 구석의 생쥐를 노려보며 용변을 본다. 다행히 생쥐는 일을 다 마칠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화장실을 나와 플랫폼으로 간다. 외국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익숙한 것에서 멀어지는 이 순간이 때로는 여행의 묘미이기도 하지만 지금 내겐 백배의 긴장일 뿐이다.

바라나시의 까만 밤, 나를 보는 까만 눈동자들과 함께 기차를 기다린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